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고려시대
주연지(周演之)
상세내용
주연지(周演之)
본명은 최산보(崔山甫)이며 점술가 승려 출신이다. 집권자 최이(崔?)의 문객으로 세력을 얻어 큰 부자가 되었으며 음양술수에 밝았다. 최이의 심복 김희제를 설득하고 무장들을 끌어 모아 반역을 도모하면서 희종 복위와 최이 제거를 모의하던 중 고종 15년(1228)에 발각되어 친인척들과 함께 남해에 유배되었으며 이후 남해바다에 빠뜨려 죽였다.
왕조 : 고려 시대 : 고려 왕 : 고종 본관 : 영광(靈光) 생몰연대 : 미상~1228년
고려사절요_일자 1227년 03월 미상 (음)
최우가 전 왕을 교동으로 옮기다
3월. 최우(崔瑀)가 전왕(前王, 희종)을 교동(喬桐)으로 옮겼다. 처음에 삼계현(森溪縣) 사람 최산보(崔山甫)가 음양술수(陰陽術數)에 밝아서 머리를 깎고 그 고을의 금강사(金剛寺) 주지가 되었는데, 그의 외조카[表姪] 창정(倉正) 광효(光孝) 등과 더불어 약탈하는 짓을 일삼았다. 광효가 남의 소를 도둑질하여 잡아먹었다. 고을의 수령이 그를 잡으려 하자, 광효는 도망갔다. 최산보도 성명을 주연지(周演之)로 바꾸고 타지로 떠돌아다녔다. 뒤에 서울에 이르러 점술로 사람을 홀렸다. 최우가 불러서 말을 나눠보고 칭찬하였다. 날로 더욱 가까이하고 믿어서 모든 일을 그에게 자문하니, 세력이 나날이 성하여 사람의 화와 복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그를 두려워하여 다투어 뇌물을 바치니 마침내 큰 부자가 되었다. 술승(術僧) 도일(道一)을 제자로 삼아 서로 은밀히 모의하고 자언(自言)하기를, “음성을 살피고 얼굴빛을 관찰하면 사람의 빈부와 수명의 장단을 판단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미색(美色)이 있는 부인을 많이 유인하여 문득 간음하였다. 추잡한 소문이 널리 퍼졌으나, 사람들이 위세를 두려워하여 말하는 자가 없었다.
하루는 주연지가 은밀히 최우에게 말하기를, “지금의 왕은 자리를 잃을 상(相)이 있고, 공(公)은 왕후(王侯)의 상이 있습니다. 운명이 있는데 어찌 피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최우가 이 말을 심복인 장군(將軍) 김희제(金希磾)에게 알렸다. 김희제가 주연지에게 말하기를, “과연 이러한 해석이 있소?”라고 하였다. 주연지가 놀라 최우에게 나아가 말하기를, “전날 은밀히 한 말이 새어나갔으니 화가 닥칠까 두렵습니다.”라고 하니, 최우는 주연지가 자기를 모욕한다고 여겼다. 때마침 어떤 사람이 최우에게 참소하기를, “근래 공(公)에게 질환이 있을 때, 상장군(上將軍) 노지정(盧之正)과 대장군(大將軍) 금휘(琴輝) 및 김희제가 주연지의 집에 모여, 공을 해치고 전왕을 받들어 복위시키려고 모의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최우가 그 말을 믿고 주연지를 남해(南海)로 유배하고, 노지정과 금휘 역시 여러 주(州)로 유배하였다. 주연지의 집을 적몰하다가 전왕이 주연지에게 준 글을 얻었는데, ‘하늘에 맹세하고 땅에 맹세하여 생사를 함께 하며 아버지로 섬기겠다.’라는 말이 있었다. 최우가 즉시 장군 조시저(曺時著) 등을 시켜 전왕을 강화현(江華縣)으로 옮겼다가 또 교동으로 옮겼다. 주연지는 바다에 빠뜨려 죽이고, 그 일족을 멸하였다. 도일을 붙잡아 다시 국문하였더니 모두 자백하였다. 또 노지정·금휘·김희제와 중랑장(中郎將) 아윤위(牙允偉), 별장(別將) 신작정(申作楨)을 체포하여 모두 바다에 빠뜨려 죽이고, 처자와 형제를 먼 곳으로 나누어 유배하였다. 또 김희제의 아들 견룡(牽龍) 김홍기(金弘己) 등 3명을 바다에 빠뜨려 죽였다. 그때 김희제가 전라주도순문사(全羅州道巡問使)가 되어 나주계(羅州界)에 있었는데, 체포하는 사람이 오자 조금도 두려워하는 빛이 없이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졌다. 김희제는 용의(容儀)가 아름답고 지략과 용기가 있어서 최우가 가까이 하고 신임하였다. 최우가 병이 나자 낫지 않을까 염려하여 노지정 등과 함께 주연지에게 점을 쳤는데, 세력을 시기하는 자의 참소를 받아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