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남해군
정덕생(鄭德生)
상세내용
▶ 정덕생(鄭德生)
정덕생 선생은 1881년 8월 30일 동래 정씨 정재진의 장남으로 경남 양산이 원적이며 남해군 고촌에서 태어났으며 남해읍 교회 최상림 목사와 함께 목회하고 함께 활동했다.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5년 평양신학교를 8회로 졸업했다.
선생은 남해군 창선면과 이동면 등지로 교회를 개척할 때 호주 선교사와 함께 개척 교회를 설립하기 위해 사전 답사를 하면서 주민들이 생활고와 전염병으로 고생하는 것을 목격하고 주머니돈을 내어 지원했다. 또 일제의 정책의 잘못으로 군민들의 삶이 피폐되었다고 여기고 애국 애족심이 발동했고 일제 타도를 결심하게 되었다.
부산 지역에서 목회 중 3·1운동이 발생하자 동참하여 교인들을 독려해 동참토록 지도하고 전국 목사 장로들이 모여 만든 대한국민회 부회장과 경남도 회장(1919년 10월 21일)으로 추대되어 상해 임시정부를 위해 거금을 송금했고, 백산 안희제 선생을 도와 군자금을 임시정부에 보내고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석방되었다.
1926년 8월부터 2년간 부산진 교회 목사로 사무 중 일제의 감시와 통제를 받게 되자 그 곳을 벗어나고자 강원도 등지로 돌아다니며 광산업을 한다고 거짓으로 말하고 숨어 살았다.
조상 땅찾기 차원에서 열람해 본 결과 조부와 부친 이름으로 전답, 임야가 발견됨으로 밭에서 옥수수, 감자 등을 심어 생활한 것으로 밝혀졌다.
보훈처에서 1940년대 행적에 대하여 의심을 가졌으나 토지가 발견됨으로서 해소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제의 감시망을 피할 수 없어 결국 체포되었고, 평북 중강진 경찰서로 끌려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춥다고 하는 중강진에서 수개월간잡혀 있다가 겨우 석방되었다.
장남 정도현은 육군 대위로 참전 유공자고, 막내아들 정도현은 육군 헌병 중령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손자 정정길은 맹호부대에 복무했고, 정일영은 백마부대 참전유공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