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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학 연구

[ 2019 ] 제1회 남해문화원 향토사연구소 학술포럼

작성자남해문화원

등록일19.11.04

조회수104

첨부파일

◈ 제1회 남해문화원 향토사연구소 학술포럼 ◈

남해군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신문왕 10년(690년)에 최초의 행정기관인 전야산군을 설치했다. 경덕왕 16년(757)에 행정구역을 재편하면서 남해군으로 개명하고 고려 현종 9년(1018) 진주목 산하의 남해현으로 개칭되었다가 고려 공민왕 7년(1358) 왜구의 침략으로 지금의 하동군 북천 지역인 진주의 대야천부곡에 임시로 거처를 옮겼다.

조선시대인 1404년(대종 4) 46년 만에 남해현을 복구하고 1414(태종 14) 하동현과 합쳐 하남현, 1415년(태종 15) 하동현과 분리되고 금양부곡과 합해 해양현, 1417년(태종 17) 다시 독립되어 남해현, 1419년(세종 1) 곤명과 합하여 곤남군, 1437년(세종 19) 곤명과 분리되어 남해현, 1895년(조선 고종 32) 남해군으로 바뀌어 1906년(대한제국 고종 43) 지금의 창선인 흥선현을 병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해군의 치소가 고현면에서 남해읍으로 옮겨온 지 580년이 되었다. 치소의 이전 연혁을 살펴보면 신라 신문왕 10년(690) 전야산군을 고현면 지역에 설치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고려 공민왕 7년(1358) 진주 임내 대야천부곡으로 옮겼다. 조선 태종 4년(1404) 남해현을 복구하고 고현성을 축성해서 고현면에 치소를 두었다가 세종 21년(1439) 현재의 남해읍으로 읍치를 옮겼다.

조선 초기 이전에는 왜구의 침략에 대비하여 풍수적 요소보다 조망과 방어에 유리한 구릉지에 읍치를 두었지만 왜구의 평정으로 정주 여건이 좋은 평지로 이전하면서 풍수적 요인이 중요시되었다.

이전하는 읍치의 입지를 결정하는 풍수적 요인으로 내룡과 장풍, 득수의 풍수원리를 적용한 곳이 많았다. 남해읍의 경우 진산인 망운산이 주산인 봉강산으로 이어져 있으며, 남산을 안산으로 두고 있다.

남해읍의 풍수형국은 봉황을 주제로 하고 있다. 봉황이 진산인 망운산에서 남해읍으로 내려오는 비봉귀소형의 형국으로 봉황이 머물도록 봉황과 관련한 지명을 작명하고 봉황이 깃 들 수 있는 자연환경을 조성했다. 봉황은 서상의 상징으로 성군의 출현과 태평성대의 징조로 여겼다.

고현면에 있었던 치소를 남해읍으로 이전한 배경과 남해 읍치의 봉황 풍수를 고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남해읍의 봉황 스토리텔링과 디자인을 통해 남해군의 중심지인 남해읍의 역사 문화적 의미를 부여하고 경관조성과 향후 지명의 변화 등에 반영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