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재경남해군향우회
이처기 - 모교의 역사, 추억, 학창 주변의 유배문학이야기
상세내용
주마등 같이 떠오르는
학창의 실루엣
▶ 들어가며
재경 남해 남해중 · 제일고 동문회 회지 발간을 축하 합니다.
재경남해중학교 동문회를 맡아 애쓰신 김재전 전 회장과, 재경 남해중? 제일고 총동문회 초대 회장 유광사 동문께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현 장동규 회장외 여러 부회장, 대외 총괄 업무를 맡으신 김재일 편집위원장과 편집 실무의 중책을 맡은 감충효 회지발간 부위원장, 최동진 사무총장, 양영근 편집위원 외 여러 편집 위원과 후배 여러분께 격려를 보냅니다.
나는 남해중 2회, 남해농고 7회, 그리고 남해여중 · 남해여고 교사를 한 사람이라 남해농고와 남해여고가 남해제일고로 통합, 학교가 다시 출발하게 되었으니 중 · 농고동문이면서도 여성 동문과 제자들을 둔 인연이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그러나 지금 동문회에 활동하고 있는 여러분은 배철수가 일요일밤 진행하는 '7080 콘서트'를 보는 세대라 한다면 나는 김동건이 진행하는 'KBS 가요무대'를 좋아하는 세대라 시간의 간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큰형 큰오빠의 학창시절이라 여기고 아우들께서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학창시절과 교직시절을 추억하는 나의 글이다 보니 당시의 동문들이나 내 중심으로 기억되는 동문과 제자들 이름이 거론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름이 나온 분들은 좋은 눈빛으로 추억해주시길 바라며 그 때 거기에서 그 역할은 내가 하였는데 내 이름은 빠졌다고 서운해 하실 분들이 있을 줄 믿습니다.
순수한 동문의 마음으로 너그러이 여겨주시길 바라면서 이글을 이어 가렵니다.
▶ 남해중학교 시절
해방이전에 설립된 남해 공립농업학교는 1951년에 3년제 농업고등학교로 개편되고 남해중학교가 분리 개교 되었습니다. 나는 1950년 6·25전쟁이 발발 하는 해 중학교를 입학하였고 2회 졸업생입니다.
남해중학교는 군내의 40여개 초등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이 아니면 입학하지 못하는 명문이었습니다. 1회 정왕선(전 국세청장), 하철경, 김영평, 박남규, 김재성 등, 2회 이철기(전천도교교령), 박종권(공군장군), 김영조(전 도의원), 이흥규(남해제일고 초대교장), 곽인용, 이태권, 김수영(전 장학관), 박동관, 최봉민, 김송이(남해병원 이사장)등 유명한 동문들이 있고, 박희태(전 국회의장), 곽영우(테니스 협회회장), 유동길(교수), 임종린(해병대 사령관) 등 동문은 3회이고, 최봉구(전 국회의원), 김재기(군기획실장퇴임), 이동화, 임흥조(무용가), 조상덕(전교장), 장두찬, 유윤재 동문은 4회입니다.
정길정(교수), 이순기, 이결휘 5회, 유광사(직전회장), 이석윤(전경찰서장) 7회, 김재전(전 남중회장), 박희구(전교육장) 8회, 이환성(담양호텔 대표) 10회, 장동규(현회장)11회, 감충효(시인·칼럼리스트)15회동문 등 후배동문으로 이어집니다. 6·25 직후라 반공 웅변대회가 많이 열렸고 목총으로 제식훈련도 받은 일이 기억납니다. 당시 우리 남해에는 서울에서 남해로 피난 온 유명 인사들이 많았는데 국어과 이해명 선생님은 숙명여대 출신으로 가냘프게 생긴 용모에 서정적인 분위기로 수업을 이끌어 가시던 기억이 납니다. 칠판에 "밤이다 밤 달빛에 흐르는 밤이여....."라고 자작시를 낭송하며 순진한 우리들에게 낭만을 심어주시던 여선생님, 그리고 이옥자 음악 선생님도 서울 명문 음악대학 출신인데 전쟁 군가도 부르게 했지만, 오! 솔레미오, 산타루치아 등 가곡을 많이 배워주어 시골 학생들이 외국가곡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하여 중학교 시절부터 나도 시인의 싹을 틔워 왔나봅니다. 당시 남해중학교 교지는 <망운> 이었는데 그 무렵 <망운>교지에 실린 조윤환의 일기, 한선희(여자반)의 신문, 이처기의 봄 등 그 글들이 아련히 떠오르며 매화꽃 화사하게 피던 봄, 농고 뒷동산이 그림처럼 오버랩되며 중학교 시절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 남해 농고 시절 - 남해농고 연극반 원술랑 공연이 큰 화제였던 -
남해농고 나의 선배들도 훌륭하고 유능한 한 분들이 많습니다. 강창호(전 재경남해향우회장), 정형규(전교육청장) 이인포, 황태홍(전 남해농고교장), 류귀주, 이상우, 정을병(전 한국소설가협회장), 김욱태(전 관세청장)등 이런 선배들을 거명하는 건 남해농고 인맥의 흐름을 선후배끼리 아는게 도움이 될듯하여 소개해봅니다.
1956년, 남해농고 연극반 "원술랑" 공연이 너무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서울에서 남해로 피난 온 예술가 가족 연출가 강문수, 음악인 주리애(남해여중 음악선생님) 부부가 남해로 온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주리애 음악 선생님은 서울에서 방송인으로 활동한 유명인사이고 강문수 님은 유치진, 이해랑과 함께 우리나라 연극을 주름잡던 분이었습니다.
그 해 남해농고 연극반이 원술랑(유치진 극본)을 공연하여 당시 큰 화제를 일으켰는데 이 연극을 연출한 분이 강문수님이었습니다. 원술랑 역에 조복덕(당시 학생회장), 진달래역 이재현(남해읍 공무원퇴임), 김유신 역(고 박병길 최치환의원 비서역임), 문무왕 역 정양숙(부산국세청퇴임), 지소부인역 이귀주(일본거주), 스님 역 임종린(전 해병대사령관), 병정 역 박영효(한국레미콘 전무퇴임), 처사 역 이처기(전 창원반송여중교장) 대본 프롬프트 조상덕(전 창원중앙고교장)등 다수의 학생들이 참가하였는데 장안의 화제를 일으킨 연극이었습니다.
당나라 군사와 싸우다 후퇴하여 살아 돌아온 아들 원술을 화랑도 계율을 어겼다고 성문 밖으로 내쫓는 김유신 장군의 위엄당당한 소리가 남해강산에 들리는 듯합니다.
이 연극기념 사진이 남해농고(현 제일고)연혁지나 학교 역사관에 보관되어 있을 것입니다.
다들 경험한 일이지만 실습지 모판에서 거머리에 물리던 시간, 지도하시던 하신우, 이해덕 선생님, 열변으로 사회과 수업을 하시던 신동식 선생님, 수학과 박종길, 영어과 김영득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통영에서 오신 국어과 김용태 선생님은 명강의로 그 당시 농고를 다닌 학생들의 우상이었습니다. 김용태 선생님 시간에는 다들 심취하며 큰 감화를 받았습니다. 정비석의 산정무한, 이양하의 신록예찬, 정철의 관동별곡 사미인곡, 윤선도의 오우가를 당시 남해농고 학생들은 거의 줄줄 외었답니다. 부산 동아대 국어교수를 지낸 김형주 박사 외 많은 제자들이 국어를 전공하여 교단에 선 것도 김용태 선생님과의 인연이었습니다. 김용태 선생님은 진주교대 학장과 부산상고 교장을 역임하셨습니다.
당시 남해농고 배구부가 진주에서 열린 도 대회에서 우승하기도하여 남해농고의 깃발이 대단하였습니다.
황태홍, 김영평, 이해민, 이태권, 곽영우 등이 주 멤버였습니다.
곽영우 동문은 학교 체육부장을 하였는데 지금도 테니스회 회장으로 노익장을 과시하며 테니스를 통한 고향선후배 친목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후 60년대와 70년대로 지나오면서 노은식, 탁태수, 김세민, 박숙재등 이름난 교장 선생님들이 남해농고(종고)를 경영해왔고 축산과 임과 농과 인문과 별로 교과 과정을 운영, 화훼, 감귤, 재배 시범연구학교로 지정되어 영농의 선진화에 앞장섰던 학교였다고 회고해 봅니다. 수초에 잠자리 날던 연못, 청매화, 홍매화 꽃 아름답던 당산 과수원, 큰 은행나무와 그 기념관, 죽산(대뫼) 대나무 마디 그 마디가 자랄 때 우리의 청춘을 노래하던 꿈의 동산....
그 명단을 남해 대학에 물러주고 80여년의 역사는 큰 획을 그었습니다.
/봉강산 마주 앉은 대뫼기슭에 /...새벽 하늘에 노인성 비쳐.../ 온 누리 우러러보는 남해 농고교.../ 옛날에 불렀던 교가가 메아리져 갑니다.
▶ 남해여중 남해여고 교사시절
나는 부산사범대학 미술과를 졸업하고 1962~1963년은 남해여중에서, 1969~1971년은 남해여중과 남해여고에서 근무하였습니다. 1963년 무렵의 남해여중 선생님들 이름이 어찌나 재미가 있든지 당시 나와 자주 만나던 남해의 천재 무용인 고 김흥조(중4 농고7회, 서라벌예대 무용과 출신)는 "설동관전의진 탁염현송판출 하희자 이희자..."라고 억양을 주며 선생님들 이름을 외우던 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남해여중 분리 이전의 남해중학교 여자반동문 대선배들도 대단합니다. 김영자, 김대영, 한정희, 이순심, 김송이, 윤정희, 한선희, 김대업, 최선희, 황근자, 김숙열, 김경자, 김자영, 이금심, 김복련, 김숙자, 곽정희, 이계명, 유동영 님들 외 많은 분들. 이런 선배들을 거명하는건 남해중 여자반에서 남해여중으로 이어지는 여자분들의 선후배의 흐름을 아는 데 도움이 되기에 소개해 본 것입니다.
남해여중은 1955년 남해중학교에서 분리 개교되었으며 1회의 임옥련, 류정자, 김계자 외 그 뒤의 김숙진, 오숙아, 박경순(재경남해여중 동창회장), 이일자, 감계자, 김선옥 (교장역임), 이남숙, 현일선(현위헌 장학회사무국장), 김선지, 하정순, 조미선, 박정애, 김옥순(장학회회장), 님들도 소개해봅니다.
이 분들은 내가 제직한 때의 학생들은 아니지만 남해여중 초창기 무렵의 학생들이기에 남해여중에서 남해여고로 연결되는 인맥을 아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교사는 지금 남해읍 보건소 자리 일본식 목조건물이었고 당시 임순악 여선생님은 남해여성교육에 큰 역할을 한 지워지지 않는 인물이라고 기억됩니다. 노채희, 박국자, 김정신, 반만점, 박춘희, 구덕순, 황영숙, 강혜지, 하정심, 이신명 등 당당하고 귀엽던 제자들 몇 사람 얼굴이 지나갑니다. 이분들도 지금 60대 초반이 될 겁니다.
푸른 남색바탕의 남해여중 뱃지는 참 아름답습니다.
세모 하트잎 모양에 넘실거리는 남해의 파도 물결이 하얗게 물방울 지는 그 뱃지는 60여년 전통이 묻어나는 지금도 남해의 딸, 후배들의 교복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남해여고는 1965년에 개교 되었는데 1999년에 제일고(농고)로 통합되었으니까 34년의 역사를 가진 남해의 여성 교육의 전당입니다. 지금 남해읍 아산리 군 사회복지회관을 지나가면 남해여고? 남해여중이 있었던 그 터에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등교하며 재잘거리는 소리가 목 풍금 소리와 함께 여운을 주며 들리는 듯합니다. 박수자(당시학생회장), 감정자(교장), 장윤례, 이송례, 박영희, 강경선(제일고 교감), 유정애(경남도서기관), 박복선, 조현점 등이 생각나고 김선옥, 오신아는 미술특활반을 한 학생이기에 기억됩니다. 그 외 많은 학생들의 얼굴이 스쳐갑니다. 이균자 교장선생님, 이희봉 교장선생님, 이경희 교장선생님, 장봉홍, 박익수, 정한근, 박은재, 박일규, 손광섭, 김애자, 정계선, 하쌍순, 최종아 등 선생님들 이름이 스칩니다. 신사임당 동상이 보이고 남쪽 남산에서 불어오는 남풍이 푸른 신록을 건들거리며 여중고 창으로 막 스미면서 수업하는 교실을 지나갑니다. 가사실습시간에 궁중요리를 만들던 김애자, 박경숙 가정과 선생님들과 학생들과 같이 시식하던 그 맛이 되살아 납니다. 남해여고 도서관에서 교지 "메나리"를 편집하는 편집위원들의 눈빛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아, 그분들의 눈가에도 지금은 작은 주름이 지고 있을 거라 여깁니다.
▶ 전통의 남해제일고여! 더 높게 더 멀리 비상하라
지난 2012년 가을 남해농고 출신 원로선배들이(박만일, 김형주, 이태권, 최봉민, 김영조, 김수영 등) 예비역 공군장군 박종권 동창과 함께 새로 자리한 모교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박종권 동문은 장군 현역 시 남해농고를 자주 찾아 후배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강연을 하여 후배들에게 감동을 주기도한, 모교사랑이 각별하였는데 이번에도 비행의 체험을 담은 "하늘에 산다" 그의 저서를 비롯한 우수도서를 남해제일고에 기중하는 걸음이었습니다.
새 터에 자리한 망운산을 바라보는 남해제일고 전당은 그날따라 더 늠름하였고 교정의 학생들은 더 희망차게 보였습니다.
1999년 3월 5일 반세기를 넘는 역사를 지닌 남해종고와 34년의 역사를 가진 남해여고가 통합되어 드디어 남해제일고등학교로 새 문을 열었습니다.
이 바윗돌은 남해농업실습학교 시절 대선배들이 바윗돌에 앉아 공부하던 역사적인 댓돌인데 이곳으로 옮겨온 바윗돌입니다. 또 한 옆에는 신사임당 동상이 인자하게 자리하고 있는데 남해여고 교정에 있던 조형물 동상을 옮겨온 것입니다. 남해농고와 남해여고의 역사적인 상징물이 새로 자리한 이 터전에 만난 것입니다. 전통의 명문 남해제일고 역사관(망운관)은 농고와 여고의 산 내력을 잘 간직하고 있는 기념관입니다. 중앙현관을 들어서면 한국의 대산맥을 이은 큰 벽화가 벽을 채우고 있는데 백두대간의 산맥이 태백산을 지나 지리산으로 내려 남해 금산에서 멈춘 배달 민족혼을 담은 벽화입니다.
남해제일고 초대교장 화백 이홍규(남중 2회, 농고 6회) 동문의 혼이 서린 작품입니다. 선배들은 이렇게 모교발전과 후배 사랑에 남해정신을 불어 넣고 있습니다.
금산 정기를 받아 이태조가 나라를 세웠듯이 남해제일고는 남해의 동량을 키우는 제일의 학교로 발돋움하며 금산 일월봉에 서린 서운을 가슴에 담고 길이길이 빛날 것입니다. 남해제일고는 세계로 미래로 나아가며 제일가는 학교로 비상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