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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문화유산

남해군 문화유산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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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내용

▶ 제례 (祭禮)
 
 
 
제사란 추석(秋夕)의 절사(節祀)뿐 아니라 정초에 지내는 연시와 기제사를 모두 옛부터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주요한 통과제의(通過祭儀)의 하나이다.
 
이러한 제례는 유교 사회가 확립된 조선조에 이루어진 것으로 중국의 자가례(子家禮)를 그 근본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가정의례준칙이라든지 생활상의 복잡성으로 인해 많이 간소화되고 있다. 제사에 있어서 상차리기나 제사 지내는 순서, 시간까지도 많이 달라졌다.
 
제사의 차례를 옛식으로 살펴보면 신위 모시기, 신위 뵙기(參神), 혼령 내려 모시기(降神), 잔 올리기(三獻), 축문 읽기, 수저 꽂기, 숭늉 올리기, 물림절, 신위 모시기 순으로 전해졌었으나, 가정의례준칙에서는 합문(合門)과 삼헌(三獻), 숭늉 올리기 등을 생략하고 혼령 모시기, 잔 올리기, 축문 읽기, 물림절 등으로 간소화하였다.
 
원래에는 제사에 여자가 참석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으나(제사 막바지에 여자들이 일제히 사배(四拜)하는 경우도 있었다) 요즈음에는 여성도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술잔 따르는 법에도 옛날에는 기제사에는 삼헌(三獻), 절사에는 단잔으로 했으나 지금은 많이 변해졌다. 제사 지내는 시간은 원래 사망한 날 밤 1~2시에 제사를 지냈으나, 지금은 거의 저녁 나절에 지내고 있는 형편이다.
 
또한 4대 봉제사(奉祭祀)가 원칙인데 2대(부모, 조부모)까지 지내는 경우도 많아졌다. 제사의 경우에는 지방이나 문중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게 마련인데, 그 절차를 보면,
분향 재배(향을 피워놓고 재배)를 하고 강신재배(降神再拜 : 신을 부른다는 뜻으로 제주가 술잔에 술을 쳐서 묘상에 붓고 혼자서 절을 한다)를 한 후 참신(參神 : 강신한 다음 제일 먼저 절을 하는 것)하며, 제주가 술을 치는 초헌(初獻)을 한 연후 정저(수저를 세 번 제상에 치고 똑바로 놓는다)하고 독축(讀祝)하며, 다음 곡(哭)을 한다. 곡을 한 후에 아헌(亞獻)이 있으며, 다음 종헌(終獻)을 한다. 다음 제주가 다시 술을 따르는데 이를 첨작(添酌)한다고 한다.
 
첨작한 후에 개반(밥그릇의 뚜껑을 열어놓는다)하고 삽시(숫가락을 밥에 꽂는다)하며, 합문(合門 : 병풍을 걷고 귀신이 밥을 드릴 시간을 주기 위해 문밖에 나와 문을 닫고 10여 분 기다리는 것. 이 때에 잠시 긴 절을 하는 경우도 있다)을 하고 기침을 세 번 한 후에 일어나서 병풍을 다시 펴고 진차(進茶 : 국그릇 대신에 숭늉이나 차를 받쳐 올린다)하며, 다시 기침을 세 번 한 후에 수저를 수저통에 도로 넣고 복반(밥그릇의 뚜껑을 다시 덮는다)하며 사신(辭神)하고 축문을 태운다. 이후 상을 물린 후 음복(飮福)을 한다.
 
 

 
 
▶  상례 (喪禮)
 
 
사람은 한번 태어나면 누구든지 반드시 죽게 마련이다. 사람이 마지막 통과하는 관문이 죽음이고 이에 따르는 의례(儀禮)가 상례(喪禮)이다.
 
상(喪)이란 원래 사망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喪)을 천상(親喪)과 구분할 때 거상(居喪)이라 한다. 상(喪)은 조상 숭배에 기인한 제례의 일종으로, 제(祭)와 함께 신인에 대한 의례이니 상례(喪禮)를 구례(區禮), 제(祭)를 길례(吉禮)라 한다. 이 중 상례(喪禮)는 유교적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영역으로 그 절차나 형식은 오늘날도 가장 그 변화가 심하지 않다. 이러한 상례(喪禮)는 지역마다 거의 비슷하게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그 절차를 살펴보면 사람의 임종(臨終)부터 염습(殮襲), 출상(出喪), 대소상(大小祥), 그리고 영전(靈前)의 예(禮)까지를 초종(初終), 염습(殮襲), 치장(治裝), 흉제(凶祭)로 나누어 본다.
 
 

 
 
1) 초종(初終)
 
임종으로부터 수시(收屍)까지로서, 숨이 지면 동쪽으로 머리를 두게 하고, 새 옷으로 갈아 입히고 바로뉘어 놓는다. 임종시 마지막 숨이 단절되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솜을 입 위에 놓고 숨이 그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을 임종(臨終)이라 한다.
 
 
 
● 제사상 차리는 법
 
(북 쪽 - 병풍 앞)
고위(考位 - 아버지 신위) / 비위(妣位 - 어머니 신위)
 
음식 배치 (왼쪽 → 오른쪽)
제1열
메(고위밥), 갱(고위국), 잔반(고위술잔), 시접(숟가락·젓가락), 잔반(비위술잔), 초접(식초종지), 메(비위밥), 갱(비위국)
제2열
면(고위국수), 면(비위국수), 육개(고기찌개), 육개(기타찌개), 어개(닭찌개), 어개(기타찌개), 어개(생선찌개), 설탕, 병(고위떡), 설탕, 병(비위떡)
제3열
[촛대], 육적(고기부침), 초장, 육회(고기회), 적·구이(고기·닭·생선), 소금, 어회(생선회), 겨자, 어적(생선부침), [촛대]
제4열 포(고기·생선말림), 숙채(3가지나물), 청장(간장), 침채(나박김치), 해(생선젓)
제5열 과(밤), 과(배), 과(다식), 과(약과), 과(귤), 과(사과), 과(감), 과(대추)
 
(남) [제주(제주가 서는 곳)]
 
 

 
 
[상 아래 및 주변 배치]
  • (서쪽): 소반(小盤), 행주, 신위대기, 강신잔반
  • (중앙): 향안(축문, 향로, 향합), 모사그릇(茅沙器), 자리(남쪽)
  • (동쪽): 주가(퇴주기, 주전자, 술병, 현주병)
  • (기타): 화로, 세수대야(남쪽 좌우)
 
 

 
 
[제례 진설 관련 주의사항]
  • 위 진설도는 모든 제수를 차린 상태이다.
  • 동서남북(東西南北)은 신위(上座)를 북(北)으로 하는 예절의 동서남북이다.
  • 억양·앙장(휘장)은 천정에 친다.
  • 좌면지는 제상 위에 편다.
  • 지필묵연은 다른 방에 있다.
  • 숙수(숭늉)는 갱의 자리에 올린다.
  • 적(炙)은 한 가지씩 올린다.
  • 떡과 국수는 신위 수대로 차렸다.
  • 탕(湯·찌개)은 5탕, 육어(肉·魚·膾·膾)는 4가지의 경우이다. (상한선을 예시하기 위해서이다)
  • 제수의 종류와 접시 수는 상한선을 예시한 것이므로 여유가 있더라도 더 차릴 필요는 없고 형편에 따라 덜 차려도 된다.
  • 각 열의 순서는 신위 쪽으로부터 1, 2, 3열의 차례가 된다.
 

 
 
사망(死亡)이 확인되면 곡(哭)을 하며 발을 구른다. 한편 밖에서는 떠나는 영(靈)을 부르고 고복(皐復 혹 初魂)을 한다. 지붕이나 마당에 나와서 오른쪽으로 망인(亡人)의 속적삼을 잡고 "복" "복" "복"하며 세 번 외친다. 그리고 속적삼을 가져와 시신 위에 얹는다. 고복(皐復)에 이어 사자상(使者床)을 차린다. 이때는 사자(使者)가 셋이라 하여 밥 세 그릇, 반찬, 짚신 세 결레를 상 위에 올려놓고 상주(喪主)는 통곡을 한다. 고복이 끝나면 시체를 반듯이 놓고 간단하게 묶어놓는데, 이를 수시(收屍) 혹은 소렴(小殮)을 위해 홑이불을 덮고 병풍을 친다. 호상(護喪)을 두어서 상사(喪事)를 관장하게 한다.
 
 


 
 
2) 염습(殮襲)
 
 
시체를 목욕시키고 묶어 관(棺)에 넣는 것으로, 여기에는 습(襲)과 소렴(小殮), 대렴(大殮)이 있다. 습(襲)은 시체를 목욕시키고 의복을 갈아입히는 것이고, 대렴(大殮)은 시체를 단단히 묶고 입관(入棺)하는 것이다. 습(襲)은 물을 데워 향나무를 넣은 향수를 솜에다 찍어 시체를 씻긴다.
 
습(襲)을 한 후에 반함(飯含)이라 하여 물에 불린 쌀을 버드나무 수저로 세 번 입에 떠 넣고 무공주(無孔珠)를 넣는다. 이것은 망인(亡人)이 저승까지 가면서 먹는 식량이라 한다. 이 후 염(殮)을 하고 입관(入棺)한다. 입관(入棺)한 후 혼백(魂魄)을 영전(靈前)에 안치(安置)하고, 영영(靈影)을 놓고, 명정(銘旌)을 오른쪽 끝에 걸쳐 놓는다. 이 때 상제(喪制)들은 상복을 입고 성복제를 지낸다. 그리고 상주는 정식으로 조객(弔客)을 맞는다.
 
 

 
 
3) 치장(治裝)
 
 
 
장(裝)이란 시체를 지하에 매장(埋葬)하는 것을 말한다. 요즈음은 삼일장, 오일장이 일반이나, 옛날에는 대부(大夫)가 3개월, 선비는 1개월을 지낸 후 장례를 치렀다.
 
출상 전일 밤 상여꾼과 앞소리꾼을 모아서 상여놀이를 한다. 다음날 관을 상여에 얹고 발인제(發靷祭)라 하여 단작단배(單酌單拜)한다. 그리고 상여가 출발한다. 도중의 노존(路尊)와 장지(葬地)에 도착하여 상여 옆에 영좌(靈座)를 설치하고 과물(果物)을 차리고 조객(弔客)의 조문(弔問)을 받는다.
 
그리고 관(棺)을 넣고, 관(棺) 옆에는 사(細沙)나 황토(黃土)를 채우고, 동천개를 덮고, 상주(喪主)가 흙을 먼저 붓고 역인(役人)들이 매잡을 한다.
 
매장한 후 신주(神主)나 혼백(魂魄)을 모시고 오던 길로 다시 집에 간다. 집에 다다르면 주부(主婦)가 곡(哭)을 하면서 맞아 이를 상청(喪廳)에 모신다.
 
 

 
 
4) 흉제(凶祭)
 
 
 
치장(治裝)이 끝난 후 길제(吉祭)까지의 제사를 흉제(凶祭)라 한다. 이에는 삼우제(三虞祭)라 하여 세 번 제사가 있고, 3개월이 지나면 곡(哭)을 그치는 졸곡제를 지낸다. 초상(初喪) 1년째 되는 날 올리는 제사를 소상(小祥)이라 하여 원친(遠親)과 문상객(問喪客)도 와서 문상한다. 초상(初喪) 후 2년째를 대상(大祥)이라 하여 영좌(靈座)를 철회(撤回)하여 신주(神主)는 가묘(家墓)에 안치하고, 가묘가 없으면 혼백(魂魄) 상자를 묘에 묻는다. 이 때에 탈제(脫祭)를 지내며, 원래 이때에 탈상(脫喪)한다.
 
그리고 대상(大祥) 후 2개월이 지난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을 택하여 담제(祭)를 지내며, 원래 이 때에 탈상(脫喪)한다.
이와 같은 상례(喪禮)는 유교가 우리 나라에 들어오면서 정착되어 지금까지 계속해서 전해 내려오고 있다.
 
 

 
 
5) 동제(洞祭)
 
 
 
음력 10월 상무일(上戊日)과 보름달 밤에 모시는 마을이 대부분이다.
 
동제(洞祭)는 당산제(堂山祭)야제(野祭)라고도 한다. 야제는 마을 적당한 곳에서 모시지만 요즈음은 마을 회관에서 모신다.
 
동제는 동민이 모두 나와서 참례(參禮)한다.
 
동제는 미리 제수(祭需) 담당자를 선정하고 선정된 가정에서는 그날부터 정성을 다한다. 깨끗한 황토로 대문 밖에 양쪽으로 점점이 놓고 금대를 가로질러 놓는다.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막기 위함이며 제관 분담도 미리 정하여 두고 제관 역시 조신(操身)한다.
 
만약 동네에 괴질이나 큰 불상사가 생겼을 경우에는 동제에 부정을 탔기 때문이라 하여 다시 택일해서 동제를 모시기도 한다.
 
동제를 모시는 시간은 밤 9시에서 11시 사이에 지내며 야제(野祭)의 제물은 일반 제사와 같으나 뫼(제밥)는 큰 함지에 담아놓고 수저는 여러 첨을 시(匙)에 담아 둔다. 제물에는 명탕국(미역국)을 차려놓는 곳도 있다.
 
동제 모실 시간이 가까워지면 밥상 가지고 오라고 외친다. 이 때 성의 있는 사람들은 자기네 조상께서도 동제에 오기 때문에 밥상을 가지고 온다. 동네 제물은 중앙에 진설(陳設)하고 가지고 온 밥상은 동서(東西)로 놓으며, 먼저 가지고 온 밥상은 상좌(上座)에 놓기 때문에 모두 서둘러 가져온다.
 
동제는 창홀(唱笏)에 의하여 진행하며 일반 제례와 같이 삼헌(三獻 : 초헌, 아헌, 종헌)에 독축(讀祝)을 하고, 제사를 끝낸 다음 매식(埋食)이라 하여 동리의 동서남북 및 중앙 다섯 곳의 일정한 장소(밥무덤)에 젯밥을 가져다 묻는다.
 
동제의 비용은 동네 기금으로 하며 동네 재산이 없는 마을은 동민이 같이 부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