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단종 2년(1454년) 10월 삼수군(三水軍)을 폐하고 만호(萬戶)를 두었다. 세조 12년(1466년) 관제 개혁과 지방군 직제를 개편하여 진주 목사(牧師)인 첨절제사(僉節制使) 휘하에 남해현령이 절제도위(節制都尉) 급위(級位)로 관장하고 있었으며, 수군(水軍)은 제포진관 웅천첨사(熊川僉使) 휘하에 평산포 만호(平山浦 萬戶)가 관장하고 있었다.
성종 21년 9월에 진보(鎭堡)를 구축하기 위하여 평산포성을 축성한다. 현청(懸廳)에서 남쪽으로 25리(里) 지점에 있고, 돌로 쌓았으며, 둘레가 1,558자(尺) 높이가 11자(尺)의 큰 성이었고, 만호(萬戶)는 무관(武官)으로 종(從) 4품이며, 군관(軍官)이 2인, 전리(鎭吏) 24인, 지인(知印) 14인, 사령(使令) 8명으로, 고려 시대 우수사(右水使)를 설치하였다가 조선조에 만호진(萬戶鎭)으로 대치되어 거북선 1척, 병선(兵船) 1척, 사후선(伺候船) 2척, 능노군(能櫓軍) 145명, 사부(射夫) 28명, 화포수(火砲手) 10명, 포수(捕手) 34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선(戰船)과 수군의 숫자는 변동이 없으나 진리(鎭吏), 지인(知印), 사령(使令)의 숫자는 증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