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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학 연구

[ 2001 ] 화전사연구(지역N문화)

작성자남해문화원

등록일25.06.02

조회수210

첨부파일

◈ 화전사연구 ◈

1. 김구는 어떤 인물인가

조선조 성종 19년(서기 1488년)에 나서 중종 29년(서기 1534년)까지 46세를 일기로 살다간 조선초기의 문신이며 이름난 서예가, 현감 계문의 아들로 자는 대유, 호는 자암, 시호는 문의공이다. 본관은 광산.

서기 1507년(중종2년)에 생원, 진사에 모두 합격하고 1511년(중종6년)에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정자를 거쳐 1515년(중종10년) 부수찬에 올랐다.

1519년(중종14년) 부제학에 오르면서 선정을 시도했지만 기묘사화로 조광조 김정 등과 같이 투옥되어 개령에 유배되었다가 우리고장 남해에 안치되었다. 지금의 노량에 죽림서원을 짓고 인근 각자의 후학들을 모아 가르쳤다고 전하나 서원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그 위치조차 알 길이 없다.

서기 1531년(중종26년)에 임피로 양이(죄를 감하여 가까운 곳으로 유배지를 옮기는 것) 되었다가 서기 1533년 자유의 몸이 되어 고향인 예산에 올라갔으나 이듬해인 서기 1534년(중종29년) 46세로 병사했다.

글씨에 뛰어나 안평대군, 양사언, 한호(한석봉)와 더불어 조선조 초기 4대 서예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으며 서울 인수방에 살았기 때문에 그의 서체를 인수체라고 한다.

선조때 이조참판에 추종되고 충남 예산의 덕잠서원과 임피의 봉암서원 등에 배향되었다.

저서에 자암집, 작품에 이겸인묘비, 자암필첩, 우주영허첩 등이 있다.

노량 마을에서 충렬사로 들어가는 골목길 위의 좁은 공간에 선생의 적로유허비가 남아 있다.

2. 화전별곡, 어떤 노래인가

화전별곡은 경기체가의 말기작품으로 뛰어난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경기체가는 고려중기 이후 주로 귀족계급에 의하여 지어지고 불려진 가사형식의 일종으로 경기하여가라고도 한다. 대표적으로 한림별곡, 죽계별곡, 관동별곡, 화전별곡 등이 있으며 화전별곡은 김구의 저서 자암집에 실려 있다. 일설에는 김해와 전남 해남에서의 유배생활 중 지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으나 화전별곡에 나오는 지명으로 미루어 볼 때 이곳 남해에서 지었음이 틀림이 없다. 유배생활 중에 지었다고 하지만 귀양살이의 고난을 언급함이 없고 풍류스런 삶을 즐기는 여유와 멋이 있다.

특히 6연에서는 선생의 안분지족하는 높은 경지를 엿볼 수 있다. 모두 6연으로 되어 있는데 1연에서 5연까지는 경기체가의 형식을 그대로 취하고 있으나 6연은 다소 파격적인 형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