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남해군 문화유산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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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유산
남해향교 (南海鄕校)
상세내용
향교는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국가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처음 세워진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조선 현종 10년(1669)에 사당인 대성전을 고쳐 세웠다. 그 후 고종 29년(1892)에 대성전을 비롯한 동·서 양무와 내삼문을 지금의 위치로 옮겼고 점차 그 밖의 건물들도 모두 옮겨 세웠다.
완만한 경사지에 출입구인 외삼문, 유생들의 거처인 동재와 서재,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이 비교적 낮은 터에 있고, 그 뒤로 조금 높은 터에 내삼문과 성현에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이 위치하여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건물의 배치는 전형적이나 서재의 남쪽에 담장을 붙여 돌단을 쌓은 것은 다른 향교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다.
조선시대 초기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 없어진 후 1669년(현종 10)에 대성전을, 1678년(숙종 4)에 명륜당을 중수하고 그 후 1892년(고종 29)에 대성전을, 1917년에 명륜당을 지금 자리에 옮겨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1917년 4월 명륜당과 그밖의 부속건물을 옮겨왔고, 1982년 홍살문을 건립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 동무 · 서무 · 내삼문 · 외삼문 · 명륜당 · 동재(東齋) · 서재(西齋) · 서문(西門) · 관리사(管理舍) · 홍살문 · 고자가(庫子家) 등이 있다.
건축형태는 앞쪽에 강학 공간인 명륜당 등이 위치하고 그 뒤로 제사 공간인 대성전 등이 위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형식이다. 남해향교 건물의 배치는 전형적이나 서재의 남쪽에 담장을 붙여 돌단을 쌓은 것은 다른 향교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향교는 1983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소장 전적 가운데 《교궁선생안 校宮先生案》 · 《선생안 先生案》 · 《원생외안 院生外案》 · 《원생안》 · 《유안 儒案》 · 《유림별안 儒林別案》 · 《청금록 靑衿錄》 등은 이 지방 향토사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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