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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심 - 동문문원

내용
정복심 - 정 아무개로의 탄생에 대하여
출처
망메새

상세내용

정 아무개로의   

      탄생에 대하여

 

 

 

나 어릴 적, 잠은 안 오고 밤이 깊을수록 오히려 정신만 말똥말똥 고통스런 날이 있었다. 대충 초등 5학년 쯤 이었나 보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밤 창호지 하나를 사이에 두고 문밖의 물기가 온 몸에 스며들던 날. '내 죽어서'시리즈는 그런 밤이면 늘 나를 괴롭히던 단골메뉴였다. 그 시간 취한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가 빗물에 섞이고 있었다.

 

귓가에 빗소리는 더욱 또렷해지는데 도대체 우리가 죽어 이 정신, 영혼은 어디로 가는 걸까. 모두 떠난 후, 건너편 저 무덤 속에 누워 있을 때, 이렇게 비라도 내리면 얼마나 무서울까, 얼마나 적적할까, 외로울까, 스산할까, 평생 가도 알 길 없는 '고독'이나 '무상'이란 말을 알 턱도 없는 조그만 아이는 어쩌자고 현실 너머 사후 세계까지 헤아리고 있었던 걸까. 산중의 습기에 젖어가던 밤, 눈물까지 글썽이며.... 연이여'흰 코고무신'의 자동적 연상에 머리가 깨어질 것 같았다. 상여를 따라가 보면 하관시 고무신도 함께 묻는 것을 몇 번인가 본 적이 있다. 환경이란 이렇게 온 생을 통해 막강한 영향력을 가짐을 실감하는 부분이다. 당시 우리 집은 한달에 두세 번 주변에 무덤이 생겨나 제법 으스스한 동네 야산에 있었다. 자연히 죽음은 늘 가까웠고, 이것은 나의 생에 여러 방식으로 닿아 있다. 빗물, 바람, 꽃잎, 덤벙, 막걸리 심부름 등 지난날의 추억과 함께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여기 내가 이렇게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운 유년의 기억들로 돌아가련다. 그 비 오는 밤들의 무덤 속 구신은 바로 나였다. '내 죽어' 저 산 속, 큰 소나무 밑에 누으면 자두 꽃 피는 봄 낮, 단풍 짙어가는 가을날은 견딜 만 했다. 진달래, 흩날리는 아카시아, 춤추는 억새풀 등등을 생각하면 고행도 낭만이었다. 그러나 이렇듯 사위가 연푸른 밤, 신령스런(?) 안개까지 뭉글거리는 밤은 견딜 수 없다. 썩지 않는 그 흰 코고무신의 임자는 무서워 어디도 나갈 수 없고, 춥기도 할 테고, 더 나쁜 것은 그 고무신을 신고 우중에 나돌다 산 사람들과 혹 마주치면 무조건 기함을 할 것이란 생각에 더욱 참담했었다. "나예요! 나란 말예요!" 아무리 외쳐도 소통할 수 없는 그대와 나 사이의 이 깊은 절망, 존재 자체로도 고통이란 것은 대책 없는 천형이다. 그 쓰라림은 어디 그뿐 이겠냐만...., 인간의 영원한 난제, '죽음'이 12살 그녀를 괴롭혔으나 답해 줄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주무시고 엄마는 피곤에 절어 또 역시 잠에 취해있고, 그리고 올망졸망 동생들, 그들은 내겐 그냥 아가일 뿐이었다.

 

이 괴로운 사유와 함께 이렁저렁 내 키가 한 마디나 올라갈 즈음, 문제의 그 날은 새벽에 잠이 깨었는지, 음력 동짓달 밤이 무척 긴 날이었다. 초저녁에는 견딜만했던 이부자리 밑이 냉골처럼 싸늘해져 그 기운에 잠이 깨었던 모양이다. 분명 바로 밑 동생이랑 둘이 나란히 이불을 덮고 누웠는데 온 몸이 달달거려 새벽에 눈을 뜨니 저 윗목 한 데에 밀쳐져 있었다. 동생만 챙기시는 할머니는 동생과 둘이만 잔뜩 이불을 당겨 덮고 있네. 글이 이렇게 길어진 이유는 '탄생'에 대한 12살 여아의 '성찰'이라고나 할까. 그래! 탄생은 바로 이런 것이야! 그날밤 대단한 깨달음(?)을 준 문제의 이불을 할머니와 동생에게서 나꿔채듯 잡아당겼다. 그리고 돌아누으며 평소 할머니와 죽이 착착이던 동생 엉덩이를 발로 뻥~ 밀어버렸다. 그 순간 할머니는 내 등짝을 찰싹 때리면서 일갈~ "빌어 묵을 가시나가~ 함부로 발목데기를 쳐 놀리고 자빠졌노~" '아니, 잘못은 누가 먼전데?'

 

그런데 일이 커져버렸다. 자다가 엉덩이를 걷어차여 얼이 빠져있던 동생은 원군이 등장하자 울음을 터뜨려 우리 집의 독재자 아버지가 깨어나신 것이다.

아버지는 그 전날 아침부터 술을 마셔 초저녁이면 깊은 잠, 새벽 그때즘이면 잠도 술도 딱 깰 시간, 맏딸인 나는 엄마도 벌벌 떠는 아버지께 늘 맞서곤 했다. 우찌자자능깁니까?하고 앙칼지게 대들곤 했었다. 집에선 유일하게 오죽하면 그랬겠냐고 슬픈 일이다. 참으로......머리통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어른한테 엉성(원성)을 하능기고? 그러나 결과는 그 때마다 매 타작으로 돌아왔고 그날 역시 빗자루로 흠씬 두들겨 맞았다.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아니면 이래서 저래서 지가 그랬습니다. 찬찬히 설명하면 좋으련만, 나 억울타 눈치 없이 막 대들었으니.... 그랬다. 부드럽게 내 의견을 전달하는 소통의 재주는 예나 지금이나 꽝이었다. 어쨌든 맷집은 더욱 단단해지며 간도 멍석만해져 그때도 지금도 때때로 수습불가 한번 씩 간 크게 지르곤 했으니, 앞에서 언급했듯, 환경은 인간을 무지막지하게 지배하는 것을 확인하곤 했다. 더욱 슬픈 것은 집안내력에 유전을 따지면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결곡 우성은 우성끼리 열성은 열성끼리 짝을 지울 수밖에 없는 현실에 비애을 느끼게 된다.

악순환이라 했던가...

 

각설하고 결국 새벽부터 12살 그녀는 빗자루 세례를 받고 억울해서 이러고 살아야 하는 건가 잠깐 생각도 했었지. 할머니를 비롯하여 내 남동생, 온 식구들을 싹~ 무시하고 이불을 딱 내 몫(?)만큼 얌전히 끌어와 머리끝가지 뒤집어썼던 것 같다. 그리고 숨죽여 울었다. 어쩌면 누군가 한 대 때려주길 바랐을 지도 모르는 혼돈의 시기, 그 날, 억울, 분함, 저항불가의 무기력(?) 등으로 가슴이 뻐근히 조여 왔을 게다, 너무나 우아하지 못한 내 유년에 대해 통곡했을 거다. 한참 울다가 갑자기 스친 생각, 왜 나는 하필이면 요런 집에 태어났을꼬? 그때, 어리~한 머릿속으로 퍼뜩 떠 오른 생각. 가만 보니 이만만 해도 다행인가. 재수 없었으면 말 못하는 저 장닭으로 태어났을 수도 있었겠네.

 

그렇다. 우리는 모두 영혼을 가지고 있고 그것만은 고유한 것이며 쭉~나라비(차례)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그 때는 이 육신은 결정되지 않은 상황일거야. 마치 군인들의 고공낙하 훈련처럼 비행기 안에 주르르~~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 가슴은 두근두근~ 터질 것 같은 공포와 호기심 그리고 무조건 뛰어내려야 하는 두려움으로 꽉 차있을 것이다. 막이 오르기 전의 배우들과도 비슷한 그리하여 드디어~ ㅇㅇ야 ~~ 뛰어내려~~ 저기 저 밑. 산 밑에 있는 집 지붕~~□ □야~~ 너도 뛰어내려~~ 넌, 저기 사거리통 아이스케키집 지붕~~ 그리고 ◇◇야~~ 넌, 저어기 ~~고랑 가 뱀탕집으로~~ 때로는 벌건 대낮에도, 그리고 봄바람 살랑대는 보리밭 속에도, 이렇게 하여 우리 각자는 그의 소속이 결정되었을 거라고 그 날 밤 믿게 되었다.

 

더 큰 깨달음은 이 모두가 하나의 경험이며 우리는 언젠가 또 다른 곳에 점지되어 다시 주어진 생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자의 경험은 각기 다르고 재미 날 수 있으니, 나름대로 즐겁게 살아내야 한다고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그 어린 날 나름의 득도를 한 것이다. 우리네 생은 한바탕 꿈이며 연극이라고 했던가. 대본 하나를 손에 쥐고 이승에 내려와 각자의 역을 충실히 해내고 돌아간다는 누군가 불행에 빠져있다면 그건 바로 용케 피한 나의 배역일 수 있으며, 언제 나에게도 주어질지 모르는 장면들, 상황들, 그리고 느껴야 할 아픔들, 겪어야 할 비극들 알 수 있었다. 반대로 현재 행복한 누군가의 삶 등 등. 역시 또 다른 내 생일 수 있으리라. 그러니 슬퍼할 것도 억울할 것도 없이 그리고 교만도 착각도 허망이라 그저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면 될 터이다. 우리 개개인은 이렇듯 누군가"또 뽑기"하듯, 각자 뽑아낸 패찰을 채워 생 한가운데로 털석 ~ 내려놓은 것임에 틀림없다.

 

아침, 짐짓 무연코자 스스로를 다독여 잠들었던 기억과 부산 햇살 아래 누이를 흔들며 미안해하던 동생의 눈빛이 끊어진 필름 한 토막처럼 그 빛의 느낌까지 아직도 선명하다. 존재의 확인, 비록 사라지고 없다할지라도 내기억 속에 영원할 것만 같은데... 그러나 어느덧 망각의 조짐들이 슬슬 여기저기 기웃겨려 오늘은 여기까짓 정황히 지치게 기록하여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