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남해군
박태권(朴泰權)
상세내용
▶ 박태권(朴泰權)
박태권 선생은 경남 남해군 설천면 문항리에서 1905년 6월 26일 태어났다.
『고등경찰관계적록』, 109면에
"남해군 남해읍 한인식, 박태권, 박종환 등은 한인식을 중심으로 박종환, 최봉기 집에서 여러 차례 회합을 가지고 현 사회 제도의 불비와 모순을 지적하고 상호의견을 교환하여 조선공산당 재건을 목표로 목적수행을 하기 위해 전위동맹을 조직키로 합의하고 적극적으로 지지하기로 했고 노동자, 농민, 노동자 형제 제군에게 격한다는 격문 50여 장을 인쇄 배포하는 등 활동하다 체포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동아일보 1933년 12월부터 1934년 1월까지 '남해공산전위동맹으로 체포'된 내용이 보도됐으며 박태권은 피검 중이라는 보도가 있으니 비밀회합에 참석하고 피신했다가 뒤에 피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선생은 1935년 10월 26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이 언도되어 옥고를 치렀다.
전북교원노조사건이 발생하고 전북 전주 경찰이 애매한 자들을 잡아 갈 때 선생도 체포했으나 특별한 혐의가 없었기 때문에 수 개월만에 석방했다.
동아일보 남해지국장이었던 선생은 모범지국으로 선정되어 남해군 고현면 이어리를 소개했는데, 호수 98호 인구수 585인이라 하고 김치권, 김봉구 등이 10년 전부터 강습회관을 준비해 110명을 가르치는 등 열심히 하여 문맹자가 거의 없어졌다는 것이다. 최금동, 박현문, 김석문 등이 부인야학을 개설하고 근로단을 만들고 저축 장려 등을 실시해 부업을 통한 이익을 얻게 하고 비료를 생산해 뿌리도록 해 생산을 독려하는 마을이라고 보도케 했다.
동아일보 등에 의하면 선생은 남해공산주의자 전위동맹이라는 비밀결사가 존재가 알려저 1933년 12월 14일 일제히 검거되었는데 박태권, 한인식, 박종환, 최봉기, 유한영 등인데, 박태권, 한인식, 박종환 3명은 교원노조 사건과 함께 부산경찰서에 압송되어 유치장에 감금되었다.
선생은 신문지국을 경영하면서 적색사상 연구에 몰두해 사회제도는 결함이 있어 철저한 불만을 가지고 자기의 동지를 획득하여 사회주의를 실현시키려 김주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별동대 역할을 하고 올해 봄에 앞선 비밀 결사를 조직하여 비상한 세력을 가지고 착실한 운동을 전개하면서 하동 출신의 여성 항일투사 재영순(항일투쟁으로 대통령 표창 추서)을 박종환으로 하여금 만나게 했고 모두 검거되어 송치되었다 라고 보도되었다.
동아일보 1931년 3월 19일 남해지국장이었고, 1932년 7월부터 1934년 3월 19일까지 지국장이었으며, 1935년 3월 8일부터 1939년 3월 19일까지 지국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