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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인물

사회(정치·경제·행정)

김시현(金施儇)

내용
김시현(金施儇)
출처
남해의근현대문학인
출생지
남해군 고현면 남해대로 3213번길 30
시대
1963.02.28 ~

상세내용

2021년 4월 「한국산문」에 수필 「남해 가는 길」을 발표해 등단

2024년 여름호 「미네르바」에 시 「분가」,「공곶 鞏串이」,「재부팅」을 발표해 등단

 

 

○ 학 력

서울 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 경 력

구)경제기획원, 서울중앙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서울회생법원 재직 / 2023년 7월 퇴임

서울중앙지방법원 재직중.

 

 

 

 

「남해 가는 길」

 

 

아버지 기일이라 동생과 함께 가는 남해 고향길이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에는 봄꽃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들녘엔 봄기운이 피어나고 있었다.
 
농부의 손길이 필요한 밭갈이가 한창이었다. 언덕엔 연둣빛이 오르고, 바람결에 나뭇가지가 수줍게 흔들렸다. 아버지랑 고등학교 1학년 때 함께 갔던 쌍계사 벚꽃길이 떠올랐다.
 
집 담 너머 운동장에서 보았던 벚꽃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아름다운 꽃길은 황홀 그 자체였다.
 
우리 집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도로가 확장되면서, 도로가 되었다. 지금의 집은 아버지가 도면을 그리고 설계하여 지었다. 수직인지를 살피기 위해 다림추를 실에 매달아 땅의 지반을 다지는 걸 보았다. 인부들과 함께 손수 집을 짓는데 혼과 정성을 쏟았다.
 
마루와 연결된 부엌 위에 다락방을 만들었다. 나는 동생과 마루에서 사다리를 타고 틈만 나면 다락방에서 놀았다. 꽃잎과 풀로 밥을 짓고 소꿉놀이했다. 아버지는 화단에 나무를 심어 가꾸기도 했다. 나무를 심을 때마다 나무 이름을 알려주었다.
 
대장간 순엽이네 단감나무가 부러워 단감나무를 심어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돌감나무에 접을 붙였다. 해가 지난 후 신기하게 단감이 열렸고 광주리에 가득 담긴 단감을 보며 부러울 게 없었다.
 
아침이 되면 학교에 오는 조간신문과 함께 우리 집에도 신문을 구독했다. 아버지는 이불을 개키고 마당을 쓸고 조간신문을 읽었다. 특히 뉴스 기사와 함께 재미로 보는 운세와 논설위원이 쓴 칼럼 지면을 애독했다. 기삿거리를 가족들에게 공유하기도 했다.
 
정보가 없었던 그 시대에는 신문이나 라디오를 통해 듣는 게 전부였다. 퇴근 때는 책방에서 책을 사 오기도 했다. 대학 입시를 앞둔 큰오빠에게는 시사 부분을 잘 보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외출하고 돌아올 때 손에는 봉투가 들려 있었다.
 
먹거리와 함께 큰오빠 에센스 영어사전과 일반상식이 들어있었다. 그날은 아버지가 월급을 타는 날이었다. 가끔은 내가 읽을 위인전과 수수께끼 책도 있었다.
 
6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중학교 입학 기념으로 빨간 뿔도장과 만년필을 사 왔다.
 
빨간 뿔도장을 지금도 가지고 있지만, 이젠 도장을 사용할 일이 없다. 책을 자주 사주셨던 아버지는 '영어 첫걸음'을 사 왔다. 작은오빠에게 영어 철자를 익혀 달라고 부탁했다.
 
중학교 입학 당시, 영어 철자를 아는 친구는 드물었다. 손을 들라고 하자 아이들이 나를 바라봤고,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졌다. 덕분에 읍내 친구들이 내 곁으로 와 친구가 되기도 했다.
 
둘째오빠는 내게 영어를 가르쳤고 언니는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 
 
음악 시간이 되면 선창하기도 했다.
 
언니와 나는 자주 노래를 불렀고 아버지는 라디오에서 뉴스나 노래 듣는 걸 좋아했다.
 
술 한잔이 들어가면 "홍~도~야~ 울지 마라 오빠가 있~다"를 부르기도 했다.
 
집안에 노랫소리가 안 들리면 아버지는 나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독촉했다. "우리 현이 어디 갔나 노래 한 번 불러봐라"라고 했다.
 
틈이 날 때마다 한문으로 쓰인 책과 일어책도 읽었다.
 
화선지를 꺼내면 먹을 가는 것은 내 몫이었다. 먹을 갈며 쫑알거리는 나를 보고 빙그레 웃기도 했다. 봄이 돌아오면, 좋은 기운을 기원하는 뜻이라며 입춘대길을 써서 벽에 길게 붙이기도 했다. 풍족하지 않아도 낭만을 알았던 아버지였다.
 
나는 오랫동안 보아왔던 아버지의 퇴적된 삶을 사랑한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가족'이 주는 일상은 평화였고 쉼이었다. 삶이 고달플 때면 그때를 회상해 본다. 겨울이면 연탄아궁이에 둥근 석쇠를 올리고 쥐포와 노가리를 구웠다. 아버지는 늘 우리를 불러 함께 긴 밤을 보내곤 하였다.
 
까맣게 익은 군고구마를 고무래로 끄집어내어 둘러앉아 군고구마를 먹었다. 아이들보다 신이 난 아버지는 검댕을 슬쩍 손에 묻히고는 작은오빠와 나의 얼굴에 묻히기도 했다. 아버지가 푼 보따리에서 술술 나온 이야기를 구들방에 앉아 듣곤 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이야기를 깜박 속아 넘어가게 해주었다. 신이 난 아버지는 몽유병 이야기를 이어갔다. 귀신 이야기와 몽유병 이야기에 무서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들었다.
 
언니는 나에게 호들갑을 떤다며 면박했던 걸 보면 이미 꾸민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다.
 
이불을 뒤집어쓴 내 모습에 아버지는 작은오빠와 함께 손발이 맞아 뒤집어쓴 이불을 벗겼다. 발버둥 치는 나의 반응에 "우리 현이 잡아가라"며 약을 올렸다. 아버지는 우리들보다 이야기 속에 더 빠져 있었다. 그때를 떠올리니, 군고구마 냄새와 웃음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맴돈다.
 
아버지 회사는 진주에 본사가 있었다. 평일엔 남해·하동에서 근무했다. 본사에 출근하지 않고 도로 사정을 파악해 전화로 보고하는 업무였다. 월급날인 25일과 특별한 날에만 진주에 갔다.
 
월급날이면 바나나를 먹으려고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두고 그날을 기다렸다. 쌍계사 벚꽃 구경을 다녀온 후 얼마 되지 않아 근무 중에 혈압으로 쓰러졌다. 꾸준한 치료로 뇌출혈은 완쾌되었다.
 
당뇨 합병증은 더 악화하여 당신이 직접 인슐린 주사를 몸에 놓았다. 식이조절을 하며 치료했지만 결국 다녔던 직장도 퇴사하게 되었다. 지병은 폐로 전이하여 투병 생활은 15년 동안 지속했다. 나는 가족과 떨어져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고 있을 때였다.
 
글쓰기를 좋아했던 당신은 가족들 소식을 상세하게 적어 보냈다. 건강이 좋아졌다며 수시로 편지를 보내왔다.
 
퇴근 후 아버지 편지를 받고 가족들이 그리워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외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지금도 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내가 쓴 글을 보여 주면 좋아할 텐데 아쉽기만 하다. 그 기억은 결국 아버지의 일기장으로 이어졌다.
 
막내였던 아버지는 가족애가 지극했다. 큰오빠 작은오빠에게 따로 말을 전하고 우리에게 "지금처럼 싸우지 말고 잘 지내거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69세에 우리 곁을 떠났다.
 
유품을 정리하는 날이었다. 아버지가 사용하던 좌식 책상에 차곡차곡 보관해 둔 일기장을 발견하였다. 우리 가족들의 일상과 집안 대소사가 적혀있었다. 날씨와 함께 그날 있었던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삶이 녹아 있었다.
 
집안 어른들은 아버지 기록을 보며 한 마디씩 입을 열었다. "법 없어도 살 사람이었는데, 아깝게 갔다."라고 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록된 글은 아버지 성품과 성실성과 진실함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불꽃 속으로 사라진 일기장, 아버지의 성실함과 진실함도 함께 타올랐다.
 
아버지의 애장품인 라디오도 함께 불 속으로 타들어 갔다.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일기장을 넣어 두었던 좌식 책상도 태워졌다.
 
언니의 만류에 일기장은 한두 권만 남았고, 시간이 지난 지금은 아버지의 흔적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점심시간이 지나 남해 집에 도착했다. 친정집 앞에는 큰 개울이 흐르고 있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썰매를 끌어주었던 개울이다. 도로 옆에는 벼리들 들녘이 있다.
 
들녘과 붙은 해안도로를 끼고 강진 바다가 펼쳐지고 있다. 상짓골 언덕 아래 마당엔 연둣빛 융단이 깔려 있다. 봄이 먼저 찾아온 바위틈 사이로 철쭉이 만개해 있다. 잔디에서 강아지와 고양이도 햇볕을 쬐고 놀고 있다.
 
화단에는 꽃망울이 봄바람에 터질 듯 하늘거리고 있다. 생전에 심었던 나무들만 아버지 모습처럼 서 있다. 제사음식을 준비하던 식구들은 우리를 맞이했다. 남자들은 제기를 닦고 병풍과 제사상도 손질하고 있었다.
 
좋아하시던 생선 굽는 냄새가 집 안 가득 퍼졌다.
 
제사를 일찍 끝내고 엄마의 손을 잡고 가족들은 밤바다로 나갔다. 멀리 보이는 어선과 달빛은 해안도로를 비추고 있다. 평상에 둘러앉아 식구들과 함께 별을 찾았던 아련한 시절이 달빛에 그려진다.
 
마당으로 쏟아질 것만 같은 별 무리가 바닷물에 내려앉을 듯하다. 언니는 아버지가 즐겨 불렀던 '애수의 소야곡'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 만~~은'을 선창한다.
 
누구랄 것도 없이 함께 노래를 불렀다. 별빛 아래, 노랫소리가 번지자 눈가가 뜨거워졌다.
 
바다 냄새는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함께 봄바람을 타고 콧속으로 스며든다. 그윽한 달밤과 함께 올백으로 머리를 넘긴 아버지가 웃으며 우리 곁으로 걸어오는 듯하다. 남해로 향한 길은 결국 아버지에게 닿는 길이었다.
 
봄바람에 흩날리던 벚꽃처럼 아버지는 여전히 내 삶을 따라 걸어오고 계신다.
 
봄의 남해 달빛의 바다, 그리고 벚꽃의 길 위에서 나는 여전히 아버지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