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남해군 문화유산 현황
| 문화유산 | 전통사찰 | ||||||||||
|---|---|---|---|---|---|---|---|---|---|---|---|
| 국가지정유산 | 도지정유산 | 군보호유산 | |||||||||
| 보물 | 사적 | 명승 | 천연기념물 | 등록 문화유산 |
유형 문화유산 |
기념물 | 민속 문화유산 |
무형 유산 | 문화 유산 자료 |
||
| 3 | 2 | 3 | 5 | 1 | 23 | 15 | 1 | 1 | 47 | 5 | 6 |
| 14 | 87 | 5 | 6 | ||||||||
보물
남해 용문사 괘불탱 (南海 龍門寺 掛佛幀)
상세내용
남해 용문사 괘불탱(南海 龍門寺 掛佛幀)은 수륙재나 기우제 등 야외 대형 법회 시 야외 법당에 걸어 모시는 의식용 대형 불화로, 2005년 대한민국의 보물 제144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 제작 시기: 1769년 (조선 영조 45년)
○ 크기: 세로 864cm, 가로 584cm (16폭의 삼베 연결)
○ 화풍: 수화승 쾌윤(快玧) 등 13명의 승려 장인이 참여하여 18세기 중반 이후 불화의 전형적인 양식을 섬세하게 표현했습니다.
○ 도상 구성: 중앙의 거대한 석가모니불(입상)을 중심으로, 왼쪽에 여의를 든 문수보살과 오른쪽에 연꽃을 든 보현보살이 좌우 협시로 배치된 '석가삼존불 입상' 형식입니다.
괘불탱은 사찰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할 때 앞뜰에 걸어 놓고 예배를 드리는 큰 불교 그림을 말한다.
남해 용문사 괘불탱 보물 제1446호
남해 용문사 괘불탱은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양쪽에 그를 보좌하는 두 보살이 서 있다.
그림 아래쪽에 제작 목적이나 과정을 적은 글귀인 화기(畵記)를 통해 1769년에 전라남도 선암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승려 쾌윤(快玧)이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중앙의 석가모니는 오른쪽 어깨가 훤히 드러난 법의를 걸치고 있다.
오른팔은 내려뜨리고, 왼손은 가슴 앞까지 들어 올린 채 연꽃 모양으로 만든 불상인 연화좌 위에 서 있다.
둥글넓적한 얼굴에 작은 눈, 코, 입과 미소가 잘 보이지 않는 경직된 표정 그리고 각진 어깨는 18세기 후반 괘불탱에 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왼쪽의 문수보살*은 보석으로 꾸민 관인 보관을 쓰고 불교의 법회나 설법 때 법사가 드는 물건인 여의를 들고 있다. 오른쪽의 보현보살**은 문수보살과 같은 자세로 서서 연꽃 가지를 받쳐 들고 있다.
두 보살상은 머리 크기에 비해 어깨가 좁고 발이 작아 위축된 느낌이 들지만, 팔에 걸쳐 흘러내린 길고 굵은 옷자락이 전체적으로는 안정감을 주고 있다.
용문사 괘불탱은 인물의 모습 및 표정, 신체 비례 등에서 18세기 중반 이후 괘불탱의 전형적인 특징이 드러난다.
표정이 경직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조화롭고 표현 기법이 세련되었다. *문수보살(文殊菩薩): 석가모니의 왼쪽에 있는 불교의 지혜를 맡은 보살 *보현보살(普賢菩薩): 석가모니의 오른쪽에 있는 불교의 진리와 수행의 덕을 맡은 보살
※ 설명
남해용문사괘불탱은 본존불상 좌·우에 협시보살상만을 배치시켜 삼존도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중앙의 본존불상을 위시하여 좌측(向右)에는 정면을 향한 채 똑바로 서서 여의(如意)를 들고 있는 보살상이 자리하고 있으며, 오른쪽(向左)에는 좌협시보살상과 동일한 자세로 서서 연꽃가지를 받쳐 든 보살상이 배치되어 있다.
중앙의 본존불상은 어깨가 훤히 드러난 오른팔을 길게 내려뜨리고 왼손을 가슴 앞까지 들어올린 채 두 발을 좌·우로 벌려 연화좌를 딛고 서 있는 입불상으로, 둥글넓적해진 형태에 눈·코·입이 작게 묘사되고 미소가 잘 보이지 않는 경직된 표정의 얼굴은 수평으로 들어올려 각이 진 어깨와 더불어 18세기 후반 이후 불화들에서 주로 나타나는 전형적인 양식 특징이다.
좌협시보살상은 보관을 쓰고서 여의를 들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석가모니불의 좌협시인 문수보살상이라 추정된다. 머리 크기에 비하여 어깨가 좁아지고 작아진 발로 인하여 위축된 느낌이 들긴 하지만, 팔에 걸쳐 흘러내린 길고 굵은 천의자락으로 인하여 전체적으로는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우협시보살상 또한 좌협시보살상과 표현이 유사하다. 그림 하단부에는 화기가 남아 있다.
이 괘불탱은 인물의 형태 및 표정, 신체 비례 등에 있어 18세기 중반 이후 불화의 전형 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직된 듯 조화롭고 세련된 표현기법을 보여주어 18세기 중반 이후 불화 연구의 자료적 가치가 크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