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전남 여수에서 자랐습니다.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고,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을 받으며 동화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린이의 마음에 뿌리 내리고 자라는 나무 같은 동화를 쓰는 것이 꿈입니다. 쓴 책으로는 『베짱이 할아버지』 『춘악이』가 있습니다.
봄바람이 어느새 노고단까지 올라와, 가지마다 잠든 새순을 깨우고 다녀요. 언 땅은 녹아가고 풀은 아직 자라지 않았어요. 여우들이 들쥐 사냥하기에 지금보다 좋은 때는 없지요.
잠꾸러기 꼬마 여우 왕털이도 발딱 일어나 새벽 사냥에 따라나섰어요. 할머니한테 사냥 솜씨를 뽐내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거든요. 왕털이는 할머니보다 한 발 앞서 걸었어요. 가랑잎 밟는 소리도 내지 않으려 조심조심 했지요.
왕털이가 고요히 어둠에 잠긴 가문비나무 숲에 들어섰을 때였어요. 저 앞에 뭔가 있는 걸 느끼고 왕털이는 귀를 쭈뼛 세웠어요.
조금 뒤, 어둠 속에서 불쑥 너구리가 나타났어요. 왕털이도 너구리도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지요. 꼬마 너구리는 혼자인 것 같았어요. 그렇다면 하나도 겁날 것 없지요. 왕털이 뒤에는 할머니가 떡 버티고 있으니까요.
가만 보니 여우가 똥 좀 갈겨 두었다고 제 굴을 팽개치고 간 바로 그 머저리 녀석이에요.
너구리 녀석은 다짜고짜 욕부터 해댔어요.
"이 도둑 여우 놈아, 더러운 똥 무더기는 다 먹어치웠냐?"
왕털이는 이빨을 드러내고 꼬리에 힘을 준 다음, 보란 듯이 큰소리를 쳤어요.
"뭐? 도둑놈이라고? 똥까지 먹는? 넌 이제 죽-었어! 거기서 꼼짝 마! 할머니!"
그런데 대답이 들리지 않아요. 뒤돌아보니 할머니는 없고 가문비나무들만 멀뚱멀뚱 서 있었지요. 사방이 조용했어요. 바람이 휘파람 소리를 내며 두어 번 지나갔을 뿐이에요. 등짝이 서늘해지고 털이 곤두섰어요. 다리에 힘도 빠졌어요. 너구리의 거뭇한 눈 주위가 오늘따라 더 사납게 보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