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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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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항일독립운동가

남해군

양태환(梁太煥)

내용
미 포상 항일투사
출처
남해문화원
출생지
창선면 수산리
시대
-

상세내용

▶ 양태환(梁太煥)

양태환 선생은 경남 남해군 창선면 수산리 883번지 출신이다.

양태환 선생은 성격이 기민하고 애국심이 열열 했다고 전해온다.

1910년 8월 한일병합으로 조선이 망했다는 말을 듣고 땅을 치고 울었으며 조국 광복의 일념으로 동지들을 찾아다니며 애국의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독립만세를 외친다는 소식을 듣고 마침 설천면민들이 4월 2일 남해읍으로 가서 시위한다는 말을 듣고 즉시 달려가 시위에 동참하고 4월 4일 오후 3시경 시위 군중 수는 점차 많아져 1천여 명이 동참하게 된다.

군중은 군청과 학교, 우체국, 경찰주재소 등을 찾아다니며 직원들을 이끌어 내고 다같이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도록 할 때 양태환 선생도 동참했다. 그 당시 김치관 고현면장은 시위군중을 피해 경찰서 마루 밑에 숨어있었다고 전해온다.

4월 6일 사천경찰서와 헌병대가 출동하여 항일투사들을 찾아 연행해 가서 혹독한 고문을 자행했다. 정학순 선생이 옥중에서 순국할 정도로 악독하고 무지한 고문이 자행되었음을 알게 해 준다.

선생은 진주와 대구복심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이 언도되어 옥고를 치렀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출옥 후 대구지역에서 항일투쟁을 계속하다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엄중한 조사를 받고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3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순국했다고 전해온다.

『부산경남3·1운동사』 904면에는 대구에서 항일투쟁 중 체포되어 3년의 형을 받고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는데 모진 고문과 옥고로 인하여 불구의 몸이 되어 우국정성을 풀지 못한 채 한 많은 여생을 마쳤다라고 기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