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신문왕 때에 덕(德)이 성(盛)하고 마을이 울창(鬱蒼)하다는 뜻으로 상가(上加), 덕월(德月)을 합하여 덕울촌(德鬱村)이라 불러오다가 조선 태종 때면 내에서 지주층이 많고(上) 마을 형태와 방위(方位)가 오항(午向)이며 개(浦) 위의 촌마을(浦上村閭)이므로 상가화포리(上加火浦里)라 하였다. 조선 인조 때에는 임진왜란 시 임진산성에서 병화(兵火)로써 왜군에게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상가화리(上加火里)로 불렀다고 하며 속칭으로는 상동 또는 상더울개라 하였다.
조선 고종 때 행정 구역 개편 시 상가(上加)라는 마을 이름이 확정되었으며, 1943년 남구와 북구로 분동되었음.
조선 정조, 순조 연간에 발간된 『晉州鎭管誌』나 『남해현읍지(南海縣邑誌)』에 따르면 상가와 덕월을 합하여 가화포리(加火浦里)라 하고 덕월은 아랫마을이라 하여 하가화포리(下加火浦里)라 했는데 행정구역 개편 시 앞의 두 자만 따서 상가(上加)라 하였다고 한다.
■ 상가북구(上加北區)
1943년에 상가리에서 분동되면서 북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북구라 하였다.
▶ 상가리마을의 유래
가마골(架馬-): 평지촌 북쪽에 있는 골짜기
가마골다리(가마교): 가마골에 있는 다리
가마교(架馬橋): 가마골다리
고실곡(鼓瑟峙): 남면과 서면을 구분하는 높은 고개인데, 옛날 임금과 궁녀들이 와서 춤을 추고 노래했다는 곳이다.
가비산(貴秕山): 상가리의 동쪽에 있는 산으로, 옛날 왕이 진을 쳤다고 한다.
귀비산(貴秕山): 평지촌 동북쪽에 있는 산. 비석이 있었음.
개장골: 작은 절골 옆에 있는 골
▶ 상가리마을의 유래
남구 - 상가리 남쪽에 있는 마을
내곡촌(內谷村) - 민보성 북쪽에 있는 마을
냇갓마을 - 천변촌
냇갓말 - 천변촌
노상촌(路上村) - 평지촌 북쪽에 있는 마을
다릿돌 - 평지촌 앞에 있는 돌. 돌다리가 있음
당산 - 내곡촌 앞에 있는 산. 당이 있었음
동사촌(洞舍村) - 평지촌 북쪽에 있는 마을
둔전(屯田) - 천황산(군 산천) 밑에 있는 골짜기
떡재바위 - 귀비산 중간에 있는 바위. 그 모양이 시루떡 같이 생겼으며 그것을 깨어버리면 처녀가 바람이 난다는 전설이 있다.
모린내 - 동사촌의 별명이다.
민보산성(民保山城) - 잔땡이곡에 붙은 서편 동산 위에 있는 성. 임진왜란 때 쌓은 성이라 하며 높이는 3m 가량이고 그 위에 섬돌을 놓아 총구를 낸 흔적도 있다.
물방아보 - 평지촌 북쪽에 있는 보. 물레방아가 있었음
배넘굴 - 평지촌 동쪽에 있는 산
배치(盃峙 : 잔땡이) - 상가리 남쪽에 있는 마을. 민보성 밑이 됨
북구 - 상가리 북쪽에 있는 마을
산적골 - 북구 앞에 있는 산
새튼모 - 북구 고실곡 밑에 있는 마을
설미등 - 남구회관 뒷산
상가(上加) - 상가리
상가저수지(上加貯水池) - 상가리에 있는 못
상덕천(上德川) - 상가리 위쪽에 있는 내
상동(上洞) - 상가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새미보 - 평지촌 북쪽에 있는 보. 샘이 있음
새보껄 - 평지촌 남쪽에 있는 들
새에들 - 남구와 북구 사이에 있는 들
▶ 상가리마을의 유래
새텃말 - 신기촌
손목(손항) - 평지촌 서쪽에 있는 마을
손목다리 - 손목 남쪽에 있는 다리
손항(巽項) - 손목
쇠마당 - 평지촌 북서쪽에 있는 작은 들. 소를 놓아 먹였음
시리봉 - 평지촌 서북쪽에 있는 산. 시리(시루)처럼 생겼음
신기촌(新基村 : 새텃말) - 상가리 북쪽에 있는 새로 된 마을
양마산(養馬山) - 평지촌 북쪽에 있는 산
어엉골 - 고실곡 안에 공동묘지가 있는 골
양막골 - 북구 고실곡 밑에 있는 마을 뒷편
우지막등 - 내곡촌 뒷산
유장군보 - 평지촌 남쪽에 있는 보. 유장군이 만들었다 함
작은절골 - 평지촌 동쪽에 있는 들
잔땡이 - 배티
잔땡이곡 - 상가리에서 양지부락으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길이 멀어 가다가 한잔 두잔하면서 쉬어가는 고개라는 뜻이다.
잔땡이성 - 민보산성의 별명이다.
조신산(朝臣山) - 상가리 남서쪽에 있는 높이 500m 정도의 산인데, 옛날 임금의 신하들이 살았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