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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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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서적

2010년대

반 박자만 늦추자

내용
서관호 칼럼집 - 반 박자만 늦추자
출처
도서출판 예랑
작가
-

상세내용

1969년부터 교직에서 10년, 전직하여 주공에서 20년, 교직에 복귀하여 경주, 부산, 양산에서 9년, 유랑과도 같은 반생을 보냈다.
그동안 힘이 되고 울이 되어주신 고마운분들께 일일이 찾아뵙고 인사드림이 도리이지만 우선 이 문집으로 문안 인사를 대신하고자 한다.
 
 
 
 
 
● 행복이 샘솟는 남해문화
 
 
 
개인의 행복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문화에 지배되기도 한다. 가령 교통사고율이 매우 낮은 지역에 사는 사람과 그 반대의 지역에 사는 사람의 목숨은 장수와 단명으로 판가름 날 수 있는 것이다.
기역고속도로와 니은고속도로를 이어서 다니다보면 차량의 흐름이 곳에 따라 달라짐을 느낄 수 있다. 저속차량이 1차로를 차지한 채 2차로의 화물차와 비슷한 속도로 달리는 것은 도로를 가로막은 것에 다름 바 없다. '바쁘면 네가 피해가라'는 식의, 고속도로가 사도(私道)인 사람이 지역에 따라 더 많고 적은 까닭이다.
이달 20일은 문화의 날이다. 위의 사례들이 곧 문화의 한 부분이다.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사람이 이루어놓은 그 모든 것은 문화 아닌 것이 없다. 따라서 문화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지역적 특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도시문화가 있고 농촌문화가 있으며, 남해문화가 있고 하동문화도 있는 것이다.
생활력이 강하고, 단결심과 애향심이 남다른 것은 참 좋은 남해문화이다. 하지만 경제관념이 지나쳐서 횟값이나 주차비를 비싸게 받고, 한 가지는 분명하지만 다른 시각에서는 생각이 닫혀있는 폐쇄적 사고방식은 고쳐야 할 문화이다.
 
지난여름, 어느 단체가 '바가지요금 환불제'를 실시하겠다는 기사를 읽고, '이제 남해가 깨어나는구나, 이제 남해에도 관광객이 몰려오겠구나!' 생각하면서 '아무리 바빠도 꼭 다녀와야지' 하고 다짐했었다.
요즘 세상에는 텔레비전, 인터넷과 같은 무선통신 광고가 사람을 흘려서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렇게 힘세고 빠른 광고도 입소문보다 무섭지는 않다. 그것은 기계로 전달되는 정보의 신뢰성보다는 사람의 목소리로 직접 듣는 인간자신에 대한 신뢰도가 인간자신을 배신하지 않으려는 자기방어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한번 입소문으로 번진 이야기는 가지치기를 거듭하여 마치 연못에 돌을 던졌을 때 일어나는 파문처럼 삽시간에 주변을 점령하기도 하거니와, 내가 아는 사람이 직접 들려준 목소리가 지니는 인지력은 뇌리에 한번 박히면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따라서 한번 더럽힌 이름은 영원한 쓰레기가 되기 쉽고, 한번 추락한 명성을 회복하기란 강물을 거꾸로 흘리는 일과 같다고나 할까?
 
 
십여 년 전, 필자는 멀리 울산에서 감동적인 고향 이야기를 듣고 흐뭇해져서 적잖은 술값을 쓴 적이 있다. 전남 광양의 금호도 출신이라는 한 아주머니가 들려준 다음과 같은 이야기 때문이다.
"남해 갈화는 인심이 좋아, 논을 매도 한 말, 밭을 매도 한 말"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으며, 농토가 없어서 식량이 귀했던 금호도 사람들은 인심 좋기로 소문난 남해 갈화에 가서 농사를 거들고 식량을 구해오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술회하였다.
 
이런 이야기, 이런 소문으로 자자한 내 고향, 이런 문화가 한 섬 가득 꽃피어서 화전(花田)이라는 옛 이름을 다시 별명으로 가지는 날이 올 수는 없을까?
 
문화의 날을 맞으면서 다시 생각하는 남해문화, 이제 한 달 후에 있을 승첩제를 한창 준비 중이지만 문화원이나 어떤 단체에서 하는 행사만이 문화가 아니라 내가 하는 생각,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행동이 모두 우리의 문화가 되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도 하고, 건조하게도 만드는 것이므로, 내가 사는 남해가 더 살기 좋은 고장이 될 수 있도록 문화인의 도리를 다할 것을 다짐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요즈음 번지고 있는 남해로 이사 오는 차량행렬이 더욱 길게 줄을 잇고, 더하여 남해로 구경 오는 관광버스가 넘쳐나서 도로를 더 넓히지 않으면 안 될 날이 오기를, 수준 높은 남해문화가 만리장성을 이루어 행복이 샘물처럼 솟아나는 내 고향이 되기를 염원해본다.
 
(2007. 10. 24. 남해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