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ome

문화와 역사

Home
문화와 역사
남해의 역사

조선시대

조선말기 농민항쟁

내용
조선말기 농민항쟁
출처
남해군-남해군지

상세내용

▶ 조선말기 농민항쟁

 

세도정치로 약화된 19세기 조선의 혼탁한 사회 정세의 흐름은 남해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먼저 인근 진주에서 1862년 2월에 시작한 농민항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남해군에서도 12월에 농민항쟁이 일어났다.

남해에서 일어난 5일간의 농민항쟁의 설천면, 고현면, 남해읍, 이동면, 서면, 삼동면 등에 거주하고 있는 향리, 이속들의 탐관오리 집들을 불태우고 훼손하였다. 『임술록』기록으로는 탐관오리 35집을 불태웠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주동자 명단이 없는 것으로 보아 특별히 선두에 서서 총 지휘를 한 주동자는 없고 민중의 힘으로 탐관오리들을 처결한 것 같다.

 

1) 남해의 임술농민항쟁

『임술록』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한국사료총서들 중에서 8번째로 단기 4291년(1958) 12월 20일에 발행하였다. 조선철종 13년(1862) 임술년에 일어난 농민항쟁에 관한 기록으로 내용으로는 『임술록』이 있고 「연복삼존(硯北三存) 「제주목안핵장계등록(濟州牧按覈狀啓謄錄)」 「이정청등록(이整廳謄錄)」 「삼정책(三政策)」을 수록하였다.

『입술록』에 실려 있는 남해현의 농민항쟁에 관한 기록이다.

 

● 임술록기(壬戌錄記)

 

철종 13년(1862) 12월 28일 남해현령이 상관에게 서면(書面)으로 보고한 편지이다. 남해현 백성들이 흰 수건을 노끈으로 동여매고 모둥이를 들고 뜻을 같이한 무리들이 모여서 소동을 일으켰다. 설천면 향리 박규광, 김낙현, 정대병 등의 집을 모조리 불태웠다.

22일 각 면에서 일제히 가세 합세하여 그 숫자가 가천명에 가까운지 헤아리지를 못할 정도였다. 또 고현면 향리 백성인 이민형 집을 태우고 즉시 성 아래로 들어와 퇴직한 아전 김대익, 정직모, 박의록, 박기범, 정경능, 김억조와 지방 관아에 딸려 밀단 행정실무에 종사하는 아전 김낙전, 정한유, 정시하, 김항조, 정기욱, 백성인 박성록, 김숙조, 정소사 등의 집을 불태우고 혹 파괴하였다.

23일 읍내에 창고에 가서 잠겨진 자물쇠를 두드려 파괴하고 환곡 16석을 소봉하고 향청의 세간을 모두 없애버리고 뒤에 보고할 글발과 공문서를 태워서 없애고 또 다시 곡포의 창고에 가서 잠겨진 자물쇠를 파괴하였다. 현령이 직무를 행하던 관아에서 돈이나 곡식 등의 간수와 출납을 맡아보던 관리와 군아에 딸렸던 환곡 15석을 소봉하여 창고에서 끄집어내어 어지럽게 흩어버렸다.

다시 읍성의 북을 향해서 백성 정희조, 윤철은 집을 불태우고 다시 이동면으로 방향을 돌려 향리 백성 김낙범, 김기태, 김달근, 경저리(지방관청과 중앙관청과의 연락사무를 맡아보는 향리) 김의연 등의 집을 불태웠다. 다시 용문사로 향하여 가서 여러사람이 한곳에 모였다.

24일 이동면 백성 김만일, 김필조, 또 삼동면 조유원, 조유인, 조경식 등의 집을 다시 불태우고 다시 서면으로 가서 향리 백성 정행진, 정상진 등의 집을 불태우기도 하고 훼손하였다.

26일 향리 백성인 박양순과 말단 아전인 한락진, 정삼홍, 백성인 김문조 등의 집을 불태웠다. 없애 버리기 어려운 폐단이 되는 나쁜 일을 적어서 보내 드리니 고로 소장에 기록한 글의 뜻은 위에 베낀다.

 

● 남해사람이 관청에 호소한 글(南海人의 等狀)

 

칠면 면민의 등장 속에 우리는 땔나무를 하는 시골 사람이요 말과 소에게 풀을 뜯기는 시골 사람들이니 머지 않은 옛날 불의에 이기지 못하고 분개하여 개탄하면서 기약없이 수천명이 모였습니다. 탐관오리를 쫓아낼 것을 기약하면서 약속도 없이 갑자기 뛰어나오고 일부 불을 질렀습니다. 크게 놀란 부모님을 안정된 마음으로 살펴주시고 우리들의 죄는 만 백번 죽어 아까움이 없습니다. 그리고 고을의 옳은 아전과 향리된 자는 일을 하는 자와 일을 계획하는 꾀를 내는 자이니 한 고을의 재능과 지력과 또는 용기와 담력이 뛰어나 대업을 성취할 영웅이니 읍을 받들면 뛰어나게 굳셀 것입니다. 우리들 중 낫을 가지고 있는 자는 무기를 가지고 있는 자 이라고 하나 산에 오르면 나무를 하는 사람이요, 들에 나가면 농사꾼이면서 즐거웁게 일의 되어가는 형편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일찍이 기록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바른 도리를 다루어 다만 주, 부, 군, 현이 일어나 물건을 이리저리 만들거나 꾸미는 때를 아는 것으로 여러 가지의 공공의 재물을 다른 고을에 아무 생각 없이 덮어놓고 찬성하며, 함께 어울림은 대체로 보아 지방의 관원이 비싼 자기 고을의 환곡을 팔고 시가가 싼 다른 고을의 곡식을 사서 그 양을 채운 뒤에 남는 돈을 사사로이 차지하던 가출 시킨자와 그 아전은 백성의 고난의 길이요 또한 백성의 서리와 눈입니다. 안전에 엎드려 비오니 깊이 생각하여 호랑이(탐관오리)를 잡고 일부러 불을 놓은 죄는 생사에 관해서 윗사람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 일을 감당하여 처리한 것은 땔나무하는 아이의 무지의 무리의 소치이니 다시 어질고 온순하게 사는 곳에서 편히 지내는 땅에서 착한 일을 많이 하도록 처리하여 다루어 주소서」

 

● 깃발에 쓴 기문(亂民의 旗文)

 

하늘의 고마운 은혜로 불같이 벌때같이 일어났다. 섬의 백성이 사나운 호랑이를 잡는 것은 하늘의 도리이니 매우 밝은 것이다. 맑게 갠 날은 불타 버리고 수놓은 옷과 오래 살수 있는 음식물은 사람들이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권력에 관계 있는 자에게 주는 재물이었다.

성 아래에 타 죽어 가는 천한 백성을 구할 수가 없구나. 안으로는 선량한 도움이 없이 놀라워 불에 타서 없어지네. 주, 부, 군, 현의 일이나 물건을 만들거나 꾸미는 데에 백성들의 원통함을  쌓았고 시가가 비싼 자기 고을의 환곡을 팔고 시가가 싼 다른 고을의 곡식을 사서 그 양을 채운 뒤에 그 남는 돈을 사사로이 차지하는 지방 관리들의 가출은 어지러운 재난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백성의 마음 속에 원통함을 쌓고 모든 사람의 기거 동작에 마음속 깊이 원통함을 쌓았도다. 유교의 교리에 실려 있는 것을 다하지 못했구나.

분노한 남해농민들이 아전들의 집을 불태우고 훼손한 것으로 보아 탐관오리들의 만행이 얼마나 컸는가를 알 수 있다. 탐관오리들은 재산 착취와 인격적인 모독까지 당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간혹 아전이 아닌 백성들의 이름도 거명이 되는데 이것 또한 잇속이나 아전에 빌붙어 살면서 아부한 백성들이거나 상인들로 추정된다. 남해에서도 전국과 마찬가지로 성난 파도의 물결이 세상을 어지럽힌 관료들을 처벌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