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남해군
정상은(丁相銀)
상세내용
▶ 정상은(丁相銀)
정상은 선생은 경남 남해군 창선면 오룡(오개)리에서 태어나 하동군 쌍계사에 들어가 수양을 하며 학문을 배우다가 화개장터 3·1운동을 주도하고 옥고를 치른 분이다. 생년월일은 1900년 1월 21일생이다.
화개장터 비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선생의 공적이 새겨진 비석은 2001년 2월 건립 당시에는 화개면 삼신리 341-2에 건립되었으나 2년 뒤 화개장터가 새로 조성되어 활성화되자 화개파출소 건너편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러다가 태풍 때문에 바로 옆에 세워진 장송이 쓰러지면서 다시 20m 후방으로 옮겼다.
경남 하동군 화개장터의 3·1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한 이강률(96년 대통령 표창)과 임만규(93년 대통령 표창), 이정수(전국 포장 추서)선생, 쌍계사 스님 김주석님을 기리어 건립된 기념비다.
항일투사들은 1919년 4월 11일 하동군 화개면 시장의 독립만세 운동을 주도하셨다.
4월 6일 쌍계사 스님인 김주석, 학생 정상근과 양봉원 등이 주도하여 시위했다. 그 후 이강률과 이정수, 이정철, 임만규 등이 이전 거사보다 더 큰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거사 일을 다음 장날인 4월 11일로 정하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강률 선생 등은 면직원들에게 사임하고 독립운동에 참가토록 하기 위해 권고문을 작성하여 4월 10일 밤 면사무소에 붙였다. 다음 날인 4월 11일 정오경 쌍계사 스님 학생들과 함께 화개장터에 모인 사람들과 만세시위를 하려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고 말았다.
이강률과 이정철, 임만규, 김주석, 정상근, 양봉원 등은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이정수 선생과 정상근 선생은 주도자라 하여 더 심한 고문을 받고 혼절했다. 동년 6월 9일 부산지법 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협박죄로 징역 8월형을 언도받고 이정수 선생은 징역 10월혈이 언도되었다. 대구복심법원에 항소했으나 7월 4일 기각되어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화개장터 3·1운동 기념비의 비신 높이는 1.45m고, 비신 면은 0.57m다. 건립추진위원장은 추경화 선생이고, 비문 글씨는 국전 심사위원인 정문장 선생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