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무렵, 옛 남해읍 먹자골목 안에는 ‘송죽관’이 있었고, 롯데리아 아래쪽 골목에는 ‘산홍관’, 회나무 근처에는 ‘금화집’이라 불리는 요릿집 또는 기녀집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에는 중국인 ‘우상’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중국집도 있었다고 합니다.
장터와 음식점,요릿집이 어우러진 남해읍 거리는 제법 번화했으며, 남해 어르신들에게는 젊은 날의 추억이 깃든 공간이었을 것입니다.
금화는 당시 남해읍에서 이름난 기녀였습니다. 키가 크고 아름다움 미모를 지녔으며, 풍류와 멋을 아는 여인으로 남해의 한 시대를 풍미했다고 합니다.
금화가 직접 운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금화집은 당시 남해읍 사람들의 기억 속에 아주 강렬하게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빵주사는 방씨 성을 가진 인물로, 동네 궂은일을 도맡아 하던 순박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를 조금 모자란 사람처럼 여기기도 했으며, 동네 아이들은 빵주사를 따라 다니며 놀리거나 장난을 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빵주사는 묵묵히 동네일을 하며 살아갔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금화를 마음 깊이 사랑했습니다
남해읍에서 가장 화려한 여인이었던 금화와, 사람들의 놀림을 받으며 궂은일을 하던 빵주사.
두 사람은 서로 가장 먼 곳에 있는 인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금화를 향한 빵주사의 일방적이고도 순수한 사랑은 두 사람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줍니다.
금화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빵주사는 그날 이후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시름시름 앓다가 금화가 있는 곳으로 떠났다고 전해집니다.
사실과 전설의 경계에 놓인 이야기지만, 금화와 빵주사의 이야기는 한 시대 남해읍의 풍경과 사람들의 삶, 사랑과 외로움, 편견과 연민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혹시 금화와 빵주사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계시거나, 어르신들께 전해 들으신 분이 계시면 댓글로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송죽관, 산홍관, 금화집의 위치와 모습, 중국인 우상이 운영했던 중국집, 당시 남해읍 거리와 사람들의 관한 기억과 함께 들려주시면 옛 남해읍의 생활사를 기록하는데 소중한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 출처 : 남해문화원장 김미숙 페이스 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