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학문(교육·학자)
이광남
상세내용
1965년 밀양상남국교 교사로 시작하여 진해고교, 거제동부중, 밀양중, 무안중, 무안종고, 밀양여중 등에서 국어교사로 재직
▶ 학력
광천초등학교 / 남수중학교 / 해동고등학교 /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 경력
중등학교 교사로 35년 봉직
시인의 시를 읽고 있노라면 회장이 필요 없는 산골 처녀처럼 그저 순박하기만 하다.
그러나 일상생활 속에서 담담히 흐르는 미소에 가슴이 설레고 마주 부딪쳐 오는 조용한 눈길의 강렬함에 전율을 느낀다.
많이 웃고 많이 울었던, 땀 흘려 일하고 즐겁게 놀았던, 주머니와 배 속이 허전해도 마음이 편했던 그때가 좋았다는 시인의 시 구절 속에 수많은 삶의 상처부스러기와 짐 꾸러미들이 무겁게 눌러 앉아 있어 숨이 막힌다.
沈氏이야기
지금은 비록 시골 바닥에서 논 천팔백 평으로 다섯 식구 식량은 겨우 이어가며
한우 네마리 사육하는 것이 큰 업이다.
이외에 재산 목록에 들어갈 수 있다면 낡은 경운기와 빵구 자주 나는
자전거 한대가 고작이다.
착하고 심성 좋은 아내와
실업계 고교에 다니는 아들과 면소재지 중학교에 입학한 딸,
노모를 모시는 심씨는 하루가 가고 한달이 가고 한 해가 갈수록 걱정이 태산이다.
수입이라야 마굿간에 자라는 암소 세마리가 낳은 송아지가 전부 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소에게 먹이를 부지런히 날라 주다가도
학교와 학년이 올라가는 자녀들 뒷바라지 생각하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남들처럼 땅이 많아 수매 때 목돈 거머쥘 일 없고,
딸기, 고추 같은 특산물 할 기술과 힘, 아니 한꺼번에 기백만 필요한 재력이 없고보니
자고 세고 유일한 낙은 소 얼굴 처다보는 즐거움 하나뿐이다.
처음부터 농사에 장래를 걸 처지가 못 돼
노모 만 시골에 남겨 놓은 채 보따리 싸고 무작정 서울에 올라가
이것저것 기웃거려 보았지만
집안 없고 학벌 낮고 재력없는 탓에
막판에는 공사장 벽돌 짐꾼하다가 도저히 싸가지 없는 일 하다가
철석같이 믿고 있을 아내 생각하니
차라리 떠나온 고향 땅 돌아가서 성실하게 땅 파 먹고 사는 것이
좋겠다는 결심으로
이곳에 정착한 지가 벌써 이십년이 다 되었다.
남들처럼 먹을 것 다 먹고 입을 것 입을 처지가 못 된다.
입식부엌도 아니고 시간 맞춰 갈아 넣은 연탄 방도 아니고
스위치만 누르면 빨래가 되어 나오는 세탁기도 없다.
그래도 아내는 불평 한마디 없이 꾹 참고 잘 따라주니
복 중에 제일 큰 복이 다.
자라는 아이들은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태산보다 높다.
이 시대에 일등가는 아버지가 자식 눈에는 꼴등이다.
풍선놀이
배가 불러야 신명 나는 놀이기에
바람이 들어야 잘 뛰노는 성미이기에
위험천만 외줄에 몸을 던진다
헛배 만 가득 차서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짜릿함에
기를 쓰며 바둥바둥 매달린다.
아이들처럼 철딱서니도 없이
너도나도 둥실둥실 뿌리 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양식도 지혜도 팽개치고
끝없는 허공으로 빨려든다.
풍선놀이가 끝나는 날
바람 빠진 풍선의 주름살
허망함이 주는 때늦은 후회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