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남해군
윤주석(尹柱石)
상세내용
▶ 윤주석(尹柱石)
윤주석 선생은 경남 남해군 설천면 문의리 왕지마을에서 1889년 11월 17일에 태어났다.
남해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2년 3월 보성전문학교(고려대 전신) 상과에 입학하여 1915년에 졸업하고 부산으로 가서 안희제 선생을 만나 세상 일과 독립운동에 대하여 의논하니 마침 백산무역(주)을 설립하니 서기를 맡아 달라는 말씀을 따라 수행했다.(1912~1915)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송금할 때 경리 총책을 맡았고, 연통제망을 구축할 때 협력했다.
1920년부터 1927년까지 경남은행 하동지점 서기와 지점장이 되었고 어음 할인 등을 통해 독립자금을 송금할 때 하동 출신 김익원(백산상회 감사역 500주, 하동청년회 부회장)등과 협력했다.
기미육영회를 조직할 때 협력하고 장학금을 모아 이극로, 안호상 등을 유학시켜 크게 성장시킨 공적이 있다.
중외일보 1929년 6월 21일자 3면 7단에 보면 구제금을 납부하기도 했다.
1928년~1945년 섬진강 한시회를 주관한 뒤 비밀회의를 주관하고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데 힘을 쓴 분이고, 하동 향교를 통한 반일정신의 발현을 기했다. 한시회에서 발표한 작품 중에 안희제 선생 등 유명인의 작시가 직계 손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1940년대 일제가 황국신민서사를 강요할 때 정반대로 한글노래 '봄노래'를 지어 보급하고 우리 고유의 판소리하는 재주꾼을 모아 널리 보급하는 일을 꾸준히 전개했다.
1947년 12월부터 1949년 3월까지 하동향교 장의를 지냈고, 1947년 11월부터 하동중학교 창설기성회 사무국장을 역임했으며, 설립 당시 이사가 되었다.(이사장은 여경엽)
하동중고등학교 2대 교장(1953년 6월~1954년 3월)이 되었다. 이때 충무공 이순신장군을 공적과 필체를 연구하고 미술에 조회가 깊다는 추삼술 선생을 교감과 교사로 임용토록 했다.
선생은 1949년 9월부터 1958년 3월까지 남해군 설천, 삼동초등학교 교장을 역임했는데, 1958년 6월 하동중고등학교 교장 근무 중 갑자기 쓰러져 1954년 3월 6일 순직했다.
2007년 9월 30일 고려대학교 부산교우회장 김태원과 고려대 교우회장 천신일 등이 협력하고 정치학 박사 김일영님이 비문을 고증하고 작성해 비를 세우니 아름다운 일이다.
딸 윤덕연(82세)은 부산에서 토성초등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현재 부산 해운대에 거주하고 있다. 부친의 항일독립운동과 백산상회 경력으로 독립유공자 포상을 추진하고 있으나 옥고기록이 없어 난제라고 한다.
선생의 묘소는 남해군 문의리 구두산 참샘 골에 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