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문화원 사업
[ 1993 ] 대장경분사남해대장도감연구자료(지역N문화)
작성자남해문화원
등록일25.01.02
조회수189
◈ 대장경분사남해대장도감연구자료 ◈
팔만대장경남해분사대장도감의 일부가 남해에서 판각되었다는 기록은 이미 기술하였다. 정안이 사재를 들여 남해에 정림사를 지어 판각하였다라고하며 대장경판중종경록 간기에 기록되어 있어 남해에서 일부가 판각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나, 어느 곳에서 판각이 되었는지 기록과 흔적을 찾을 길은 없으나 역사 및 지리적 여건으로 보아 가능 지역을 고현면 대사리 대사부락을 중심으로 고현면 일대로 추측하여 본다. 고현면은 신라 신문왕때 전야산군의 소재지였으며 1202년에 면내에 회방사라는 대 사찰을 창건하였다하며 대사에 신라35대 경덕왕때(742~765)승전법사가 망덕사라는 절을 지었는데 화제로 타 버려서 개축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216년에 원묘국사가 옛날 망덕사터에 제자 원영과 법안을 시켜 80여간을 중찬하고 1216년에 나라에서 선사의 칭호를 받았다라고 한다.
전혀 내려오는 망덕사가 원묘국사가 중창하였다고 하는 대사에 있는 망덕사일 것으로 추정하여 본다. 또한 화방사의 전성기에는 각 마을마다 원이 있어 무려 30여 곳으로 보아 남해가 불교가 얼마나 융성했는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내용으로 보아 팔만대장경 판각 30여년전인 것이다.
정안은 하동군 출신으로 최씨 무단 정권시 개경의 제일 부자였으나 대세가 이미 이 성계의 등극으로 기울어지자 그는 홀연히 이 성계의 세력을 피하여 개경과 거리가 먼 남해안에 자리를 잡고 바라는 바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남해에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정 안은 하동 구자산(768mm, 악양면과 적량면에 걸쳐 있음)에 구자암을 지어 별장으로 사용하였으며 칠성봉에는 매씨가 살았다고 한다. 학리(하동군 횡천면) 뒷산을 정안봉이라 하며 정안의 집터라는 전설이 오늘까지 전해오고 있다. 팔만대장경의 판각당시 하동의 횡천강을 통해 섬진강을 이용 필요한 모든 물자를 수로를 통해 이용하였다고 보며 제일 가까운 곳은 관음포만으로 볼 수 있다.
현재 관음포만의 중간쯤 일제때 축조한 재방이 있어 안쪽에는 농경지로 되어 있으나 재방이 없다고 보면 관음포만의 길이는 2km가 넘을뿐 아니라, 대사부락의 아래입구까지 바닷물이 들어 왔다고 한다. 특히 간만의 차가 1~2m정도이며 바위가 없고 모래 뻘로서 형성되어 경사가 없는 완만한 지역으로 천연적인 요새라고 볼 수 있다.
관음포의 반대 방향은 강진만(설천면 비란리 앞바다)으로 불과 2~3백 미터의 짧은 거리로써 목재의 수송에 한 몫을 하였을 것으로 보아진다.
교통이 불편한 때라 천연적인 자연을 최대한으로 이용하기 위해 땟목과 자연 그대로를 택하여 운송하였을 것이며 목재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하여 3~4년동안 해수에 저려 기생충을 방치하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의 입지 조건을 고려했을 것으로 본다. 또한 불사의 대사업을 이룩하기 위하여 어느 좁은 공간만을 이용했다고는 볼 수 없다. 수천면의 사람을 동원하기 위하여 신호용으로 종각이 있었을 것이다. 현 오미자등(대사앞 등성)에 종각이 있어 현재까지 종지등으로 불리어 오나, 흔적은 없다. 당시 전 지역에 알릴 수 있는 종각이 있었을 것으로 보며 종지동에서 내려다 보면 관음포만을 비롯 면내의 전 지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중요한 등이다.
남해는 몽고병의 침입의 위험이 가장 적은 후방 지역으로 분사대장도감이 설치되어 판각되었다는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고 본다.
포상리의 선원은 선원과도 통하며 이미 대장도감이 선원사라고 알려져 있으나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현면 대곡리의 산닥나무자생지(천연기념물 제152호 지정)가 있으며 한 지역에 집단적으로 서식하고 있는 것은 간경사업과 관련이 있다고 추측해 보며 도마리 지역에 와야동(도자기를 굽던 도요지), 욧골(공장터), 도산(질그릇 만드는 곳)등과 남치리의 생기등에 상계골에 계사라는 암자와 금음상봉 아래 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져오고 있다. 상계의 계자는 임금의 집터나 큰 절터가 아니면 지명에 제자를 쓰지 못했다고 한다.
대사는 지명 자체가 큰절을 뜻하며 판각 사업의 30여년전 만덕사라는 큰 절이 중창되었으며 예기방은 옛날 양반들이 살고 있었을때 일반 평민은 이곳을 지나면서 반드시 의관을 단정히 했다고 하는설과 차면리의 금차광산에서 금을 캤다고 한다.
여러가지의 지명과 구전 및 학설에 의해 내려오는 얘기와 지리적 여건으로 보아 고현면 일대에서 팔만대장경의 일부가 판각된 제일 적합한 곳으로 본다.
고려대장경은 인류의 보물이며 어려움을 극복, 힘을 과시한 것은 어느 누구도 인정하는 바이다.
남해에 팔만대장경 남해분사대장도감이 설치되어 판각하였다는 사실의 가능성이 매우 높은 만큼, 발굴 사업에 한층 더 심혈을 기울여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해야 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