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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돌봉 - 라이프스타일

상세내용

부드럽고 묵묵하지만 최선

다하는 집념이 오늘을 있게 하다

 

 

 

 

"그냥 평소 나 자신에게 충실하고자 하는 자세로 임했을 뿐입니다."

 

그가 도봉구 부구청장(55) 때 최근 지방자치단체 행정정보와 관련된 내용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동국대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게 됐다.

 

96년 박사학위 공부에 뛰어든 지 만 10년만의 일이다. 고교졸업 이후 1969년에 9급 공무원 생활에 첫발을 디딘 박 부구청장은 직장생활을 하며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대학을 졸업했고, 대학원 행정학과 석사과정까지 마쳤으나 막상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박사학위에 대한 도전이 그리 녹록치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왕 시작했으니 마무리를 하자는 생각으로 서기관 시절부터 틈틈이 공부하며 논문을 준비한 결과 조금 늦긴 했지만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게 된 것이다.

 

"뭐든 성실하게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자신의 작은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전공이 행정학인 만큼 풍부한 이론을 일선 행정현장에 접목시키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벌써부터 기대를 모았는데 퇴직한 후 공무원 경험과 행정학 공부를 바탕으로 대학(신흥대학, 경복대학, 경민대학)에 출강하여 행정학과 사회복지학을 강의하고 있다.

 

평소 조용하고 묵묵한 스타일이지만 한번 파고들면 끝을 볼 만큼 강한 집념을 보여준 그의 사례는 후배 공무원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 무작정 서울 상경하여 말단 공무원으로 첫 발을 내딛다

 

남해 초대 국회의원을 지낸 박윤원의 조카로 1949년 남면 양지에서 태어나 남명초등, 해성중을 거쳐 남해농고에 진학해 큰집인 남해여관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남해농고를 졸업하고 1년 쉬고 난 후, 무작정 서울로 상경 공무원 공채시험에 합격하여 중앙 관상대 기술직으로 첫 발령을 받고 4개월 근무 후, 다시 직종을 바꾸어 서울시 발령을 받아 종로구청 청운동 사무소 근무를 했다. 동사무소 근무 중 고향 선배인 저종실 동장을 처음 만났고, 그런 인연으로 3개의 공개경쟁시험에 합격하여 뒤에 발령이 난 부산체신청 발령도 포기하고 동사무소에 2년간 근무를 한 후 서울시보건환경연구소에 4년간 근무하던 중에 건국대학교 야간대학 행정학과에 입학하여 결코 놓을 수 없었던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방통대에서도 경영학과를 졸업하였고, 서울시립대에서 도시행정학 석사를 받았다.

 

그리고 1996년 동국대 대학원에 행정학 공부를 위해 뛰어든 지 10년 만에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41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거의 서울시에만 근무를 했는데 공직생활 과정에서 청렴한 공직자로 인정을 받아, 시청에서도 인사과, 감사과 시의회 의정담당관 등에서 근무를 했으며, 1989년 -97년까지 8년간은 국무총리실에 근무하면서 잠시 서울시 밖을 떠나 있기도 하였다. 공직생활 과정에서 계속 승진을 하다가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에 건설안전관리부 총무부장으로 발령이 나서 승진이 약간 늦어지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 2005년 1월 도봉구 부구청장(3급) 발령을 받았고, 그 후 2008년 11월에 노원구 부구청장(2급) 발령을 받은 후 2010년 7월에 41년간의 공직 생활을 마감하였다.

 

말단에서 2급 공무원까지 순조롭게 공무원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좌우명인 '성심 성의껏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 자신의 인생을 올바르게 이끌어 가는 지름길이다'는 생각으로 충실하였기 때문이다.

 

공직생활 중에 노력봉사와 사회봉사를 4년 이상 계속했으며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아 병환 중인 어머님을 모시는데도 지극 정성을 다한 것으로 소문이 나있다.

 

 

 

▶ 만능 스포츠맨 - 테니스와 등산 마니아

 

 

그의 조용한 성격과는 달리 운동은 뭐든 좋아하고 즐긴다. 특히 등산과 테니스는 수준급인데 서울시 공무원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등산 마니아이다.

 

구청의 체육행사 주간이 되면 직원들과 같이 운동을 하면서 테니스도 치고 족구 시합을 하면 후배들보다 더 열정적이고 힘에 넘치는 경기를 할 정도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서울시청산악회 제8대 회장을 역임하고 서울시청 산악회 백두대간 드림팀 단장으로 백두대간 종주를 성공리에 마쳤다.

 

백두대간!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고 등산을 좋아하는 일반인들에게 '꿈의 도전'인데, 그는 도봉구 부구청장시절, '서울시 산악회 백두대간 드림팀 단장'을 맡아 51명이 넘는 동호인들과 함께 백두대간 대종주를 성공리에 마쳤다. 이는 서울시청 산악회 36년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결실이었다.

 

직장인으로서 매월 1회 정기적으로 백두대간 산행을 해야 하는 사정에도, 여름철의 뙤약볕, 겨울철의 매서운 추위와 숱한 비바람 등을 견디며 도전한 지 꼭 3년 3개월 만에 이루어낸 성과였다. 그는 출발 시 팀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산행의 마음가짐을 제시하면서 독려했다고 한다.

 

첫째, 생각하고 느끼는 산행을 하자.

 

둘째, 스스로 안전산행을 하자.

 

셋째, 팀원 상호간 도와주는 산행을 하자.

 

넷째, 국토와 자연을 사랑하는 산행을 하자는 등이었다.

 

그의 아이디는 '도봉산'이다. 오래 살라는 뜻에서 사촌형이 지어준 이름 '돌봉'에서 유래됐다. 지금도 매주 토요일이면 서울시청 산악회 멤버들과 도봉산, 북한산뿐만 아니라 남한의 9정맥 종주까지 계속하고 있으며 때로는  암벽타기도 하고 인도 가루왈 히말라야 트레킹, 말레이지아 키나바루 산, 조지아의 카즈베키산, 중국의 차마고도, 실크로드 종주길 4차, 훈자마을과 파키스탄히말리아 카라코람을 넘어서 파마르고원을 거쳐 중국의 최서단 타슈쿠르간, 카슈카르, 그리고 네팔의 카트만두를 거쳐서 히말리야 산맥을 넘어 시가체, 라싸 등의 세계의 오지인 고산지역 등을 두루 다녀왔다.

 

"등산은 혼자서 할 수도 있고 생활체육 중에서 가장 경제적인 종목입니다. 아름다움으로 치면 도봉산, 북한산이 절대 안 빠지죠. 북한산만 하더라도 대남문, 대동문, 대성문, 대서문, 중성문 등을 포함한 각 암문까지 12개문이 있고, 행궁터, 동장대, 중장대 등 군사를 지휘하는 장대를 비롯한 시체가 드나들도록 만들어 놓은 시구문에 이르기까지 우리 선조들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지역의 백두대간 마루금을 찾아서 떠날 날이 하루속히 우리에게 주어지기를 바랄 뿐이지요,"라고 말하는 그의 의지에서 산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2010년 1월에는 대전에서 열린 대한산악연맹 신년 인사회 때 서울시청 산악회를 대표하여 공로패를 받기도 했다.

 

 

 

▶ 기획하고 정책을 추진한 결코 가볍지 않는 희망의 일들

 

 

41년 공무원 생활 중 그가 기획하고 정책을 추진하여 보람을 찾은 성과가 많다.

총리실에 근무할 당시 광주 5·18 민주화 운동 보상업무의 실무적 초안을 작성하여 보상을 마무리하는 토대를 마련하였고, 김영삼 대통령 때 여성의 사회 참여 확대방안을 발의하여 공무원에 대한 여성 할당제 30%를 도입하여 여성의 사회 참여에 크게 이바지 하였으며, 1995년 국가의 보육시설 확충 정책 입안을 해서 보육시설을 장려하고 여성들이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서울시 감사담당관으로 재직 시에는 온라인 행정공개시스템을 정착시켜, 공개행정에 반영하고, 그 성과로 유엔사무국을 통하여 세계의 소개하는 방법으로 세계 각국의 대표들이 서울에 모여 세미나를 개최하고 당시 서울시장인 고건 시장에게 클린시장이란 별명까지 얻도록 만들었고, 정원식 총리 때는 우리나라 교통사고가 세계1위라는 불명예를 시정하기 위해 1990년 중반 교통사고 줄이기 정책을 시작하여 과속을 방지하기 위해 길거리 순찰 마네킹을 도입하는 등, 교통사고 사망자가 한 해 13300명에서 마네킹 설치로 1000여명이나 줄어들었고 지금은 연67000명 수준으로 줄었다. 한해에 1000명 이상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국무총리실 수질개선대책반 기획총괄과장 시절에는 수질대책반을 꾸려 한강에 무분별하게 난립한 가두리 양식장을 철거하여 수질 향상에 노력하고, 한강관리 감시대를 창설하여 수질이 최악이던 냄새나는 한강이 다시 살아나 물고기가 찾고 서울시민의 휴식처가 되는데 한 몫을 했음에 자부와 긍지를 가지고 있다.

 

그가 기획하고 실행한 여러 행정적인 일들이 결코 가볍지 않은 희망의 일로써 우리나라의 기본이 바로 서고 한 걸음 더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 건강과 사랑과 효심 가득한 가정

 

그는 부구청장 시절 어머님을 위해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어머님뿐만 아니라 요양원에 계시는 어르신들까지 봉사하였다.

 

종일 어머니를 모시는 부인의 수고를 잘 알기에 가정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남편이었다.

 

그의 어머님이 96세로 편안하게 이 세상의 끈을 놓으실 때까지 어머님을 모신 부인에게 늘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가족으로는 부인 왕은순(55년)씨와 3녀가 있으며 손녀 두 명이 있다.

 

큰딸 미연은 건국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공무원으로 서대문구청에 근무하고, 둘째 딸 선아는 숙명여대를 나와 교사로 재직 중이며, 막내딸 진주는 성심여대 대학원에 재학 중에 있고, 중학교 영양사로 근무 중이다.

 

바쁜 공무원 생활을 하고, 서울시청 산악회 일과 공부를 하느라고 향우회는 자주 나올 수는 없었지만, 이제부터라도 향우회에 시간되면 자주 얼굴을 보일 것이며, 가끔 고향의 산행에도 참석할 것을 약속했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던 모습에서 학구적인 모습을, 조용한 성품에서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모습을 보며 향우회에서 만난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