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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남해군향우회

第六章 三南의 絶勝 尋眞字欲無의 境 - 幽邃의 仙境 錦山三十八景(유수의 선경 금산삼십팔경)

내용
幽邃의 仙境 錦山三十八景(유수의 선경 금산삼십팔경)
출처
사향록(재경남해군향우회)

상세내용

 幽邃의 仙境 錦山三十八景(유수의 선경 금산삼십팔경)

 

 

 

금산은 예나 지금이나 삼남 유일의 영악(靈岳)이며 소 금강산(小金剛山) 이라고 일컬어져오고 있는 남해의 절승(絶勝)이다.

 

먼 옛날 진시황(秦始皇)의 시신 서불(侍臣 徐市)가 선남선녀(善男善女) 오백명을 거느리고 불로초를 캐려 영악으로 이름 높은 이곳을 찾아 들었다가 고문자 (俗稱徐市道此)를 남겼다는 이야기 하며 신라시대에 원효대사가 찾아와서 보광사(普光寺)라는 절을 짓고 산이름을 보광산(普光山)이라고 명명(命名)하였다는 이야기

 

의상대사(義湘大師)가 홀연홀몰(忽願忽沒)하는 영봉(靈峰)에 기단(祈壇)을 짓고 기도를 드렸다는 삼사기단(三師祈壇)의 이야기와

 

이 선경에 여덟 신선(神仙)이 모여 흥겹게 놀았다는 팔선대 (八仙臺)의 유래하며 이성계(李成桂)가 백일기도(百日祈禱)끝에 도통(道通)하여 등극(登極) 하게되자 영세불망(永世不忘)의 영산이라하여 비단(錦)으로 이 산을 두르게 하라 하였다하여 금산이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천동천녀(天董天女)가 가사(架娑)를 입고 내려와 목욕을 하고, 물을 길어갔다는 가사굴(袈裟窟)의 이야기등등 숱한 슬기로운 전설들이 깃들어 있고 선인들의 입김이 서려있는 신비로운 선경(仙境) 금산, 유구(悠久)한 영겁(永劫) 앞에 억조성상(億兆星霜)도 수유(須臾)련가 몇 천, 만의 세월이 흘렀건만 영겁의 영산임을 새삼 자부(自負)하려는 듯 금산은 오늘도 운무(雲霧)에 몸을 휘감고 창공에 우뚝 그 절관(絶冠)을 자랑하고 있다.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생이란 한조각의 주름이 피어 오르는 거와 같고 죽음이란 그 조각구름이 사라져 버리는거와 같은것.

천인단애(千仞斷崖) 위에서 형형색색(形形色色)으로 운무를 조화(造化)하는 봉마다의 기암괴석(奇岩怪石)들은 인생의 무상함을 이렇게 일깨워 준다.

 

浮游山還有

尋眞字欲無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으로 있다가 숙종오년에 남인을 탄핵한 죄로 남해에 유배되었던 약천 남구만(藥泉 南九萬)이 금산을 탐승하다가 심취되어 읊은 시가의 첫귀절이다. 바다에 떠있는 산에 올라 참된 선경(仙境)에 이르니 아 이제는 시정(詩情)마저 잊혀지는구나. 하는 뜻이다. 절경에 심취된 그는 두루 금산 명승을 찾아 다니면서 탐승하고는 제영등금산(題詠登錦山) 이라는 한편의 시를 읊었던 것이다.

 

광활(廣濶)하고 웅장(雄壯)하고 숭엄(崇嚴)하면서도 한없이 아름답고 다감(多感)한 금산,

 

상상봉의 망대(望臺)에 올라 사위(四圍)를 휘둘러 보노라면 일망무한(一望無限)마 치 푸른 수단을 깔아 놓은듯 망경창파(茫頃蒼波)로 에워져있고 멀리 북으로는 첩첩이 싸인 소백산줄기의 연상봉(連上峰)들이 운무에 싸인채 마치 한폭의 묵화(墨畵)에 대하는듯 황홀지경(恍惚之境)을 이룬다. 눈을 굽어 발밑을 보면 금산三十八경중 스물여섯가지의 기암기봉(奇岩奇峰)들이 저마다의 절묘한 자태(姿態)와 절관(絶冠)을 자랑이나 하려는듯 앞다투어 한눈에 뛰어 든다.

 

특히 망대(望臺)에서의 일출경(日出景)은 비길데 없이 웅곤미려(雄渾美麗) 하여 천인(天人) 이상여(相與)하는 듯 흠쾌(欣快)하고 숭엄(崇嚴)하다. 또 옛날 이성계(李成桂)가 쌍홍문(雙虹門)에서 돌배를 타고 나가서 해상동굴(海上洞窟)을 뚫었다는 전설의 세존도(世尊島)가 일엽단주(一葉丹舟)처럼 머지않게 떠 있어 그 경개(景槪)를 더욱 듣구어 준다.

 

금산은 영악, 그 유수(幽邃)하고 신비스러운 금산 三十八경에는 우리고장의 얼과 우리 조상들의 슬기로운 넋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望臺……금산에서 제일 높은 상상봉으로 여기에 오르면 일망지하(一望之下)에 금산三十七경과 금산을 에워싼 망경창파를 한눈으로 굽어볼 수 있다. 특히 천인(天人)의 조화(造化) 인듯이 너무나 장엄한 일출경(日出景)은 누구나 도취(陶醉)시키고 만다.

 

또 이곳에는 고려시대부터 사용되어 오던 우리나라 최고(最古) 최남단의 봉수(烽燧)가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한채 깊은 감회를 뿌려준다. 사방으로 시야(視野)가 탁 트여 그 광활한 조망이 비길데없이 황홀하여 망대라 부른다.

 

文章岩……망대에서 남쪽 내림 길목에 있는 바위로써 이조 중종시대의 한림학사 (翰林學士)인 신재 주세붕(愼濟 周世鵬) 선생이 글씨를 썼다고하여 문장암(文章岩)이라 일컫는다. 현재 「由虹 門 上錦山」 즉 쌍홍문을 거쳐 금산 상상봉에 이르노라 라는 각자가 남아 있다.

천하를 주유(周遊)하던 시객(詩客) 신재인지라 절승인 우리 금산에서도 명시를 읊었음이 분명한데 아직 발굴치 못한것이 끝내 아쉽기만 하다.

 

大將峰……금산 보리암(菩提庵) 뒤에 우뚝솟은 높고 큰 층암(層岩) 으로써 그 자태가 마치 대장상(大將像) 처럼 웅곤(雄渾) 하고 장엄(壯嚴) 하게 창공을 찌르고 서 있어 대장봉이라 부른다. 그 왼편에 용호롱주(龍虎弄珠) 모양의 바위가 있는데 예로 부터 이 용호롱주 바위가 있으면 반드시 거기에는 대장이 있는 법이라고 일컬어져 내려오고 있다.

 

刑吏岩……이 형리암은 대장봉앞에서 마치 허리를 굽혀 절하는것 같은 형상(形相) 으로 생겼으므로 이를 형리암이라 부른다. 보리암에서 바라보면 이 형리바위는 금시 떨어질것 같은 두려움마저 느낄정도로 허리를 굽힌 형상이 절묘(絶妙)하다.

 

天鳩臺……탑대(塔臺)의 바로 북쪽에 자리잡은 그다지 크지 않은 바위이다. 그 생김새가 비둘기처럼 생겼다고 하여 천구대(天鳩臺)라 한다.

 

李太祖祈壇……이태조(李太祖)가 백일 기도함으로서 등극(登極) 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깃든 유적이다. 탑대에서 바로 건너다 보이는 삼불암(三佛岩) 아래에 있다. 천하를 잡으려는 이태조는 전국명산을 찾아 기도를 올렸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가 마침내 금산에서의 백일기도로 등극하게 되자 영구불망(永久不忘)의 영산(靈山) 이라하여 비단으로 두른다는 뜻으로 산 이름에 비단금(錦) 자를 내려 금산으로 개칭하게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袈裟窟……탑대 동쪽에 있는 암굴(岩窟)로서 옛날 낙서대사(洛西大師) 때 천동천녀(天童天女) 가 가사(袈裟)를 입고 내려와서 목욕을 하고 물을 길어 갔다는 전설에 따라 가사굴이라 한다. 이 가사굴에는 지금도 맑은 샘물이 흘려내려 수양이나 기도하는 불자(佛子)들을 오랫동안 머물게하는 선경(仙境)으로 이름이 높다.

 

三佛岩……이태조기단(李太祖祈壇) 왼쪽 깍은듯이 높은 직립대암벽(直立大岩壁)의 정상(頂上)에 있다. 마치 부처님의 좌상(座像)처럼 생긴 바위가 세개가 있다고하여 삼불암이라 부른다. 전설에 따르면 이태조가 백일기도를 하기 전에는 이 불상(佛像) 모양의 바위들이 모두 넘어져 누워있는 모습이었는데 백일기도가 끝나자 그중 두개의 바위가 일어나 앉은 좌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세개의 바위 모두가 일어나 앉은 좌상이 되었더라면 이태조는 필시 중국 땅까지 제패(制覇)하였을 것이라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天鷄岩……역시 이태조 백일기도와 관련있는 전설이 간직된 닭모양의 바위이다. 이태조가 기도를 올리고 있을때 뜻밖에도 밖에서 영롱한 닭울음소리가 들리기에 알아보니 바로 그 자리에 닭모양의 이 바위가 남아있어 천계암(天鷄岩)으로 불러왔다고 한다.

 

天馬岩……망대 동쪽에 있는 두꺼비 모양의 바위로서 이태조가 기도를 올리고 있을 무렵에는 이를 회두암(回頭岩)이라 불렀다고 전해 오고 있다.

 

萬丈臺……탑대의 바로 서남쪽에 마치 깎아 세운듯이 천인단애(千仞斷崖)를 이루고 있는 높은 절벽이다. 그 높이가 만장(萬丈)같이 높고 깎은 듯이 반듯하다 하여 만장대라 불러워지고 있다.

 

音聲窟……깊이 五미터 높이 二미터 밖에 되지않는 조그마한 암굴(巖窟) 이지만 돌이나 막대기로 굴바닥을 두드리면 북소리와 상고소리가 난다. 이 굴은 만장대 바로 서쪽에 있다.

 

龍窟……음성굴과 나란히 있는 조그마한 굴이다. 옛날에는 용(龍)이 살고있었다는 전설에 따라 용굴이라 부르고 있다.

 

雙虹門……음성굴에서 서·남쪽으로 큰바위 봉우리 암벽(岩壁) 두개의 균형잡힌 구멍이 뚫려 있다.

이 굴속에 들어서면 뫼의 속이 비여있고 천정벽에도 펑 구멍이 뚫려져 파란하늘이 손끝에 닫는것 같다. 정상으로 통하는 구멍을 올라 뫼밖으로 나서면 광활하고 아름다운 금산의 전경이 눈아래에 펼쳐진다. 금산 상상봉과 보리암으로 통하는 오묘(奧妙)하고 운치있는 관문(關門) 인 격(格) 이다.

그 옛날 세존(世尊)이 여기에서 돌배를 얻어타고 이 쌍홍문의 오른쪽 홍문으로 빠져나와 앞바다에 있는 세존도(世尊島)한 복판을 뚫고 나갔기 때문에 세존도에는 큰 해상동굴이 생겨났다는 전설이다. 금강산에도 홍문(虹門)은 하나밖에 없는데 금산에는 두개의 홍문이 있어 여기에서 쌍무지개가 핀다하여 쌍홍문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신재 주세붕선생이 얼마나 이 천연조화(天然造化)의 황홀한에 심취(心醉)하고 감동하였으면 문장암에「由 門上錦山」이라 새겨두고 갔을까?

 

四仙臺……쌍홍문에서 천구암으로 조금 가노라면 마치 신선 신녀(神仙·仙女)같은 모습의 바위가 네개 서 있다. 옛날 삼신산(三神山) 四선이 놀다가 갔다는 전설에 따라 四선대라고 불러워지고 있다.

 

百名窟……사선대에서 북쪽으로 향해 내려가 면, 백명굴(百名窟)에 이른다. 입구는 과히 넓지 않으나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져 백명은 능히 앉아 놀수 있다하여 백명굴이라 부른다. 임진왜란때 집단적으로 피신생활을 한 양솥, 냄비를 걸었던 아궁이 흔적까지 남아 있다.

 

天狗峰……일월봉(日月峰) 아래쪽에 있는 바위로서 그 형상이 개와 같아 천구봉이라 불러워지고 있다.

 

帝釋峰……천구암 왼편에 있는 바위를 제석봉이라 부른다. 옛날 무당의 신주인 제석(帝釋)이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坐禪臺……제석봉 왼편에 있다. 옛날에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元曉大師、義湘大師、尹弼居士) 등 三대사가 좌선 수도(坐禪修道)하던 곳이라 전해지고 있다. 심지어 三대사가 앉았던 자리가 바위위에 뚜렷이 새겨져있다는 이 바위는 너무 험준(險峻)하여 오르기에 매우 힘들기도 하다.

 

三師祈壇……좌선대 아래쪽에 옛날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 세분이 이곳에 기단을 만들어 놓고 기도를 올렸던 곳이라하여 삼사기단(三師祈壇)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원래는 여기는 윤필거사의 기단이었고 원효대사의 기단은 지금의 보리암(菩提庵)터였으며 이 절 바로 뒷쪽 형리암(刑吏岩)밑이 의상대사의 기단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猪頭岩……좌선대 북쪽에 있는 바위로서 그 생김새가 마치 산돼지의 머리같다고 하여 저두암(猪頭岩)으로 불러 오고 있다.

 

燭臺峰……향로봉에 있다. 그 모양이 마치 촉대(燭台)와도 같아 촉대봉으로 부른다. 원효, 의상, 윤필, 삼사(三師)가 기도를 올릴적에 촉대로 사용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香爐峰……삼사기단 왼편에 있는데 그 모양이 향로(香爐)와 같다고해서 붙혀진 이름이다. 이 향로 또한 삼사가 기도를 올릴때 촉대봉과 함께 향로로 썻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獅子岩……좌선대에서 상사암(相思岩)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큰 바위이다. 그 모양이 흡사 사자(獅子)와 같다하여 이렇게 부르고 있다.

 

八仙臺……마치 여덜신선들이 유희하는 모습으로 서있는 바위이다. 신선모양의 바위가 여덟개가 나란히 서 있다고해서 八선대라 한다.

 

想思岩……금산에서 가장 웅대한 평면 바위면에 유일하게 로맨틱한 전설이 깃들어있다. 그 옛날 숙종시대, 전라도 돌산지방 사람이 남해로 이주(移住)하여 왔는데 그 안집 여인이 너무 예뻐서 상사병(想思病)에 걸렸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사랑은 강한것, 그의 불꽃처럼 뜨거운 사랑은 여인의 감동을 불러 일으켜 죽음 일보전에 이 바위위에서 사모하던 그 여인과 숙정(宿情)을 풀어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는 낭만적인 전설이 깃들어 있다.

 

九井岩……상사암에 연이어진 암면(岩面)에 아홉개의 둥근 확이 있어 우수(雨水)가 괴이면 아홉개의 샘이 되기때문에 구정암(九井岩)이라 부른다. 남해로 귀양살이 왔던 약전(藥泉) 남구만(南九萬)은 제영등금산(題詠登錦山) 이란 시에서 이 구정암을 보고 「何年唘九井」 몇년을 두고 이 아홉개의 샘을 팠을까 하고 영탄(泳嘆)한 귀절을 남겼다.

 

甘露水……상사암에서 조금 가면 바위밑에서 실오라기처럼 새어나오는 물이 있다. 숙종대왕이 병환때 이 생수를 마시고 쾌유(快癒)하였다고 하며 구군천(九君泉) 이라는 각자(刻字)까지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어 후세사람들은 이 물을 만병통치의 감로수(甘露水)라 불러오고 있다.

 

弄珠岩……대장봉의 왼편에 있는데 세개의 바위들이 마치 용호(龍虎)가 농주(弄珠)를 하고있는 모양이어서 이를 용호농주암이라 불러오고 있다.

 

華嚴峰……대장봉과 농주암의 왼편에 있다. 바위모양이 한문자의 화엄(華嚴) 두글자 모양이어서 화엄봉(華嚴峰)이라 전해지고 있다. 옛날 원효대사가 이바위에서 화엄경(華嚴經)을 읽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신라불교 오교중(五敎中) 화엄종은 의상대사가 개종하여 포교한 것인만큼 만약 이 화엄봉이라는 이름이 불식(佛式)에서 유인된것이라면 이 곳에서 화엄경을 읽은 스님은 원효대사가 아닌 의상대사가 아닌가 한다.

 

日月峰……층암절벽(層岩絶壁)을 이룬 두개의 높은 바위를 말하는 것으로 가까이 가서 보면 날일자(日) 모양이고 좀 떨어져 보면 마치 달월자(月) 형으로 보여 이를 일월봉이라 부르고 있다.

 

搖嶺……일월봉 왼편에 있는 흔들 바위로서 본래는 그 모양이 거북이와 같다고 하여 구암(龜岩)이라 하였으나 그 큰 바위가 한 사람의 힘으로 능히 흔들리기 때문에 요령(搖嶺)이라 하고 있다.

 

扶蘇岩……옛날 중국 진시황(秦始皇)의 아들 부소(扶蘇)가 이곳에 귀양살이를 와서 살다가 갔다는 전설에서 부소암이라 부르고 있다. 어찌보면 제관(帝冠) 모양의 약간 둥글고 운치있는 큰 바위이다.

 

徐市題……부소암으로 부터 서·북쪽 그러니까 금산 배면(背面) 계곡의 큰 화랑암에 새겨진 고문자(古文字)를 말한다. 一명 남해각자라고 하는 이 고문자는 옛날 진시황의 시신 서시(徐市)가 선남선녀 五백명을 거느리고 불로초를 캐려 이곳을 찾아들어 새겨놓은 서시과차(徐市過此)라는 글자라고도 하고 또 글안(契丹)글자가 아닌가하는 이도 있다. 그런가하면 이 문자설과는 정반대로 「이곳은 그어른의 사냥터임」하고 새겨둔 이른바 선각설(線刻說)이 나왔다. 이 판독은 인도의 저명한 고고학자(考古學者) 인 데세판데박사의설이다. 이처럼 이 고문자는 문자인지 그림인지 판독되지 못한채 신비로운 베일속에 싸여있다.

 

世尊島……금산 앞바다 멀리 떨어져 있는 무인 돌섬이다. 옛날 이태조가 금산 쌍홍문에서 돌배를 얻어 타고 이 섬 한복판을 뚫고 지나갔다는 전설과 함께 이 세존도 한복판에는 그림을 그린듯이 원형으로 뚫어진 해상동굴(海上洞窟)이 물에 떠 있다.

 

老人星……금산은 우리나라의 최남단에 자리하고 있으므로 춘분 추분(春分, 秋分)의 전三일 후三일의 七일동안 노인성(老人星)이 제일 잘 보인다. 노인성을 보는 흥취 또한 금산 명소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자랑이리라. 노인성은 수(壽)를 맡는 별이라 하여 이 노인성을 보면 장수를 한다는 전설이 있어 춘, 추분을 앞두고 이곳을 찾는이가 더욱 많다.

 

日出景……금산의 일출경은 그 장엄하고 신비스럽고 아름다움에 있어 우리나라 어디서나 맛볼수 없는 금산절경중의 극치(極致)이기도 하다. 동녁바다가 끓어오르면서 수평선과 하늘, 아니 온 천지가 끓어 오르듯 뻘겋게 달아 오르는 여명(黎明)의 장관, 一년 두고 三百六十五일 어느 아침이건 맑은 날씨일 때는 끓는 바다에서 붉게 솟아 오르는 이 신비롭고 황홀한 일출경에 한없이 도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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