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남해군 문화유산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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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
남해금산 (南海 錦山)
상세내용
남해금산(南海 錦山)
경남 남해군에 위치한 남해 금산(해발 681m)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 공원으로, 기암괴석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절경을 자랑합니다。조선 태조 이성계가 백일기도 후 조선을 건국하여 비단으로 산을 감싸겠다는 약속 대신 '금산(錦山)'이라는 이름을 하사한 곳으로 유명합니다。
『남해 금산』은 지리산맥이 남쪽으로 뻗어내려 형성된 산으로 원래 원효대사가 이곳에 보광사라는 사찰을 지은 뒤 산 이름이 보광산으로 불리어 왔다. 금산이라 불리게 된 유래는 다음과 같다.
고려말 태조 이성계가 백두산과 지리산에 들어가 왕이 되게 해 달라고 산신에게 빌었으나, 들어주지 않자, 마지막으로 이곳에 와 빌면서 만약 산신령에게 왕이 되면 이 산 전체를 비단으로 둘러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성계는 막상 왕이 된 후 나라의 비단을 다 모아도 산을 두를 수 없기에 고민에 빠졌었다. 그러자 신하 하나가 산의 이름을 '비단 금'자에 '뫼 산'자를 써서 금산(錦山)으로 고치면 영원히 비단에 싸인 산이 되지 않겠느냐고 제안하면서, 산의 이름이 금산이 되었다고 한다.
금산은 영남에서는 합천의 가야산, 방장산(지리산)과 자웅을 겨루고 중국의 남악(南嶽)에 비견되기도 했으며, 바다 속의 신비한 명산이라 하여 ‘소금강산’ 혹은 작은 ‘봉래산(蓬萊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금산이 작은 봉래산이라는 이름을 얻을 만큼 명산으로 칭송을 받게 된 것은 멀리 떨어진 남해의 섬 속에서 다시 아득한 섬과 바다를 눈 앞에 두고 우뚝하게 솟은 돌산이라는 점에서 유람객에게 속세를 떠난 신비감을 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신라 고승인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 등이 이곳에서 수도를 하였다고 전해지고, 중국 진시황의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이곳을 왔다갔다는 서불의 이야기가 담긴 ‘서불과차암’과 춘·추분 때만 볼 수 있다는 노인성(인간의 수명을 관장한다는 별, 老人星 또는 壽星)과 관련된 전설 등 신비스런 전설이 많은 곳이며, 전국의 3대 기도도량인 보리암이 위치하는 등 상징적인 의미가 많은 명승지이다.
수십 편의 금산유람록이 전해지는 우리나라 명산의 하나로 아득한 다도해의 섬과 바다가 그림같이 한눈에 펼쳐지고, 오색 자수판을 보는 듯한 낙엽수림과 특이한 형상의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뛰어난 자연경관을 보여준다.[1]
태조 이성계가 금산에서 백일기도를 한 후 등극하여 보광산이란 이름을 비단을 두른다는 뜻에서 '금산(錦山)'이라 붙였다고 전하며,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유람기와 시가 전하는 등 역사적 가치가 큰 명소이다.[1]
중국 진시황의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이곳을 왔다간 서불이 남긴 '서불과차암'과 춘추분 때만 볼 수 있다는 노인성과 관련된 전설 등 신비감을 주는 영산(靈山)으로 상징적인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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