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신 신앙(洞神信仰)은 마을의 수호신을 신당에 모셔놓고 마을의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며, 마을 사람 전체가 공동으로 신앙하는 집단 신앙 형태로서 우리 면내에도 마을마다 동제가 있었다. 요즈음은 현대화에 밀려 동제를 지내지 않는 마을도 있으나 아직도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동제를 지내고 있는데 여기서는 대표적인 예로 가천 마을의 동제를 소개하기로 한다.
가천 마을에는 서낭당인 밥무덤과 미륵불이 있다.
● 동제(밥무덤)
마을 제사명은 동제이며, 모시는 신은 마을 수호신이다. 제일(祭日)은 음력 10월 15일 밤 10시 경이며, 제관은 생기복덕한 사람을 선출했다. 동제는 마을의 풍작과 풍어를 기원하며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축원하는 것으로 1975년까지는 마을회관 당산나무에 동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 동제는 1985년 경부터 이장(里長)이 제관이 되어 집사를 지명하고, 집사가 축관을 겸한다.
● 미륵불(암수바위)
바닷가에 자연적으로 생겨난 남(男) 여(女)를 상징하는 바위가 있어 주민들은 이 바위를 숫미륵, 암미륵이라고 부르며 매년 음력 10월 23일이면 각종 음식을 차려 놓고 마을 제사를 지내는 등 토속신앙으로 전해오고 있다. 이 미륵불은 조선 영조 27년(1751년)에 발견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당시 이 고을 현령 조광진의 꿈에 노인이 나타나 "내가 가천에 묻혀 있는데 우마(牛馬)의 통행이 잦아 일신이 불편해서 견디기 어려우니 나를 일으켜주면 필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꿈에서 깨어난 현령이 관원을 모아 가천으로 가보니 과연 꿈에서 본 지세와 똑같아 일꾼을 시켜 그 자리를 파 보니 지금의 암수바위가 나왔다는 것이다. 현령은 암미륵은 누운채 그대로 두고 숫미륵만 현재의 위치에 일으켜 세우고(음력 10월 23일) 논 다섯 마지기를 헌납, 미륵불로 봉안하고 이 날에 제사를 지내오던 것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마을의 자생단체였던 「가천 미륵계」에 관한 고문서가 대대로 전해 왔으나 1960년대에 분실되었다고 한다. 이 미륵불의 제일은 땅에서 돌을 파낸 음력 10월 23일 밤 11시 ~ 12시 사이다. 해방 전까지는 미륵계가 제사를 주관했다고 하는데, 그 뒤로는 이장(里長)이 당연직으로 제관이 되어 단독으로 숫미륵 앞에서 제사를 모시고 있다.
이 미륵의 영험에 관한 신앙심은 아직도 강하다. 개인적으로는 생남(生男)이나 치병(治病)을 기원한다고 하며, 미륵불에 손가락질을 하면 손이 썩는다는 속신이 있고, 제사에 정성이 부족하면 마을에 흉사가 발생한다고 믿으며, 미륵불 주변에 거름이나 분뇨를 뿌려 농사를 지으면 그 가족이 불치병으로 불구가 되었다는 구전(口傳)도 있다.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첫 출어하여 첫 그물에서 잡은 고기를 미륵불에 걸어두고 안전 조업을 기원하는 습속(習俗)이 있어 인근 통영, 고성, 욕지 등의 어민들까지 와서 축원한다고 한다.
■ 특 색
● 동제(밥무덤)
마을 한가운데 인가에서 3m 정도 떨어진 도로이자 공터에 높이 150cm, 길이 158cm, 너비 135cm의 밥무덤을 돌로 쌓아 만들었는데, 3층 탑의 형태로 되어 있다. 맨 위에는 길이 44cm, 너비 30cm의 넓직한 돌을 덮어놓고 그 밑에다 메(젯밥)를 묻는다.
● 미륵불(암수바위)
동구밖 해변쪽에 있는 이 바위는 크기도 하거니와 그 생김새가 숫바위는 남자의 성기가 발기한 형상이며, 암바위는 여자가 잉태하여 배가 부른 형상이다. 크기는 숫바위가 높이 5.8m, 상부 너비 1.3m, 상부 둘레 2.5m이고, 암바위는 높이 3.9m, 너비 1.1m, 둘레 2.3m나 되며, 동백과 모과나무를 심은 밭 모퉁이에 약 5m 간격을 두고 있다.
■ 내 용
● 동제(밥무덤)
음력 10월 15일 동제를 지내기 위하여 제관이 된 이장은 3일 전부터 근신에 들어간다. 제관댁 사립과 밥무덤에는 왼 새끼에 한지를 꽂아 둘러치고 황토를 군데군데 놓는다. 제관은 금줄을 치고 나서야 시장에 제물을 사러 간다. 이때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엄금하며 물건 값을 에누리하지도 않는다.
제수로는 돼지머리, 닭, 생선 10종, 과일 5종, 삼탕(문어, 홍합, 조기) 등을 산다. 제주(祭酒)는 제일 전에 제관댁에서 담근다.
제일(祭日)인 음력 10월 보름날 저녁 무렵 동제를 지내기 전에 집집마다 메, 국, 떡, 정화수를 소반에 차리고 개인제를 지내되 4배를 한다. 이 개인 가제(家祭)를 마친 뒤 지내는 동제에는 남자들만이 참례하게 된다. 밥무덤에 제물을 차리는 것은 대개 개인 가제와 같은데 메(밥)를 큰 함지에 담아 놓는 것이 딴 지방과 다른 점이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제단 양쪽에 볏짚 7~8개를 묶어서 세워놓는 점이다. 제(祭) 후에 밥무덤 주위에 나락, 조, 팥, 보리, 녹두 등 오곡의 씨와 목화 씨를 반드시 뿌리는 것은 풍작을 기원하는 염원의 발로라 할 것이다.
동제의 절차는 가제(家祭)와 같이 유교식(儒敎式)으로 강신, 참신, 초헌, 독축, 아헌, 종헌, 사신, 소지, 음복의 순서이고 소지는 5번을 올리면서 풍농과 풍어를 기원한다. 그리고 밥무덤에 메만 한지에 싸서 묻고 모두 마친다. 옛날에는 매구(매귀)도 치고 횃불놀이도 하였으나 지금은 징, 꾕과리만 친다고 한다. 이때에는 부녀자들도 참여하여 다함께 즐긴다고 한다.
● 미륵불(암수바위)
음력 10월 23일에 행할 제사의 준비와 절차는 제관을 선정함으로써 시작된다. 제관은 예전에는 연장자 중에서 정인(淨人)을 뽑아 제일(祭日) 15일 전부터 매일 목욕재계하고 근신하였으나, 지금은 3일 전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리며 미륵불 상부를 한지로 감아 성역화한다.
제물은 고기나 생선을 일절 쓰지 않고 과일만 차려서 동제와 같이 유교식으로 지내며, 예전에는 동민들이 모두 참석하였으나 지금은 제관과 집사만 지낸다. 술과 축문도 없고, 화식도 없으며 소지는 가구 수대로 올린다.
■ 구전(口傳) 되는 미륵불의 전설
1920년 무렵 욕지 어선이 가천 앞바다를 지나다 표류하고 있을 때 미륵 노인이 나타나 "나는 영의 세계에서 인간을 구하기 위하여 나왔다"며 이들을 구해주어 이 배를 타고 있던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찾아와서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마을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다.
또한 이 미륵은 해상 사업을 하는 사람이 제사를 지내면 해난 사고를 방지 하고 고기가 많이 잡힌다고 하여 지금도 해상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무사고를 기원하는 일이 잦다고 하며, 자식을 낳지 못하는 부모들은 밤에 몰래 이곳에 와서 초와 향을 피우고 수미륵에 기원하면 생남(生男)한다고 하며 지금도 젊은 부인들이 찾아와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 장수방(將帥房)
석교 옆 월포(月浦)에 있는 유지(遺趾)의 전설이다.
아득한 옛날에 어느 장수가 바위에서 바다를 뛰어넘어 대안(對岸)인 금산에 들어갔다고 한다. 길이가 약 40cm, 너비 25cm 되는 큰 왼발 자국과 바다를 보고 띄었다는 무릎 터가 남아 있고, 이상하게도 큰 두 바위 사이는 틈이 장거져 있으며 길이 10m 되는 그 벽면에는 사람의 진열(陳列) 같은 조각(彫刻)이 있는데 그림도 같고 암면(岩面)이 자연의 조화(造化)로 요철(凹凸)된 것 같이 보이고 있다.
● 향후 연구과제
이 외에도 문화재로서의 연구가치가 있는 것들이 있으니, △석교 다리 △죽전 농악 △선구 굴 △항촌 국방 △천황봉 시루바위 △구미서면 봉수대 등이 그것이다. 뜻 있는 후세들의 애정어린 관심과 연구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