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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서적

2020년대

남해사우총람

내용
향토사료
출처
남해사우발전협의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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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내용

◈ 남해사우총람 ◈

유교 학문의 그 근본은 수신제가(修身祭家)와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에 두고 인(仁)을 중심으로 한 윤리와 도덕을 최고 이상으로 하여 백성을 교화하고 민족사의 정신문화를 귀일(歸一)하는데 지표를 두고 있는 종교이며, 학문인 것이다.

유교의 진리를 세 가지로 크게 나누면, 첫째로 우리 민족 고유의 토착종교이고, 둘째로 전통윤리의 학문이며, 셋째로 도덕문학의 동방철학이다.

▶ 향교의 유래를 요약하면

1. 고려 인종 때, 개설하고 향례(響禮)와 교육의 양대 기능을 가졌다.

2. 조선조 원년(1392)에 각 도 안찰사(按察使)에 명하여 부·군·현에 일교(一校)의 향교를 설립, 교육한 것을 세계에서 유일한 교육 시설이었음을 확인한다.

3. 교육 순서는 각 동·리의 서당에서 기초를 배워 군 단위 향교에 입학하여 사서(四書), 삼경(三經),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 대학(大學), 서경(書經), 시경(詩經), 주역(周易)을 공부하여 향시(鄕試)에 합격하면, 진사생원이 된다. 그 외에 도 단위에서 뽑는 시험에 합격하면 성균관(成均館)에 진학하고 강경(講經), 저술(著述)의 공부를 충분히 익혀 대과(大科)에 응시하게 되는데, 합격하면 관계(官界)에 진출하고 출세하게 된다.

4. 조선조 문종 때부터 서원(書院)을 세우고 교육을 시킴으로서 향교 교육이 점차 쇠퇴하였다. 중종 38년(1514) 경북 풍기군수 주세붕(朱世鵬)이 일훈당(日暈堂) 서원을 세움으로서 시작되었다.

5. 고종 말에 과거제도가 폐지됨으로서 향교는 향례만 봉행(奉行)하게 된다.

6. 향교재산은 일제강점기 때 강압으로 서기 1900년에 임시정부에 귀속되었다가 8·15해방후 미 군정법 제194호에 의거 각 도별 향교재단으로 이관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