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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발자취 - 김해동

상세내용

물처리 기계 '우수조달업체' 운영하는 '작은 거인'

 

 

 

▶ 직업의 두 종료 : 실업(實業)과 허업(虛業)

 

중앙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업의 숫자는 1만 2천여개에 달한다. 조사 기관이나 방법에 따라 숫자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일본의 2만 5천여개(1987년 기준)와 미국의 3만여개(1991년 기준)와 비교하면 아직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직업을 크게 두가지로 나눈다면, 모든 직업을 실업(實業)과 허업(虛業)으로 나눌 수 있다.

 

'실업'은 글자 그대로 무언가를 만들고 생산하는 직업이다. 중고교 때 배웠던 방식으로 분류한다면, 실업은 농업과 어업을 비롯한 1차 산업과 제조업으로 대표되는 2차 산업이 주로 해당될 것이다. 나머지는 다 '허업'이다. 3차 산업 즉 이른바 서비스업이다.

 

원칙적으로 실업과 허업 중 어느 것이 더 낫다. 못하다는 기준은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두가지 직업 중 주로 후자인 허업(虛業)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갈수록 실업(實業)을 기피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프랑스와 독일 등 선직국으로 갈수록 허업 보다는 실업을 더 권장하고 실업의 가치를 더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 어렵다는 제조업 중에서도 수(水)처리기계, 계측기기, 제진기, 탈취기 등을 제조, 납품하는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동문이 있다. 이동면 초음리 초곡마을 출신의 김해동 동문(남중 21회, 남해종고 3회)이다.

 

그는 이 분야에서 '작은 거인'으로 불릴만한 독보적인 존재다. 그는 보통 단점으로 여겨지는 '작은 키'를 사업에서 잘 활용한 드문 경우에 해당한다.

다른 성공한 동문들처럼 김 동문의 삶도 파란만장 그 자체다. 김 동문도 남해종고 토목과를 졸업하자마자 '무작정' 부산으로 향했다. 이모가 운영하는 다방에서 주방일과 허드렛일 등을 도우며 '밑바닥 인생'을 시작했다.

병역을 마치고, 직업을 찾고 있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이모부뻘 되는 친척이 운영하던 물처리업체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이후 지금까지 이 분야에서 30년 이상 종사하며 한 우물을 파 온 셈이다.

 

 

▶ 첫 직장서 한 달에 도면 1개씩 베껴 설계 전문가 돼

 

그가 남해종고에서 배운 토목은 농업토목이다. 그런데 수(水)처리 업체에서 처음 맡겨진 일은 기계 설계였다. 처음엔 난감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만든 기계도면 하나를 펴놓고 한 달 내내 베끼니깐 기계와 설계도면이 훤히 들어왔고, 그렇게 1년을 일하니까 대번에 설계 전문가가 되더라는 것이다. 창조는 반복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그다음 업무는 설계도면에 따라 기계를 제작하기 위해 청계천 등을 돌아다니며 부품을 구입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자, 이번에는 관공서나 공공기관 등에 납품하는 일과 영업을 맡기자 '못하겠다'며 바로 사표를 썼다고 한다. 회사 사장이 1년 일 해보고 정 안되면 그때 그만두라고 신신당부하는 바람에 영업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영업 일을 평생 하고 있다"고 김 동문은 너털웃음을 짓는다. 그는 2008년 해성이엔지라는 회사를 설립해 자치단체나 공공기관 등에 수처리 기계 등을 제작해 납품하고 있다.

 

제지공장에서 나오는 폐수를 정수처리하는 기술 분야에서는 1위를 달릴 정도로 독보적인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관련 특허만 5개를 가지고 있다. 작년에는 정부로부터 '우수조달업체'로 선정돼 일정금액의 납품은 수의계약도 가능한 자격을 받은 셈이다.

 

지금은 이 분야에서 나름 성공했지만, 그에게도 시련이 없었을 리 없다. 85년부터 3년 동안 독자적인 사업을 하다 "끼니거리가 없을 정도로 알거지가 된 적이 있다. " 요새 시세로 치면 아파트 3채 정도 값을 날렸다고 한다.

당시 동네 사람들로부터 빚 독촉에 시달리며 온갖 고생을 하던 부인은 밤에 잘 때 "여보, 이 밤이 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울먹이며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까지 부인이 고생하는 줄 몰랐던 박 동문은 마지막 남은 재산인 허름한 아파트 한 채를 처분해 '빚잔치'를 하고, 직원들을 눈물로 내보내고, 대신 취업을 알선해 줬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 월급쟁이 생활. 유명 수처리업체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와 나이가 6 - 7세 많은 다른 영업부장들과 경쟁해 1년 만에 영업 1위를 기록해 사장으로부터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거금을 특별보너스로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같이 일하던 직원들을 불러 모아 지금의 회사를 차린다.

 

 

▶ 키 작은 단점을 장점으로 활용하는 지혜도

 

"그렇게 영업을 잘 했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박 동문은 웃으며 대답한다. "비결? 키가 작다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었다."

 

무슨 애긴가? 키가 작은데다 젊었을 때는 상당히 귀여운 이상이라 한 번 만난 공무원들이 두 번째 찾아가면 대부분 알아보더라는 것이다. 전화로 혹은 만나서 "얼마 전에 들렸던 조그만 총각입니다"라고 말하면 대부분 기억하고 잘 대해 주더라는 것이다. 단점을 지혜롭게 이용한 셈이다.

첫 직장에서 옆자리에 일하던 충남 당진 출신의 아가씨와 결혼해 1남 1녀를 두고 있다. 그에게 고향과 남해는 어떻게 다가올까?

 

"(고향 초곡마을) 집에서 창선을 배경으로 잔잔한 강진 바다와 섬들을 보고 있으면 찌들었던 마음이 씻은 듯이 사라지고 가슴이 넓어지는 경험을 많이 했다. 그래서 다른 동문들과 마찬가지로 고향과 남해는 늘 특별하고 좋다."

 

인상 좋고 서글서글한 박 동문은 후배들에 대해 조언도 잊지 않는다. "진취적으로 생활하고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