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사회(정치·경제·행정)
이면기
상세내용
1984년 「한국일보」신춘문예에서 수필 「舊道路」당선
▶ 학력
부산상업고등학교(40회) / 부산대학교 상과대학 졸업
▶ 경력
남해 3·1운동을 주도한 이예모 님의 손자 / 시조시인 이처기 님의 형 / 의료보험관리공단 근무
「舊道路」
수십 년 묵은 버드나무가 줄지어 있는 구도로를 버스가 달리고 있다. 먼지가 구름 같이 일고 있는 것은 그렇다 치고 간간이 돌멩이가 튀는 소리에는 깜짝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산모퉁이의 커브길을 돌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앞에서 나타난 다른 버스 때문에 내가 탄 버스가 급정거한다. 두 버스의 운전기사는 서로가 미안하다는 듯이 손을 번쩍 들어 보인다.
오랜만의 시골길에서 보는 이러한 구도로의 정경을 통해서 왠지 나는 불편하다는 생각에 앞서 어떤 친근감을 느낄 수 있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마도 지금은 퇴색해버린 구도로이긴 하지만 이 길에는 우리의 역사가 서려 있기 때문이리라. 작게는 개인의 역사가 크게는 민족의 역사가 말이다.
생각해 보면 흘러간 세월이 아쉽기만 하다. 어릴 적에는 책보자기를 등에 메고 이 길을 뛰었고, 뛰다가 지치면 길가의 버드나무를 붙잡고 숨을 돌렸다. 바람에 속삭이는 버드나무 가지 사이로 뭉게구름이 하늘을 돌고 있는 것을 쳐다보고 있으면 나의 가슴에도 꿈이 인다.
우리의 역사와 애환을 구도로는 알고 있다. 3·1독립운동, 8·15해방 때의 민족의 함성이 이 길을 따라 메아리 쳤고, 6·25의 쓰라린 눈물이 이 길을 적셨다. 길 따라 들어온 남침의 탱크부대를 격퇴시키고 먼지를 날리며 북진하던 국군의 장한 모습을 구도로는 잊지 못할 것이며, 우리 또한 잊을 수가 없다.
구도로가 가는 곳에는 순리(順理)가 있다. 길은 산허리를 따라 강물을 따라 자연에 거역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과 더불어 있다. 길옆으로 펼쳐진 작은 마을에는 때를 따라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는 인간 본연의 모습도 있다. 우리는 분명한 진리에 대해서도 가끔 외면하는 경우가 있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기계문명 때문에 마치 인간이 자연을 떠나서도 얼마든지 살 수 있는 것처럼 극도의 자만심을 갖게도 하지만, 현재도 미래도 인간은 자연의 섭리 안에서만 살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의 섭리를 따라 살아야 한다면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있을 것이다. 그 한 가지는 역리(逆理)를 버리고 순리를 찾는 것이다.
구도로의 주변에는 정적(靜寂)과 평온이 있다. 바람소리, 낙엽소리가 들리고 드리운 산그늘 밑으로 고요히 흐르는 강물이 있다. 물속으로 들여다보이는 강바닥의 조약돌을 보고 있으면, 소음에 찬 도심의 생활에서 막힌 것 같은 귓속이 다시 트이는 것 같다. 태고의 고요와 아늑함이 있는 저 골짜기에 오르면, 양지 바른 곳에 이끼 낀 기와지붕의 산사(山寺)가 있으리라.
멀리 저 산골짜기에서 목탁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는 그동안 도심의 생활에서 언제나 조급하고 바쁘게 서둘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때나마 정적과 평온 속에 마음을 던지고 싶다. 그리고 차분하게 자연 속에서 자연의 질서를 생각해 보고 싶다. 자연의 질서는 무엇이며, 사람이 살아가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서....
자연에는 진실이 있고 인내가 있다. 뿌린 만큼 거둬지는 것은 자연의 진실이요, 춘하추동의 계절이 끊임없이 때맞추어 돌아옴에 따라 기다림 속에서 결실을 맺는 것은 인내를 의미한다. 인간의 삶도 진실과 인내가 있는 곳에 평온이 있을 것이다.
구도로를 가노라면 마음의 여유를 얻을 수도 있다. 시간의 단축을 떠난 곡선의 길목과 공간 속에 유유히 뻗어 있는 낙락장송이 보인다. 이러한 여유 있는 분위기 속에서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관조(觀照)할 수 있으며, 또한 닳아진 인간의 한 영역을 회복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곰곰 생각을 해본다. 나는 지난 날 어떻게 살아왔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그리고 지금의 나와 견주어서 본래의 나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차분한 침묵의 관찰이 있을 때, 바른 눈으로 보고 바른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이 인간이며 인간의 모습일 것이다. 생활의 얽힘에서 벗어나 여유 있는 마음으로 자신을 비추어 봄으로써,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
구도로에는 차선이 없다. 내 길과 남의 길이 없는 좁은 길이지만 산모퉁이에서 버스가 서로 만나면 한쪽이 서서 기다려주고 다른 한쪽의 차가 비껴나간다. 차선이 뚜렷이 있는 도심의 거리에서 서로가 먼저 가려고 아귀다툼하는 광경과는 대조적이라고나 할까. 하기야 교통량이 많은 도시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반드시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 길은 서로 이어져 있다. 구도로와 신도로(고속도로)도 이어져 있음이 사실이다. 길은 길이기 때문에 이어져 있는 것이나 시간적으로는 역사의 이음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길은 고속도로로부터 시작된 것은 분명히 아니다. 먼지가 날리고 자갈이 뒹구는 구도로의 시대를 살다간 조상들의 땀과 눈물의 역사가 없었던들 오늘의 그 환한 고속도로는 트이지 못했을 것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의 참뜻을 여기에서도 되새겨 볼 수 있지 않을까.
길은 트여 있으며 앞으로 간다. 한많은 세월을 조상들은 앞으로 보며 구도로를 걸었다. 설사 당신들의 시대에는 희망이 없더라도 꿈을 잃지 않고 꾸준히 그리고 묵묵히 걸어갔다. 아무리 멀고 험한 길일지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신들의 아들딸들에 대한 미래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어느 철학자가 말했듯이 인간은 생명의 유한성을 자각하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러면서도 미래에 연연하고 이상에 매달리는 것이 인간이요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털털거리며 구도로를 달리던 버스가 포장도로에 접어들었는지 쏜살같이 달린다. 창가에는 멀리 텅 빈 들판이 보이고 바람이 부는지 낙엽이 흩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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