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사회(정치·경제·행정)
박종권
상세내용
1937년생 고향 남해. 전투기 조종사 박종권 공군예비역 소장은 1992년 1월 전역하기 까지 공군 제30방공관제단장 제5전술공수비행단장, 제11전투비행단장을 역임하면서 방공자동화 체제 구축과 팬텀공군에서 F-16 공군으로 발전하는데 최일선 부대 지휘관으로 지대한 역할을 했다.
공군 본부 정보참모부장, 합참 전략기획부장, 국방부 군비 통제관을 끝으로 전역했다. 남북고위급 예비회담 중에는 국방부 대표로 활동했다. 전투기 비행시간 총 3,691시간 45분으로 최대 보유자이다. 일찍이 중위때부터 비행 기량을 인정받아 에어쇼 단독 비행조종사로 곡예비행을 한 바 있다. 그후 팬텀기를 인수해온 16명의 조종사 일원이 되어 교관 조종사, 시험비행조종사등 공중지휘관이 되어 현대화 공군의 산실과 주역이 되었다.
공군사관학교(61), 공군대학, 국방대학원(81), 인도국방대학원(85), 전역 후에는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그 후 1년간 스탠포드 대학 국제안보연구소(CISAC)객원 연구원이 됐다. 한국 항공 진흥협회 상근 부회장, 한국보훈의료공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정부로부터 훈포장 삼일장 천수장을 자유중국으로부터 영수훈장을 받았다.
▶ 학력
남해초등학교 / 남해중학교 / 남해농업고등학교 / 공군사관학교 졸업
▶ 경력
1961년 공사 졸업 ~ 1992년 전역 / 제5전술 공수비행단장 / 제11 전투비행단장 / 팬텀 공군 F-11 지휘관
공군본부 정보참모부장 / 국방부 군비통제관 / 에어쇼 단독비행 조종사 /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한국보훈의료공단 이사장 역임
1969년 한국공군의 최우수 팬텀기 조종사로 발탁된 후 소장으로 임관하여 1992년 전역하기까지 틈만 나면 남해 상공을 비행하면서 고향산천과 남해사람을 가슴으로 사랑해 온 진짜 남해 사람이었습니다. 유년기 어머니를 잃고 외가에서 자라며 신문 배달을 하면서 고학으로 남해중과 남해농고를 수학 하였고, 남해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공군사관학교생으로 합격, 장군이 되기까지 그의 삶은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한 입지의 가시밭길이었습니다. 제11전투비행단장, 펜텀 공군에서 F16공군으로 발전하는 데의 최일선 부대지휘관, 공군본부 정보참모부장, 한참전략기획부장, 에어쇼 단독 조종비행사 등 한국공군의 현대화에 주역을 맡은 분입니다. 남북고위급예비회담 국방부 대표로 활동도 하였고 전역 후에는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한국보훈의료공단 이사장을 역임 하였습니다.
"팬텀기를 처음 조종하였을 때가 1969년 봄, 그 당시 16명의 한국 공군의 최우수 조종사들이 팬텀기 인수팀으로 선발되어 미국으로 갔다. 나의 비행교관은 첫 비행에 그랜드캐년을 향해 갔고 깊은 계곡을 누비며 조종기술을 과시했다. 그랜드캐년의 계곡과 그 계곡사이를 지나갈 때 나는 처음으로 지구 밖으로 나와 있는 착각을 느꼈다. 그리고 펜텀기를 그해 9월에 태평양횡단 비행으로 인수해 왔다. 우리 모두는 감격스러워 눈물을 흘렸다.
23년이 지난 지금 그때 그 비행기를 조종하면서 마지막 비행(1991년 12월 21일 오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고향을 가자. 내 어릴 때 살던 그곳 어버이가 묻힌 그곳, 그렇게 가고파하던 고향땅을 가자. 아주 작은 섬마을 남해도! 내가 조종사가 된 것을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사람들, 지금은 늙으신 외조모님과 마을 사람들이 사는 그곳으로 가자. 내가 남부기지에 근무할 때 남해바다 상공의 임무가 주어질 때면 임무공역이 고향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에 몇차례 고향비행을 할 기회가 있었다. 남해군민의 날 화전축제 개회식에 맞추어 군민축하 비행을 하기도 하였다. 두 세바퀴 돌면서 비행소리를 내면 모두가 박종권 비행사가 왔다고 남해읍내가 시끄러웠다. 귀가 잘 안 들리시던 외조모님은 큰 비행소리에 버선 바람으로 축담을 내려서서 비행기를 쫓으며 내 이름을 부르곤 했단다.
비행고도를 낮추어 광양만을 우로 보면서 남해의 명산 망운산, 금산을 끼고 좌선회 고속으로 읍 상공을 지났다. (중략)..... 나는 자주 후배 조종사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전투조종사는 가까이는 나라를 위하여 부모형제를 위하여 가장 먼저 장렬히 죽어갈 갈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그러한 사생관을 가지고 살자."라고 설파 했었다. 고향은 나의 혼이 담긴 곳이다. 이제 고향 비행은 끝났다."
30년 가까이 전투조종사로 조국의 영공을 지켜온 박 소장은 전역을 앞두고 만 45세에 마지막 비행을 자원했다. 1시간 10분의 비행 중 그는 30여년의 전투조종사 생활을 회상했다. 비행이 끝나고 전투용 거울에 비쳐진 그의 모습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는 비행을 마치고 "나의 인생은, 나의 하늘에의 꿈은 이렇게 해서 매듭이 되었다"라고 적혀 있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