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재경남해군향우회
최평욱 - 라이프스토리
상세내용
은은한 별빛으로 더욱 빛나는
최평욱 동문을 뵙고
▶ 들어가며
필자는 최평욱 선배 동문의 스토리텔링을 진행하면서 그 분의 명성에 대한 부분은 많이 여쭤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동문사회나 고향에서 너무 많이 알려진 분이기 때문이다. 이심전심인지 주로 들려주신 이야기는 고향에서의 추억담, 그리고 인생살이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육관사관학교 정규 4년째 23: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학하여 어려운 사관생도의 과정을 통과하고 육사 16기 졸업 때는 대표화랑으로 선정되어 100년 탑에 그 이름을 올림은 물론 대한민국 육군의 3성 장군을 지낸 분의 첫 말씀은 역시 어린 시절 고향 이야기였다.
▶ 고향에서의 중학교 학창시절 추억, 그리고 부산으로 떠나다
중학시절 남해중학교에 통학하면서 이동면 다천의 모린내 다리 위를 지나 다니면서 친한 친구들과의 추억, 학창 시절 정식 영어 교사가 없어 국어과 선생님의 영어 수업을 받으면서 영시 'Fine tree'외우던 일, 여자 음악 선생님에 대한 남학생들의 짓궂은 장난, 전쟁 당시 남중을 졸업하고 부산으로의 고교진학에 얽힌 사연, 가난 때문에 고교 진학의 어려움이 있어 부산으로 가서 보수동 약방에 취직하여 진학의 꿈을 펼치려 했으나 그 것도 수포로 끝나고 전전긍긍 했던 뼈아픈 시절의 이야기, 그 당시 고교 진학의 어려움에도 향학열을 식지 않았다. 약방이 문을 열기까지 새벽녘 여백의 시간을 활용하여 고교에 입학하기 전 근 3년 동안의 시기에 어학을 비롯한 학문을 많이 익혔다고 하신다. 그 후 천신만고 끝에 고교에 진학하여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의 입학시험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다
육사 입학시험이 있던 날 아침에 훈민정음에 대한 공부를 하고 갔는데 입학시험의 국어 문제로 출제되는 바람에 그 문제는 자신 있게 만점을 받았을 것이라는 육사 입학시험의 에피소드를 들려주시면서 화학은 너무 어려웠다는 점, 물리는 고등학교 때 제대로 공부를 못해 중학교 수준의 실력으로 써 낸 점, 1차 합격후 면접을 보기 위해 부산·경남지구 학생들이 열차로 용산까지 와서 평생 제일 무서운 추위를 겪은 점 등을 이야기 하셨다.
면접시험에서 숭배하는 인물의 질문에서는 망설임 없이 '이순신 장군'이라고 했으며 그 이유를 묻자 세계해전 사상의 훌륭했던 점은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도 특정 인물들의 각종 모함 속에서도 백의종군하신 인간성과 애국심을 존경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육사의 2차 시험(면접고사)을 보고 부산으로 돌아오니 출신고교에서는 최평욱 동문의 육사 합격 축한 현수막이 걸려있었는데 수업료가 8개월 밀리고 사진 값을 못 내었기 때문에 단매로 된 졸업 사진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우등상장은 전달 받았고 부상은 놋대접이었다고 한다. 육사에 입교한 후 최동문은 너무 고된 학과 공부와 훈련 때문에 육사 2학년 때 마음이 흔들렸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이만한 고생이면 굳이 군인이 아니라 사회에서 나와서도 얼마든지 더 큰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서울 명동에 여관을 운영하는 종조부(할아버지 막내 동생) 댁을 찾아가서 종조모님에게 생각을 말했다가 남자가 마음을 먹고 시작한 일을 완수하지 못하고 도중하차 하는 것은 사나이답지 못하다는 큰 꾸중을 들었다고 했다. 지금도 그 중조모님의 말씀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 육사 백년탑에 새겨진 '대표화랑'의 영예
육사 16기 이전에도 남해인으로서 12기, 14기에 합격하여 입교하신 분이 2분 계셨는데 육사과정을 다 못채우고 퇴교 당하셨기 때문에 그 당시 최동문이 남해인으로서는 최초였으며 육사를 졸업한 선배가 없어 절해고도에 유배당한 심정이 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선배에게 상의하여 나름대로의 정신적 후원을 받는 동료들이 부러웠음은 당연하였을 것이다. 2학년 시절 화학과목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실력화학'이라는 책을 집중 공부하여 무난히 학과 시험을 통과한 땀 흘린 이야기도 들려주신다.
대표화랑에 대해서 알려달라고 하니 이야기를 꺼내시기 주저하신다. 최동문 자신이 대표화랑으로 뽑혔으니 자화자찬이 됨을 꺼려하시는 듯하다. 그냥 인터넷에 찾아보라고 하신다. 하지만 직접 이 자리에서 이야기 해 달라는 필자의 부탁에 간단히 답했다. 대표화랑은 4학년 때 뽑는데 그 규정은 단순한 학교성적만이 아닌 학교성적을 포함한 체력, 리더쉽 등 다양한 분야를 종합 평가해서 뽑고 성적 우수자와 함께 백년탑에 그 이름이 올려진다고 한다. 육사의 백년탑에 일 년에 두 명씩 이름을 새기면 백년이 가서야 다 채워진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 결혼에 관한 에피소드
취재과정에서 결혼관에 대한 이야기도 오고 갔다. 최동문님이 총각 시절 여러 곳에서 중매가 들어왔는데 배우자로 우리 고향 분을 택한 이유가 특별했다. 육사 졸업 후 소위 소위시절 6·25 직후 징병 입대한 남해가 고향인 상사 한 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일성이 고향여자 분과 결혼하라고 권했다고 한다. 자기도 고향 여자 분을 아내로 맞았는데 알뜰히 남편 뒷바라지 잘하고 남편의 고향을 이해하면서 가정을 잘 꾸려가는 대상으로는 고향을 같이하는 배우자가 최고라는 것이다. 물론 그 고향 분의 권유가 지금의 부인을 맞이하는데 많이 작용했다고 하신다.
▶ 12가지 질문에 대한 진솔한 답변
필자는 12가지 정도를 여쭈어 봤는데 최동문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학창시절(남해중학교) 겪은 일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6·25 전쟁기간 중에 농협창고에서 학교공부하면서 대나무 막대로 학도호국단 군사훈련을 남산에서 받던 일이었고, 육사를 지원한 특별한 계기나 각오에 대해서는 당시 육사생도인 친구 형님이 육사소개와 국내외의 사관학교 출신의 훌륭한 인물들의 얘기를 들으니 적성에 맞고 꿈을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1960년도에 육사 대표화랑으로 뽑힌 후 이를 계기로 군인의 길에 대한 새로운 각오는 어떤 것이었느냐에 대해서는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성실하게 군대생활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고, 임관 후 처음 배치된 곳과 그 감회에 대해서는 그때 홍천지역 27사단에 소대장으로 부임하였고 최고 최강의 소대를 만드는 멋진 소대장이 되겠다는 각오로 임했으며, 월남전 백마부대 최초 파병 중대장 시절, 수색중대장으로서의 무용담 한 두 편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에 비정규전의 게릴라전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전사에 기록할만한 전투는 경험하지 못했고 백마부대 제1진 선발대로 참전해서 처음 경험하는 월남의 악조건 하에서 안전지역 확보라는 임무를 다하기 위해서 고군부투했던 일이라고 했으며, 군 요직을 맡으시고 처리한 일 중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어느 직책 때 어떤 일이었는가 하는 질문에는 63년도 중대장 시절 전군 사격대회에 우승했던 일과 83년도 사단장 시절 대통령 부대 표창을 받은 일이라고 하셨다.
대표화랑은 리더쉽을 비롯한 여러 면에서 인물의 뛰어남이 증명되고 삼성장군으로 군의 요직도 거치셨고 주변의 여러 장군들이 정치권으로 많이 들어왔던 그 당시 고향을 비롯한 세간에서는 최동문께서도 정치에 입문하시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기대도 많았는데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정치는 최동문님의 성격상 맞지 않고 분단된 나라의 현실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국가에 봉사하는 직업이 군인이라는 평소의 생각에서 군에 그대로 남았다고 하셨다.
전역 후 산림청장, 철도청장, 철도물류협회 이사장직을 역임하시면서 남기신 업적이 많으신데 대표적인 업적을 소개 바란다는 부탁에는 산림청장 시절에 산림지역에서 취사금지조치를 취한 점, 철도청장 시절에는 약 14조의 부채를 해결한 점이라고 하셨다. 90년대 하반기에 프로 볼링협회 회장을 맡으신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3개월 여 근무한 곳으로 특별히 남길 이야기는 없다고 하셨다.
부인께서 고향 분으로 내조의 공이 컸으리라고 보는데 살짝 그 내조의 한 단면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에 사투리, 풍습 등 생활감정이 비슷해서 편안하게 살아간다고 하셨는데 필자의 생각으로는 참 진솔하면서도 제일 원초적인 내조의 공이 바로 이런 점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마치며
스토리텔링 대상자는 원로 동문, 기별 동문, 본회 고문진, 회장단, 이사회 등을 통해 추천된 동문이다. 최평욱 동문이 스토리텔링 대상자의 한 분으로 추천되신 후 인터뷰하기가 쉽지 않았다. 원래부터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좋아하시는 편이 아니어서 자꾸 사양을 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최평욱 동문을 만나뵈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가까스로 만나 여러 가지를 여쭤보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우리 향우사회나 동문사회에서 최평욱 동문은 선배니께 신뢰받고 후배의 귀감이 되었음은 명백한 사실이며 이를 동문회지에 실어 동문의 역사에 남김은 누가 봐도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 말씀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사소한 일은 모두 건너뛰시고 큰 맥만 짚어 소탈하고 힘 있게 말씀하시는 그 원동력은 타고나신 인품과 강건한 체력이려니와 육군사관학교 정규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그 것도 대표화랑의 영광을 안고 졸업하고 삼성장군까지 군인의 길을 걸으시며 다져진 굳센 의지가 서려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래오래 건강을 잘 유지하시며 우리 향우사회와 동문사회에 큰 별로 더욱 빛나시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