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재경남해군향우회
정봉렬 - 향우 글과 고향에서 온 글
상세내용
앞서지 않는 후회
몇 년 전부터 신문이나 TV에서 고향 남해에 관한 좋은 기사나 풍광(風光), 먹거리 등이 자주 등장하는 바람에 주위의 친구들이나 지인들로부터 '남해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자랑스러운 고향'에 대한 그들의 진정성 어린 감탄사로 인해 나도 모르게 '남해 자랑'에 목소리가 커지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이 화끈거리는 경우가 생기는 사례가 쌓여져 갔다.
머무는 시간의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여러 가지 연유와 다양한 교통수단으로 남해를 다녀가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나는 고향을 찾을 때마다 남부터미널에서 오고가는 시외버스를 주로 이용하는 편인데, 표를 미리 예약해 두지 않아서 곤란을 겪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전국이 일일생활권이 되어 매일같이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고향 남해는, 더 이상 조선시대의 『화전별곡(花田別曲)(※화전은 남해의 별칭)에 나오는 절해고도(絶海孤島)가 아니라 내륙과 요리조리 연결괸 육지가 된지 이미 오래이다.
과거에 '섬'이라는 남해의 지경학적(地經學的) 요인들은 '남해인(南海人)'에게 근면하고 질박(質朴)한 특성과 정신, 그리고 강인한 생활력 등 긍정적인 DNA를 부여해 주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낮선 사람 또는 타지인(他地人)들에 대한 경계심 내지 배타성 또는 완고성(頑固性)이 다소 강하다는 부정적인 성향도 자연스럽게 형성되게끔 작용하였을 터이다.
남해를 다녀온 여러 친구나 지인들이 나에게 전해주는 여러 가지 비판적인 '남해 이야기'는 남해를 고향으로 둔 이른바 '타향살이하는 남해사람'들에게도 똑같이 경험하고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고 한다.
오래전에 고향을 떠나 도화지로 나간 사람들은 그동안 고향을 지켜온(?) '남해인'들에게는 외지인(外地人)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7대 무역국가로 진입하는 시대에, '한국의 남해'에서 '아시아의 남해', 나아가 '세계의 남해'로 발전하는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잠재능력이 우리 남해인의 불요불굴(不橈不屈)의 의지와 남해가 보유하고 있는 자연환경과 역사적 자원 속에 스며있다고 나는 확신하고 있다.
그러한 꿈을 꾸기에 앞서, '남해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사람이나 친구나 친척 등 안면 있는 사람에게 대하는 것과는 딴판으로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무뚝뚝하게 응대한다는, 즉 불친철하다는 '외지인'의 편견(?)을 불식시키는 일이, "남해에 갔더니 값이 비싸고 바가지 쓴 기분"이라는 불편한 심기를 무마하는 일보다 시급한 과제일 것 같다. 친절은 행정서비스나 상거래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이 된 세상이기에....
남해를 고향으로 둔 '외지인'이 군청에 무슨 간단한 행정행위(인, 허가 또는 신고사항 등)를 신청하였는데, 그 법정처리기간이 지나도록 가부간에 처리가 되지 않아 우여곡절 끝에 담당자를 겨우 만나 규정을 제시하며 항의하였더니 공휴일을 빼고 기간을 계산하기 때문에 늦어진다고 하더라는 이야기를 몇해 전에 지인으로부터 들은 적도 있다. 나는 그가 그런 일로 잘 찾지 않던 고향을 몇 번이나 오고 가고 하였으니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위로하였다.
남해에 관한 좋고 안 좋은 이야기를 남에게서 듣기 보다는, 나 스스로 자주 고향을 찾아보고 변화하는 고향의 모습과 상황들을 경험하고 느끼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여, 일 년에 겨우 네 번 정도(*내 딴에는 제법 많은 것으로 착각) 내려오면서 나중에는 꼭 귀향하리라는 꿈을 버리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나 몇 년 전 아버님(故 隅泉 鄭敬善교장)이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 그동안 훨씬 자주 그리고 많이 고향에 왔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해일처럼 가슴 속으로 밀려 왔다. 결코 앞서지 않는 후회와 함께...
텅 빈 고향집에서 와서
혀 차는 새의 혀 차는 소리를 듣는다
"체"인지
"쩝"인지
대나무 숲에선가
정갈한 자귀나무 가지에선가
혀 차는 새의 혀 차는 소리
한숨일까
노래일까
이름도 모르고
굴뚝새만 한지 물총새만 한지
크기도 모르고
얼마나 귀여운지 의젓한지
생김새도 모르지만
되돌릴 수도 없고
돌아갈 수도 없는
어리석은 삶의 긴 그림자 뒤로 하여
해 저무는 고향집 돌아 나올 때
혀 차는 소리 사이사이 밀려오는
단 한 발자국이라도 앞장서지 않는 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