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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문화원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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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학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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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어쓴 남해현읍지(지역N문화)

◈ 풀어쓴 남해현읍지 ◈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남해현은 동쪽으로 진주까지 40리이고 서쪽 바다까지 15리, 남쪽 바다까지 36리, 북쪽 노량까지 38리, 서울까지는 1,054리의 거리에 있고 바다 가운데 섬이라고 적고 있다. 신라 신문왕이 처음으로 전야산군을 설치하였고 경덕왕이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고려 현종이 현령을 두었고 공민왕 때에 왜적에게 땅을 빼앗기고 진주대야천부곡에 붙어살았다. 태종조에는 하동과 합쳐서 하남현이라 일컫다가 뒤에 다시 하동현을 설치하였고 진주 금양부곡을 내속시켜 해양현이라 일컬었다. 그 후 금양을 진주에 환속하고 다시 남해라 하였으며 세종조에는 곤명현과 합쳤다가 다시 나누어 그대로 현령을 두었다.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인류는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무신 애를 써 왔다. 역사는 흘러간 시간의 기록일 뿐 아니라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지혜의 보고이며 미래를 여는 지침서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도 역사에 기록 될 것이며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도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우리 남해는 옛부터 청정해역과 산자수려한 천혜의 빼어난 자연경관과 풍광이 아름다운 고장으로 넉넉한 인심, 근면 성실로 풍요롭고 살기좋은 곳으로 이름나 있다. 또한 이순신 장군께서 임진왜란 7년전쟁을 승리로 장식하고 순국..

2005남해문화원25.01.07188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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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유배문학(지역N문화)

◈ 남해유배문학 ◈ 한국 고전소설의 대표작가인 서포 김만중은 최초의 한글소설을 상주면 노도에서 3년간 유배생활 중 사씨남정기를 집필하였는데 한국의 봉건적 가족제도에서 야기되는 싸움으로 비극성을 소재로 숙종이 무고한 인형왕후를 폐출하고 장희빈을 책봉한 기사환국 처사에 숙종을 깨닫게 하고자 일침을 던진 목적소설(풍자소설)입니다. 그리고 노량에서 13년간의 긴 적거생활중 경기체가로 지은 아름다운 남해의 풍경과 생활상을 시에 담은 화전별곡의 자암 김구, 남해의 진산 망운산과 영산인 금산에 올라 그 절경에 심취되어 평화로움과 아름다움에 향수를 느끼고 선경에 도취되어 시를 읊은 약천 남구만, 김만중의 사위로 남해읍에 적소를 정하고 돌아가신 위리안치된 장인의 노도를 찾아가니 매화나무 두 그루가 시들어 있어 가지 적소에 옮겨 심으니 활짝 피었다는 매부의 소재 이어명, 유배생활 중 보고 느낀 점을 산문체 기행문으로 기록한 남해문견록의 후송 유의양, 고령으로 남해유배지에서 남천잡록을 저술한 태소 김용 등의 유배객들이 주옥같은 문학작품을 남긴 유배문학의 산실이며 성지로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정쟁의 희생양이 된 수많은 유배객들의 한이 서린 고장이기도 합니다. 이들의 영혼을 달래고 그 들이 남긴 문학사에 길이 빛낸 작품들을 다시 되새기고 유배문학..

2009남해문화원25.01.06221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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