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외에도 상대별곡(霜臺別曲) 화산별곡(華山) 도동곡(道東曲) 독악八곡(獨樂八曲) 오륜가(五倫歌) 연형제곡(宴兄弟曲) 등도 모두 이와 비슷한 시가(詩歌)들이다.
이처럼 한림별곡의 유형(類形)이 고려조부터 이조에 걸쳐 성황을 이루었고 또한 오랜 동안 계승(繼承)되어 온것은 한림별곡이 고려조 귀족들의 새 형식의 가요로서 공사간의 연회석(宴會席)에서 성행되었기 때문이었다.
더우기 이조에 들어와서 이 시가(詩歌)들이 혹은 궁중가악(宮中歌樂)으로 쓰이게 되고 예문관(藝文館)에서도 노래로 불려지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한림별곡체의 모작(模作)이 한 때 성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한림별곡의 형식을 그대로 모작하거나 따르기를 피하고 새로운 형식이 모색 추구(追求)되었다.
변계량(卞季良)의 화산(華山)별곡 권근(權近)의 상대별곡(霜臺) 여기에 김구(金絿)의 화전별곡 등이 그 취향을 새롭게 시도했던 시가들이다.
원래 변곡체(別曲體)는 고려문신(文臣)들의 향락적 퇴폐적풍조(享樂的 頹廢的 風潮)와 기악(妓樂)의 성행(盛行)에서 발견된 것이었으나 이조중엽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퇴폐기풍이 비위에 맞지 않는 이조유신(李朝儒臣)들에 의해서 그 기세는 점차로 꺾여 이윽고 김구의 화전별곡과 주세붕(周世鵬)의 도동곡(道東曲)을 최후로 경기체가의 유형은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고장의 경승을 노래한 김구의 화전별곡은 우리나라 경기체가(景幾體歌)의 최말기적 작품(最末期的 作品)인 셈이다.
천지애 지지두 일점선도는 멀리 남쪽바다에 떨어져있는 화전을 말한것. 화전은 남해현의 별칭이다. 동국여지승람남해현(東國輿地勝覽 南海縣)을 보면 이름이 전야산(轉也山) 해양(海陽) 전산(轉山) 화전(花田) 윤산(輪山) 등으로 나온다.
한양에서 귀양이 왔던 자암의 눈에는 천사십리나 떨어진 남해는 곧 하늘의 끝인 「천지애」요 땅의 머리격이라 「지지두」 「한 점의 선도」(仙島)와도 같다는 뜻으로 읊은 것이다. 「산천기수」 「종생호준」의 종(鍾)은 모인다는 뜻.
위 천남승지의 「위」는 위에서 본것처럼 경기체가의 특징으로 「偉」 혹은 「爲」로 나온다. 이것은 일종의 감탄사.
경(景) 긔엇더하니잇고……는 그 광경이 어떠하냐는 뜻이나 그러나 그 뜻보다는 전후를 연결하는 말로 더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경기체가로서 이것은 반드시 있는 특징이다. 이 제1장은 절경(絶景) 속에 감싸여진 화전이 그 얼마나 아름답고 사람살기 좋은 곳이냐하는 감탄의 뜻이다.
이 6장은 경기체의 형식이 아니다. 화전별곡이 나올때는 경기체가는 벌써 한물이 가고 흥미를 잃어 자암은 새로운 가풍으로 읊은것 같다.
이 6장은 자기 자신의 행복감을 나타낸 것이라 할까. 화전별곡 전체의 주제(主題)이기도 하다. 경락번화는 서울의 번화를 말하는 것이고 주문주육은 부잣집의 술과 고기 즉 오대 광실 높은 집에서 보다도 석전모옥 비록 돌밭 초가집이나마 때는 풍년이요 정든 벗과의 향촌의 모임이 더 행복스런 애착과 자족감을 갖게 한다고 끝맺고 있다.
그는 이처럼 아름다운 남해의 승경에 심취하고 흠뻑 젖어버려 행복한 심경을 이 화전별곡으로 읊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