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조선시대
임진왜란 최후 최대 전투 노량해전
상세내용
▶ 임진왜란 최후 최대 전투 노량해전
(1)노량해전에 참전한 조·명연합군 및 일본군 장수
○ 조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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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수군통제사 : 이순신(전사) |
경상우도수사 : 이순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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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현감 : 유형 |
가리포첨사 : 이영남(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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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군수 : 방덕룡(전사) |
홍양현감 : 고득장(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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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부사 : 우치적 |
안골포만호 : 우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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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포만호 : 조효열 |
진도군수 : 선의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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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만호 : 김성옥 |
강진현감 : 송상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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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첨사 : 이섬 |
제포만호 : 주의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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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포만호 : 소수남 |
군관 : 송희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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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관 : 이언량(전사) |
경상우도조방장 : 배홍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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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도만호 : 이정표 |
당포만호 : 안이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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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라포만호 : 정공청 |
미조항첨사 : 김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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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부사 : 전봉 |
수병 : 약 8천명 / 함선80척 |
○ 명나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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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독 : 진린 |
부총병 : 등자룡(전사) |
참장 : 왕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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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총병 : 진잠 |
유격장 : 허국위 |
유격장 : 계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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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장 : 심무 |
유격장 : 복일승 |
유격장 : 양천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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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장 : 마문환 |
유격장 : 장량상 |
파총 : 이천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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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총 : 심리 |
중군 : 도명재(전사) |
수병 : 약 1만 3천명 / 함선 : 3백척 |
○ 일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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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즈 요시히로 : 8천명 |
다치하나 무네하라 : 2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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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하시 무네마스 : 6백명 |
데라자와 마사나리 : 8백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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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시토시 : 1천명 |
병력 : 약 1만 2천명 / 함선 : 약 5백척 |
▶ 노량해전 전황
11월 19일 새벽 2시 무렵 창선도 앞바다에서 재편성된 500척의 전선에 1만 2천여명의 정예군사로 무장한 일본 함대가 암흑을 뚫고 서서히 노량해협으로 접근하여 오기 시작했다. 조명연합 전선에서는 이미 각오를 하고 있었고 방어래를 입에 물고 있는 군사들은 숨을 죽이고 일본군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일본 지원 전선이 노량 가까이 접근하자 섬에 복병하고 있던 군사들은 일제히 왜선에 불붙은 섶과 나무를 마구 던지고 화살을 섞어 쏘아대니 왜선은 불에 타기 시작하였다. 일본전선도 섬을 향하여 일제히 조총을 쏘면 반항하면서 속도를 높인다. 죽도 부근에서 기다리고 있던 진린 함대는 도독기를 높이 올리고 북을 치면서 진격의 명령을 내렸고 이순신 함대 역시 북을 치면서 나팔을 불며 먼저 적함대의 중앙을 향해 돌파하여 들어갔다.
왜선에 꽂히는 대장군전과 단석들, 혼비백산하는 왜군들, 일제히 화살을 쏘는 사수들, 방패로 활살을 막는 왜군들, 일제히 불화살을 쏘는 조선 수군들, 가마니로 갑판 등에 붙은 불성 등 무기 발사 소리와 수군들의 아우성, 함성소리로 하늘과 바다를 뒤덮었다.
전투 상황을 세밀하게 기록한 신흠의 상촌집과 조경남의 난중잡록, 이분의 이충무공전서행록 중 노량해전 부분을 인용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申欽(인조 때의 영의정, 1566~1628) 象村集 卷 56.
···적이 이순신의 배를 몇 겹으로 에워싸자 도독이 우리나라 배에 바꿔 탄 뒤 포위망을 뚫고 곧바로 들어와 구원하였다. 적이 또 도독의 배를 포위하였는데, 두 명의 왜적이 뱃머리로 뛰어오르자 중국군이 삼지창으로 가슴을 찔러 바다에 떨어뜨렸다. 적선이 고기비늘처럼 도독의 배 아래로 모여들자 도독이 닻을 내려 배를 멈추게 하였으며 왕원주와 복일승 두 장수 역시 우리나라 배로 갈아탄 뒤 도독의 배를 가운데에 두고 보호하였다. 도독이 군사들로 하여금 함성을 지르고 대포를 쏘게 하자 적들도 위를 쳐다보고 조총을 쏘아대었다. 이때 도독이 군사들에게 영을 내려 방패에 의지하고 엎드려 있게 하였는데, 적들이 이를 보고는 한꺼번에 칼을 빼들고 배 위로 올라오자 중국군이 장창을 가지고 낮은 자세에서 찔러대니 물에 떨어져 죽은 왜적의 숫자가 천을 헤아렸다. 여러 장수들도 죽을힘을 다 내어 육박전을 벌였다. 얼마 뒤에 도독이 쇠 방울을 흔들어 군사를 거두었는데, 배 안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조용해지자 적이 의심하여 조금 퇴각하였다. 이에 중국군이 높은 위치를 이용하여 분통을 적선에 흩뿌리니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에 불길이 맹렬히 타오르면서 적선 수백 척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하고 온 바다가 붉게 물들었다. 이순신이 멀리서 도돍이 포위된 것을 보고는 역시 포위망을 뚫고 진격하면서 힘을 합쳐 혈전을 벌였다. 등자룡의 배 안에서 불길이 치솟자 군사들이 불을 피하느라 소란해진 틈을 타서 적이 자룡을 죽이고 그 배를 불태웠다. 우리나라 경상수사 이순신(李純信)의 선봉선도 적선 10여 척을 불태웠다. 매우 높다랗고 위에 붉은 휘장을 친 적선 한 척에서 황금 갑옷을 입은 세 사람이 전투를 독려하고 있었는데, 이순신이 군사를 집결시켜 집중 공격을 퍼부으며 황금 갑옷 입은 한 사람을 쏘아 맞히자 적선들이 도독은 놔두고 그 배를 구원하러 갔으므로 도독의 군사가 이 때문에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에 순신의 여러 부대와 세력을 합쳐 호준포를 쏘아 그 배를 산산조각내자 나머지 적들이 혼비백산하였는데, 그 결과 거의 모든 배를 불태워버릴 수 있었다.···
趙慶男(의병장, 1569~1641) 亂中雜錄3.
···한번 바라소리가 울리니 포 소리와 북소리가 겸하여 진동하고 아군과 명군 양군이 돌발하여 좌우에서 엄습하니 살과 돌이 섞여 떨어지고, 섶에 붙은 불을 마구 던지니 허다한 왜선이 태반이나 연소되었다. 적병은 목숨을 걸고 혈전하였으나 형세가 지탱할 수 없어 바로 물러가 관음포로 들어가니 날이 이미 밝았다. 이순신이 친히 북채를 잡고 먼저 올라가 추격하며 죽이는데 적의 포병이 배 꼬리에 엎드렸다가 이순신을 향하여 일제히 쏘아 이순신은 총알에 맞고 인사불성이 되었다. 급히 장좌에게 명하여 방패로 신체를 지탱하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비밀로 하여 발상하지 못하게 하였다.···
李芬(이순신 조카. 1565~1628) 行錄, 李忠武公全書 卷9.
···19일 새벽에 공이 한창 독전하다가 문득 지나가는 탄환에 맞았다.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단말을 내지마라" 공은 말을 마치고 세상을 떠났다. 때에 공의 맏아들 회와 조카 완이 활을 쥐고 곁에섰다가 울음을 참고 서로 하는 말이 "이렇게 되다니! 기가 막히는구나" "그렇지만 지금 만일 곡성을 내었다가는 온 군중이 놀라고 적들이 또 기세를 얻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 그리고 또 시체를 보전해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습니다. 전쟁이 끝나기까지 참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서는 곧 시체를 안고 방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오직 공을 모시고 있던 종 금이와 회와 완 등 세 사람만이 알았을 뿐 비록 친히 믿던 부하 송희립 등도 알지 못했었다.···
어둠 속을 가르는 불화살이 검은 밤하늘을 가르자 조용했던 바다가 불꽃으로 수를 놓았고 화포의 포환은 곡선을 그리며 일본 함대를 명중하고 바다 깊숙이 빠져 들었다.
이에 뒤질세라 일본군의 조총이 불을 뿜고 판옥선으로 날아들었고 조선함대와 일본함대 사이에 흐르는 파도 위로 불길이 수없이 오갔다. 비킬 수 없는 좁은 해협에 아군과 적군을 분별할 수 없도록 들어선 함대는 서로 응사하면서 날카롭고 숨 막히는 접전이 계속되었다.
근접전을 예상했던 조명연합 함대는 불붙은 섶과 나무를 전선에 마구 던지고 불화살로 적선을 맞히니 화염에 싸인 적선 군사들의 비명소리는 관음포의 겨울 바다를 갈라놓았고 솟구쳐 오르는 붉은 피는 밤하늘을 덮었다.
일본 함대와 접전 초기에 등자룡은 일본 함대의 진로를 차단하자 일본군은 선제공격으로 등자룡 함대를 제압하려 하였으며, 그 기세를 몰아 진린 대장선으로 포위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그 위기를 이순신 함대가 지원하여 진린 대장선을 위험에서 구출한 후 일본 함대를 닥치는 대로 격침하니 전세는 역전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종전에 접어들었고 승패의 가름이 판단되는데 조명연합 함대의 승기로 기울고 있었다. 기세등등하던 일본군의 사기가 떨어지고 때맞춰 물때가 바뀌어 썰물에서 밑물로 바뀌면서 노량에서 여수방향으로 흐르던 물이 방향을 바꾸어 여수에서 노량 방향으로 일기 시작하자 이 파도를 등에 업은 조명연합 함대는 일본 전선을 관음포구 안으로 밀어 붙이면서 맹공을 가했다. 모든 것이 역부족인 일본 전선의 진열은 흩어지기 시작했다.
때를 놓칠세라 이순신 함대에서는 지자포, 현자포, 등화포 등으로 공격하였고 진린 함대에서는 호준포, 위원포, 불랑기포 등위 우수한 화기로 수백 발을 장대비와 같이 일본 전선에 날려 일본 함대를 격파하니 엄청난 화력에 압동당한 일본 함대는 선수를 돌릴 새도 없이 부서지고 불에 타오르며 관음포 깊숙이 도망치면서 저항을 하지만 이미 전세는 기울어지고 있었다. 좌우 살수들은 쉴 사이 없이 화살을 빗발처럼 쏘아 맞히니 왜적들은 당황하여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전선 역시 행로를 찾지 못하고 사기가 저하된 왜군 전선은 우왕좌왕 했다. 이러한 전세에 힘입은 조명연합 전선은 왜선들을 집중 사격하면서 분통과 섶에 불을 붙여 적선에 마구 던지니 수백 척이 잿더미로 변하고 적선에서는 불길이 검은 하늘로 치솟았으며 피가 바다를 불게 물들었다.
일본전선 지휘부는 승산이 없음을 판단하고 후퇴할 길을 찾았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퇴로를 찾았던 길은 관음포 내항이었고 관음포 내항은 밀물 때 물길로 깊숙이 들어가 있었을 뿐 아니라 포구를 벗어나지 못하게끔 조명연합군이 봉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량해전은 일본의 조총 사정거리에서 벗어나 일정한 거리에서 함포사격을 할 처지가 못 되었기에 아군의 손실도 감안해야 할 처지였지만 근접해서 화공으로 적선을 공격하니 일본 함대는 크게 불리한 상황에 놓였다.
화공전술에 큰 타격을 입은 일본군은 퇴로를 찾은 곳이 관음포였고 밀물의 조수에 의해 밀려 포구 내로 밀려들었다. 날이 밝아오자 퇴로를 찾은 곳이 포구 안이라는 것을 알았고 관음포가 강진만과 연결되지 않고 막힌 것을 아렉 된 일본군의 전선은 갯벌에 앉았고 암초에 걸렸다.
도망가는 일본 전선들은 서로 뒤엉키면서 서로의 뱃머리가 부딪혔지만 더 나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패잔병들은 앞을 다투어 전선을 버리고, 살아 있는 일부 병력들은 남해 섬으로 상륙하여 도주하게 되었으며 마치 도망하지 못한 나머지 전선은 죽기를 각오하고 해전에 임하니 전투는 더욱 격력하였다.
사생결단으로 달려드는 일본군과 한 명의 침략자도 놓치지 않겠다는 조선수군과의 일대 결전이었다. 관음포 바다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시체가 쌓이기 시작하였고 피가 바다를 붉게 물들였다. 이순신의 북소리가 바다를 울릴 때 마다 일본군은 불에 타 죽거나 바다에 빠져 죽었다. 일본군은 북소리에 묻혀 날아오는 조선의 포탄과 화살에 전율했다. 앞장서 추격하던 송희립이 적의 총환에 맞아 쓰러졌다. 이순신은 전군에 더욱 분발하라는 북소리를 울렸다.
이러한 격전으로 왜군은 패전을 시인하고 동망치기 시작하는데 아직 날이 밝지 않은지라 조류 흐름에 따라 도망을 갔다. 왜군은 계속 저항하면서 도주하지만 이순신은 이미 지형과 물때를 모두 분석하고 있었기에 적을 섬멸하는 것은 정해진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계속 독전하였다.
독전 중 해는 중천에 솟아올랐고 이순신은 선두에 서서 추격을 감행하니 해남현감 유형, 당진포 만호 조효열, 진도군수 선의경, 사도만호 김성록의 배들도 뒤따랐다. 여러 전선에서 지자, 승자, 지자 각종 총퉁을 일시에 집중 사격하니 적들은 진퇴유곡에 빠지게 되었고 마지막 저항을 하였다.
이순신 휘하 부하 중 훈련원 판관 김덕방(金德邦)은 가장 선봉에서 싸워 적선 수십 척을 쳐부수었으며 이충실(李忠實), 정응(鄭鷹) 등은 부상을 입은 가운데서도 끝까지 싸우다 전사하였다. 당시 전황과 이순신 순국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록된 안방준의 은봉전서를 보자.
安邦俊(의병장, 1573~1654) 隱鋒全書 卷7 露梁記事.
이때 왜적의 포가 일시에 모두 쏘아졌다. 그리하여 맨 앞서 나갔던 배에서는 군인들이 많이 죽었으며, 마침내 바다 가운데서 싸움이 붙었다.
군인들은 모두 힘을 다하여 싸웠고, 이에 왜적들이 흔들렸다. 도독 역시 힘써 싸웠고, 풍뢰처럼 명령을 내렸다. 이때 왜적들이 명나라 전선이 있는 곳으로 모여들어 도독이 포위를 당했다. 공이 힘을 다해 포위를 풀어주고 구해냈다. 송희립과 배 위의 장졸들을 모두 죽을힘을 다해 싸웠으며, 한발의 화살도 헛되이 쏘지 않았다. 왜적들은 수없이 죽었다. 왜적들은 흩어졌다가 다시 모였다. 송희립이 있는 곳을 알아차리고 탄환을 장전했다가 일제히 쏘았다. 탄환이 갑옷과 투구에 적중하여 이마 뼈를 스쳤다. 희립은 바다에 쓰러져 거의 죽게 되었다.
좌우에 있는 사람들이 공에게 "송희립이 탄환에 맞았다"고 하자, 공이 크게 놀라 일어섰는데, 이때 탄환에 겨드랑이 밑을 맞았다. 배 위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두려워하며 "사또가 탄환에 맞았다."라고 소리쳤다. 희립이 이 말을 듣고 곧 일어나 앉았는데, 다행히 이마만 깨지고 뇌는 다치지 아니하였다. 이 사나운 기운으로 해서 얼굴에 피가 흐르고 옷 앞자락이 축축해졌다. 이에 옷을 찢어서 이마를 싸매고 곧바로 장군의 자리에 올라가 보니 공은 이미 숨이 끊어졌고 아들 화가 울고 있었다. 희립이 장좌 몇 사람으로 하여금 붙들게 하고 입을 막아 울음을 그치게 하였다.
공의 갑옷과 투구를 벗기고 붉은 모전으로 주검을 싸고, 또 다시 뜸(草芼)으로 쌌다. 희립은 공의 갑옷과 투구를 입고 뜸 위에 가리고 앉아서 대신 깃발과 북을 잡고 더욱 급히 싸움을 독촉했다.···
▶ 조·명 수군 중 두드러지게 활약한 장령들
흥양현감 고득장(興陽縣監 高得蔣)
군사를 이끌고 급히 적선에 뛰어 들어가 군과 어언량과 서로 다투어 뱃간의 여러 곳을 뒤지며 적을 죽이다가 모두 난투 끝에 전사했다.
낙안군수 방덕룡(樂安郡守 方德龍)
용력 있는 인재로서 삼지창을 옆에 적선에 뛰어 올라 하나, 둘 죽이니 아군병사들은 용기 백배하여 서로 힘을 합하면서 닥치는 대로 머리도 찍고, 다리도 찍고, 허리도 찍었던 바 유혈이 튕겨서 서로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되었다. 방덕룡은 가슴을 상하여 적선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군관 송희립(軍官 宋希立)
통제사 이순신과 같은 기함에 올라 독전하던 중 이마에 적탄을 맞고 기절하였다.
안골포 만호 우수(安骨浦萬戶 禹壽), 사도첨사 이섬(蛇渡僉使 李暹)
서로 신호하며 두 배를 같이 몰아 적선 양편에서 동시에 총통을 쏘고 화포를 쏘았으며 적의 배에 뛰어오르려고 할 때에 적의 배에서 크게 불이 일어난 탄약이 폭발하므로 이순신의 배 가까이 가게 되었다.
순천부사 우치적(順天府使 禹致績)
적장 한 사람이 적선 루에서 큰 활을 위어잡고 높이 앉아 독전하는 것을 쏘아 죽였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三道水軍統制使 李舜臣)
이순신은 적의 배를 쫓아 적 함열 깊숙이 돌진하자 적선이 좌우에서 쳐 들어와 포위하려 하였으나 진린의 배가 급히 달려와서 대포와 활로써 적을 물리쳤는데 일천여척 함선의 닻이 서로 얽혀서 포성과 파도 소리와 함선을 태우는 불길이 공증에 높이 치솟아 하늘의 검은 구름과 맞닿았다. 총 지휘선인 판옥선 함교에서 독전하면서 직접 북을 치며 수군들의 사기를 복돋우니 수군들의 사기가 하늘을 치솟았다.
경상우수사 이순신(慶尙右水使 李純信)
적선 10척을 불 태웠다.
가리포첨사 이영남(加里浦僉使 李英男)
함대를 급히 몰아 화통을 수없이 쏘게 하니 적의 함선은 불길이 높고 검은 연기는 하늘로 높이 치솟았으며 이영남은 적의 함상에 뛰어 올라가 검을 빼어들고 일검으로 삼적을 베어 죽였으며, 적의 창을 빼앗아 일창으로 5적을 찔러 죽이다가 유탄에 맞아 쓰러지게 되자 그의 군사들이 침몰 직전에 적의 함상에서 겨우 이영남을 구해 낼 수 있었다.
유격장 계금(遊擊將 季金)
왜교성에서 부상한 왼 팔을 동여 맨 채 오른손에 칼을 들고 적 7명을 사살하였다.
부총병 등자룡(副總兵 鄧子龍)
70세의 노장으로 명나라 강서 사람인데 가정 2백여 명을 거느리고 우리나라 함선에 옮겨 탄 뒤 좌우로 충돌하고 전후로 포격하여 수없이 적을 죽였다. 전투 중에 뒷배에서 쏜 명나라 포탄이 잘못 맞아 승함에 불이나기 시작하였으나 불을 피하면서 싸웠다. 이때 적병이 함상에 뛰어 올라와 창과 검으로 백병전을 벌인 끝에 등자룡은 전사하고 배는 불타 버렸다.
파총 심리(把總 沈理)
급히 나아가 등자룡의 배를 구하니 적은 많은 시체를 남긴 채 불 속에서 죽고 바다 속에서 헤엄을 치는가 하면 갑판 위에서 앉아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면서 합장 배례하는 자도 있었다.
도독 진린(都督 陳璘)
적병 두 사람이 진린의 배에 뛰어들어 위급하게 되자 그의 아들인 구경이 몸으로 적의 칼을 막아 선혈이 낭자한데 구경은 더욱 혼전하였다. 기고관(旗故官)인 문위가 급히 달려들어 적을 모조리 창으로 찔러 죽였다.
부총병 진잠(副總兵 陳蠶)
통제사 이순신과 같이 진린의 배를 호위하면서 진격하여 호준포와 위원포를 함께 쏘아대며 용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