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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문화유산

남해군 문화유산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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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유산

선구 줄끗기

상세내용

▶  민속과 전설
 
 
●  선구 줄끗기(고싸움 놀이)
 
선구의 줄끗기는 옛날부터 연면(連綿)히 이어져온 이 마을의 유구한 전통 민속이었으며 광복 이후까지 계속해 왔으나 6·25동란의 혼란기와 5·16 이후의 경제 개발 및 성장제일주의에 밀려 사람들의 관심권 밖으로 사라졌다가 1985년 율곡 마을의 한남종(韓南宗: 현 동남해농업협동조합장) 씨가 남해문화원장에 취임한 후, 남해에는 전승되어온 전통 민속 축제가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그 발굴을 위한 각고의 노력 끝에 선구 마을 뜻있는 사람들의 고증을 얻어 재현에 성공한 전통 민속놀이다.
 

 
■ 유래

정확한 시작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중엽으로 추정된다. 이것이 계승되어오다 일제의 탄압정책으로 그 명맥이 끊겼는데 광복 후 이를 되살리려 했
지만 여의치 못하였으나, 1985년 이후 남해문화원의 지원에 힘입어 선구 마을 원로들의 고증을 통한 재현에 성공하였다.
 
 
■ 목 적

반농 반어촌(半農半漁村)인 선구 마을의 풍농 풍어를 빌고 해난 사고의 방지와 마을의 번영을 위하여 시작했다는 것이 음악 및 연극적 요소에 의하여 나타나고 있다.
 
 
■ 형 태

창녕의 영산 줄다리기와 자전놀이를 혼합한 형태로 인원은 제한이 없고 선구를 북편(北便)과 남편(南便)으로 나누어 놀이가 시작되고, 자기편 군사를 늘리기 위하여 남쪽편은 이웃 항촌과 가천 마을을 돌면서, 북쪽편은 운암·임포·사촌 마을을 돌면서 시위 및 유인 행위를 하여 6개 부락이 참여하는 대 축제로서의 형태를 갖추었다.
 
 
■ 준비물

줄끗기에 필요한 고와 줄을 만드는 데에는 볏짚이 필수품인데, 이 볏짚은 어떤 형태로든 자기에게 할당된 물량은 확보해야 하며, 이 기간 동안에 훔쳤다던가 잃어버린 볏짚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짚이 구해지면 남(南)·북(北) 편을 갈라 남(南) 편은 갯가 몽돌 해변에서, 북(北) 편은 마을 뒤 당산나무 밑에서 새끼를 꼬고 다시 이 새끼를 꼬아 고를 만들었는데, 암(雌)고와 숫(雄)고가 있고 남북편이 해마다 교대해 가면서 암·숫고를 만들었다.

고의 직경은 각각 1m 정도이며, 이 굵기로 3m 정도 꼬아 나가다가 그 다음부터는 조금 가늘게 문어 발가락 모양으로 4개의 줄을 각각 40m 정도 이어내리는데 모두 합하면 160m나 된다.

이 고를 만드는 동안 여자들의 출입은 엄격히 통제되고, 상대편에 이기기 위하여 남 모르게 줄을 절단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횃불을 밝히고 밤을 새우며 줄을 지키는 필사적인 노력이 있었다. 이것은 아마 민간 신앙과 관련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 서전(序戰)

고가 완전히 준비되면 음력 정월 보름날 부락의 남쪽편과 북쪽편이 서로 나뉘어 각기 자기들의 고를 메고 북편(北便)은 윗당산에서, 남편(南便)은 아랫당산에서 풍농 풍어와 필승을 기원하는 축문을 읽고 제사를 지내면서 자신들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빌었다.
 
이 의식이 끝나면 양편(兩便)은 온 마을을 용트림하듯이 돌면서 기세를 올리고 상대편의 기를 꺾는 노래를 부른다. 이때 고 위의 대장은 장가를 가지 않은 숫총각일 때도 있고, 힘이 센 사람이 선정될 수도 있다.
 
대장이 고 위에서 먼저 상대편의 약을 올리는 노래를 부르면 뒤에 따르는 사람들은 대장의 노래에 맞춰 후렴을 부른다. 대장이 "솔밭에 솔잎이 솔솔" 하고 노래하면 뒷무리들은 "어어 술베야" "대밭에 댓잎이 때때" "어어 술베야" "잔대부치가 훨훨" "어어 술베야" 이런 식으로 상대편 사기를 저하시키고 자기편 기상을 드높인다.
 
이 의식이 끝나면 자기 농악을 앞세우고 응원군을 초청하러 다른 부락을 순회하게 된다. 이때의 가사는 "우리 사돈 어디 갔소" "어어 술베야" "우리 딸은 어디 갔소" "어어 술베야" "우리 북편(남편)이 이기면" "어어 술베야" "사돈 동네 풍년드요" "어어 술베야". 이런 식으로 다른 부락 사람을 합세시켜 고를 메고 다시 선구로 돌아가 결전의 시간을 기다리며 임전태세를 갖춘다.
 
 
■ 본전(本戰)

보름달이 뜨면 선구 자갈밭에서 농악에 맞추어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면서 여흥을 돋운 뒤 곧 싸움 준비에 들어간다. 숫고를 상대편의 암고에 끼우고 그 사이에 긴 몽둥이를 꽂고서 대장의 지휘 아래 노래를 부른다. 이 때의 가사는 "오늘 해가 다 졌는가" "어어 술베야" "골목 골목에 연기난다" "어어 술베야" "동쪽에서 달 떠온다" "어어 술베야" "오동추야 달 밝혀라" "어어 술베야" "열두 동에 달 떠온다" "어어 술베야" "청천 하늘에 잔 별도 많고" "어어 술베야" "요내 가슴에 수심도 많다" "어어 술베야"
 
이 노래가 끝나고 나면 본격적인 줄다리기가 시작되고 이때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줄에 매달린다. 이 때 여자들은 자기편에 하중을 더 싣기 위하여 치마에 돌을 싸고 필사적인 경기를 한다. 3회 2승을 원칙으로 하되 경우에 따라서는 5회 3승으로 승부를 결정짓는다. 여기에서 암고를 멘 편이 이기면 풍년이 들고 풍어가 된다는 속설이 있다.
 
 
 
■ 여 흥

경기가 끝나고 나면 다시 상대방의 약을 올리는 여흥이 계속된다. 이긴 편에서 상대편에 대하여 "남편(南便)에 문내난다" "어어 술베야" "북편(北便)에 문내난다" "어어 술베야" ...... ......
 
이렇게 하다 보면 둥그런 정월 보름달도 자취를 감추고 긴긴 겨울밤도 지새게 될 것이다.
 
 
■ 평 가

선구의 줄끗기는 1993년에 경남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하여 대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1994년에는 대한민국 민속예술경연대회에 경상남도 대표로 출전하였고, 남해군민 전체의 축제인 화전문화제 및 군민의 날 행사에 매년 시연을 하고 있으나 많은 인원과 막대한 예산, 그리고 놀이꾼들의 노령화로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며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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