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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속 남해현

내용
1832년경 편찬된 경상도 도지(道誌)이다. 경상도 71개 고을의 읍지(邑誌)를 20책에 수록
출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상세내용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정의 : 1832년(순조32)경 편찬된 경상도 도지(道誌)

원자료 제목 : 표제_ 邑誌 慶尙道

목차

001책

[大邱府地圖]. 大邱府邑誌

002책

[慶州府地圖], [慶州府地圖], 慶州府邑誌

003책

[安東府地圖], 安東府邑誌

004책

[晋州牧地圖], 晋州牧邑誌, [星州牧地圖], 星州牧邑誌

005책

[靑松府地圖], 靑松府邑誌, [東萊府地圖], 東萊府邑誌

006책

[昌原府地圖], 昌原府邑誌, [尙州牧地圖], 尙州牧邑誌

007책

[咸陽郡地圖], 咸陽郡邑誌, [永川郡地圖], 永川郡邑誌

008책

金山地圖, 金山邑誌, 義城地圖, 義城縣誌, 盈德地圖, 盈德邑誌, 固城地圖, 固城邑誌

009책

善山地圖, 善山府邑誌, 仁同地圖, 仁同府邑誌, 㓒谷地圖, 㓒谷府邑誌, 河東地 圖, 河東府邑誌 

010책

[蔚山府地圖], 蔚山府邑誌, [金海府地圖], 金海府邑誌, [寧海府地圖], 寧海府邑誌 , [密陽府地圖], 密陽府邑誌

011책

[巨濟府地圖], 巨濟府邑誌, [居昌府地圖], 居昌府邑誌, [淸道郡地圖], 淸道郡邑誌, [草溪郡地圖], 草溪郡邑誌

012책

[慶山縣地圖], 慶山縣邑誌, [南海縣地圖], 南海縣邑誌, [順興縣地圖], 順興縣邑誌, [開寧縣地圖], 開寧縣邑誌

013책

[禮安縣地圖], 禮安縣邑誌, [迎日縣地圖], 迎日縣邑誌, [長鬐縣地圖], 長鬐縣邑誌, [靈山縣地圖], 靈山縣邑誌

014책

[醴泉郡地圖], 醴泉郡邑誌, [榮川郡地圖], 榮川郡邑誌, [興海郡地圖], 興海郡邑誌, [豊基郡地圖], 豊基郡邑誌

015책

[梁山郡地圖], 梁山郡邑誌, [咸安郡地圖], 咸安郡邑誌, [昆陽郡地圖], 昆陽郡邑誌, [陜川郡地圖], 陜川郡邑誌

016책

[慈仁縣地圖], 慈仁縣邑誌, [英陽縣地圖], 英陽縣邑誌, [㓒原縣地圖], 㓒原縣邑誌, [聞慶縣地圖], 聞慶縣邑誌, [安義縣地圖], 安義縣邑誌

017책

[鎭海縣地圖], 鎭海縣邑誌, [眞寶縣地圖], 眞寶縣邑誌, [咸昌縣地圖], 咸昌縣邑誌, [知禮縣地圖], 知禮縣邑誌, [高靈縣地圖], 高靈縣邑誌

018책

[玄風縣地圖], 玄風縣邑誌, [山淸縣地圖], 山淸縣邑誌, [丹城縣地圖], 丹城縣邑誌, [軍威縣地圖], 軍威縣邑誌, [義興縣地圖], 義興縣邑誌, [新寧縣地圖], 新寧縣邑誌

019책

[昌寧縣地圖], 昌寧縣邑誌, [泗川縣地圖], 泗川縣邑誌, [機張縣地圖], 機張縣邑誌, [三嘉縣地圖], 三嘉縣邑誌, [比安縣地圖], 比安縣邑誌, [熊川縣地圖], 熊川縣邑誌

020책

[宜寧縣地圖], 宜寧縣邑誌, [河陽縣地圖], 河陽縣邑誌, [龍宮縣地圖], 龍宮縣邑誌, [奉化縣地圖]. 奉化縣邑誌, [淸河縣地圖], 淸河縣邑誌, [彦陽縣地圖], 彦陽縣邑誌

 

내용 및 특징 : 1832년경 편찬된 경상도 도지(道誌)이다. 경상도 71개 고을의 읍지(邑誌)를 20책에 수록하였다. 편찬 시기는 서문이나 발문이 없어 본문 내용에서 추정할 수밖에 없다. 호구(戶口)와 전부(田賦) 항목이 신묘(辛卯, 1831)년을 기준으로 하였으며 환적(宦蹟) 항목에 마지막으로 기록된 인물의 이·부임 시기가 1832년을 넘지 않고, 인물 항목의 기사도 1832년을 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편찬 시기는 1832년경으로 추정된다. 다만 8책에 수록된「김산읍지」,「의성현지」,「영덕읍지」,「고성읍지」는 1871년에 편찬된 『영남읍지』에서 해당 지역 읍지를 전사하고 지도를 새로 그려 넣어 제책한 것이다. 그 가운데「김산읍지」는 항목, 기술 방식, 호구의 신묘식, 환적 기사 등으로 미루어 보아, 본 『경상도읍지』 편찬 때 만들어진 읍지를 1871년 『영남읍지』에 수록하였다가 다시 이 책에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

 

책의 편찬은 개별 읍지의 항목이 통일되어 있고, 내용의 기술 방식도 일정하여 경상도 감영 차원에서 처음부터 관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각 책의 장정, 판식사항, 채색 지도의 색채 등으로 보아 최종적으로 감영에서 일괄 필사하여 제책한 것으로 판단된다. 본 『경상도읍지』가 전국지리지 편찬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도지인지, 도에서 독자적으로 편찬한 도지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재 같은 형태의 다른 지역 도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필사본이며, 각 고을 읍지마다 맨 앞에 채색지도를 실어 72140면의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책의 구성은, 1책: 대구부, 2책: 경주부, 3책: 안동부, 4책: 진주목·성주목, 5책: 청송부·동래부, 6책: 창원부·상주목, 7책: 함양군·영천군, 8책: 김산군·의성현·영덕현·고성, 9책: 선산부·인동부·칠곡부·하동부, 10책: 울산부·김해부·영해부·밀양부, 11책: 거제부·거창부·청도군·초계군, 12: 경산현·남해현·순흥현·개령현, 13책: 예안현·영일현·장기현·영산현, 14책: 예천군·영천군·흥해군·풍기군, 15책: 양산군·함안군·곤양군·합천군, 16책: 자인현·영양현·칠원현·문경현·안의현, 17책: 진해현·진보현·함창현·지례현·고령현, 18책: 현풍현·산청현·단성현·군위현·의흥현·신녕현, 19책: 창녕현·사천현·기장현·삼가현·비안현·웅천현, 20책: 의령현·하양현·용궁현·봉화현·청하현·언양현의 읍지 순으로 되었다.

 

당시 경상도는 유수부 1(경주), 대도호부 2(안동, 창원), 목 3(상주, 진주, 성주), 도호부 13(대구, 김해 등), 군 13(합천, 초계 등), 현 39(영덕, 경상 등 현령 파견 현5, 순흥현 등 현감 파견 현 34)로 되어 있었다. 읍지 수록 순서는 고을 등급 순서일 것이므로, 본래는 감영이 있는 대구부를 맨 앞에 두고 이어서 경주부, 안동부, 창원부, 상주목의 순서로 수록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본래 책 순서는 1책(대구부), 2책(경주부), 3책(안동부), 6책(창원부, 상주목), 4책(진주목, 성주목), 10책(도호부 시작), 5책, 9책, 11책(청도군부터 군 시작), 7책, 14책, 15책, 8책(의성현부터 현령 현 시작), 12책(순흥현부터 현감현 시작), 13책, 16책, 17책, 18책, 19책, 20책 순일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의 책 번호는 청구기호의 내별 번호로서 청구기호 부여 과정에서 매겨졌다.

 

각 읍지의 항목 구성은 지도(地圖),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관직(官職), 성씨(姓氏), 산천(山川), 풍속(風俗), 방리(坊里), 호구(戶口), 전부(田賦), 군액(軍額), 성지(城池), 임수(林藪), 창고(倉庫), 군기(軍器), 학교(學校), 관방(關防), 진보(鎭堡), 봉수(烽燧), 단묘(壇廟), 능묘(陵墓), 불우(佛宇), 공해(公廨), 누정(樓亭), 도로(道路), 교량(橋梁), 도서(島嶼), 제언(堤堰), 장시(場市), 역원(驛院), 목장(牧場), 형승(形勝), 고적(古蹟), 토산(土産), 진공(進貢), 봉름(俸廩), 환적(宦蹟), 과거(科擧), 인물(人物), 제영(題詠), 비판(碑板), 책판(冊板)으로 되어 있다. 항목이 모든 읍지에 통일적으로 적용되었으며, 기술 방식도 대체로 일정하다. 일부 항목에서 약간의 넘나듦이 보이는데, 능묘를 총묘(塚墓)로, 공해를 궁실(宮室)로 하거나 궁실과 공해 두 항목을 다 두거나, 책판을 독립 항목으로 하지 않고 비판 말미에 첨부하는 등의 예가 보인다.

 

본『경상도읍지』항목을 1760년경 편찬된 『여지도서』 항목과 비교해 보면, 임수, 군기, 장시, 환적, 과거, 비판, 책판 항목이 새로 생겼다. 그리고『여지도서』에서는 산천 항목에 기록하였던 도서를 독립항목으로 만들었고,『여지도서』에서는 몇몇 고을에만 보였던 총묘 항목을 대부분 기재하였다.『여지도서』에 있던 명환(名宦) 항목은 수령 전체 명단을 실은 환적 항목을 둠으로써 없앴다. 또『여지도서』에서는 수전(水田)·한전(旱田), 전세, 대동, 균세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던 항목을 전부(田賦) 항목으로 몰아서 기록하였으며, 전부 항목 안에 요역(徭役)에 대한 기사도 덧붙였다. 독립 항목이었던 조적(糶糴)을 창고 항목에 부기하였다. 새롭게 전부 항목에 부기된 요역 기사나 새로이 등장한 군기·장시·환적·과거·책판 등의 항목은 18세기 말(정조 말년) 편찬 작업이 이루어졌던 『해동여지통재』 계열 읍지의 장시·요역·군기·선생안·과환(科宦)·책판 항목의 성과를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

 

각 항목 기술 내용의 특징을「대구부읍지」를 중심으로 살펴보자.「대구부읍지」는 맨 앞에 1장 2면의 채색지도를 실었다. 다른 고을도 대부분 마찬가지이나 경주부는 2장 4면의 지도를 실었고, 결책이었다가 보충한 8책의 읍지들은 모두 1장 1면의 지도를 실었다. 지도 제작이 한 사람의 솜씨인 것처럼 색채 등 표현 방식이 통일되어 있는데, 8책의 지도는 표현방식이 다르다. 대구부 지도는 읍성공간을 중심에 배치하고, 성곽 안 공간, 낙동강의 물길, 팔공산 등의 산세를 채색으로 표현하고, 읍성의 각 문으로부터 뻗어나간 도로를 그렸다. 또 방리(坊里) 이름, 사계(四界)를 기록하였으며, 성안의 공해, 향교, 창고, 사찰, 서원 등의 건물을 표시하였다. 성안의 공해로는 감영(監營), 본관(本官), 중영(中營), 진영(鎭營)이 나타나 있다.

 

「대구부읍지」는 건치연혁 항목에서는 대구부 연혁만을 기록하고, 관직 항목에서 감영 설치 연혁을 기록하였다. 대구는 대구현, 대구군을 거쳐 세조때 도호부로 승격하였다. 경상감영은 좌우도 분도 때에는 경주와 상주에 각각 감영이 설치되었다. 1596년(선조29)에야 대구를 감영으로 정하였으며, 이후 변동을 보이다가 1661년(현종2)에 다시 대구로 감영을 옮겨 감사가 유영(留營)하였다.

 

대구부의 관직 항목에는 감사겸부사(監司兼府使), 판관(判官), 도사(都事), 영장(營將)의 총 4명의 관원을 기록하였다. 대부분의 고을은 “관직: 현감(음 종6품, 좌수 1인, 별감 2인, 군관 3인, 인리 30인, 지인 21인, 사령 20명, 관노 16구, 관비 19구 -고령현 관직 항목-)” 같이 수령의 출사로(문과, 무과, 음사)와 품계를 밝히고, 예하의 향임과 관속 숫자를 같이 기록하였다. 고령현 관직 항목에 의하면 고령은 음사(蔭仕) 출신의 종 6품의 현감이 제수되던 고을이었다.

 

성씨 항목은『여지도서』와 마찬가지로 대구부 본부(本府)의 성씨와 속현이었던 하빈현, 화원현 등의 성씨를 구별하고 다시 ‘내(來)’, ‘속(續)’ 등의 세주를 달았다. 방리 항목은 각 면 아래 동리명까지 밝혔다. 다른 고을은 면명만 밝힌 곳도 있고 대구와 마찬가지로 동리명까지 밝힌 곳도 있다. 대구는 호구 항목에서 신묘년(1831)을 기준으로 하여 원호(元戶)와 인구, 남, 여 숫자를 밝혔다. 다른 고을도 대부분 신묘년 기준으로 호구를 기록하였다.

 

전부(田賦) 항목은 토지 결수 정보와 조세 정보를 같이 기록하였다. 토지는 한전과 수전으로 나누어 각각 양전에 등록된 결수와 현재 경작 결수를 밝혔다. 이 역시 경작 결수 파악의 기준 시점이 신묘년(1831)이다. 조세정보는 전세와 대동, 균세(均稅), 요역(徭役)으로 나누어 기록하고, 그 안에서 다시 세부 명목별로 수량을 밝혔다. 산청현은 전부 항목에서 “전세는 신묘(1831) 실결로 마련하여 임진(1832) 봄에 상납하다.”라고 하여 전세 부과 기준년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붙였다. 바닷가 고을에서는 염부(鹽釜)·곽(藿)·방렴(防簾)·어장(漁場) 세전(稅錢) 등, 전결세가 아닌 균세도 전부 항목에서 기록하였다.

 

군액 항목은 먼저 총 숫자를 적고 이어서 경안부(京案付), 외안부(外案付)의 각 명목과 숫자를 기록하였다. 경안부에는 훈련도감을 비롯한 군영과, 병조 소속군 등을 기록하고 외안부에는 감영, 통영, 병영, 대구진(중영장 진), 좌수영, 본부(대구부) 등의 소속군을 기록하였다. 마지막에 상납 군포전 액수를 기록하였다. 다른 고을도 비슷한 기재 양식을 보이나 마지막의 상납 군포전 액수는 대부분 기록하지 않았다.

 

성지(城池) 항목은 달성(達城)과 부성(府城)의 위치, 둘레, 높이, 우물, 문루 등을 기록하였다. 다른 읍지들도 소재한 읍성, 산성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였다. 임수(林藪) 항목은 신천수(新川藪)와 칠성암수(七星巖藪)의 두 숲의 위치, 유래 등을 기록하였다. 임수는 본『경상도읍지』에서 새로 선 보인 항목으로서, 모든 고을에 걸쳐 기록하여 경상도의 도시와 마을 숲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창고 항목은 곡식을 보관하는 창고, 군기고, 화약고 등을 기록하였다. 조적(糶糴) 항목이 별도로 없기 때문에 각 창고에 각곡의 수량을 기록하였으며, 군기고에는 군기 수량을 기록하였다. 다른 고을은 대부분 군기(軍器) 항목이 별도로 설정되었는데, 대구는 창고 항목에 부기하였다.

 

학교 항목은 향교, 연경서원(硏經書院) 등 서원, 표충사 등을 기재하였다. 서원은 각각 소재처, 사액 여부, 창건 연혁, 봉안 인물에 대해서 상세히 기술하였다. 그리고 ‘신증(新增)’이라는 표시 아래, 양사재(養士齋)와 사마재(司馬齋)를 기재하였다. 여기서 ‘신증(新增)’이 무엇으로부터 신증인지가 문제인데, 『여지도서』에 없는 내용을 새로 증보하였다는 의미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청하현 장시 항목에 “읍내장(邑內場), 송라장(松羅場), 신증(新增) 관전장(舘前場), 성내장(城內場)”이라고 기록하였는데,『여지도서』에는 장시 항목 자체가 없기 때문에 중간의 관전장부터 신증이라고 표시한 것은『여지도서』가 아닌 어떤 다른 지리지를 기준으로 하였음을 말해준다. 이 기준 지리지가 아마도 『해동여지통재』가 아니었을까 추정해 본다. 간혹 항목 내 기사에 ‘구증(舊增)’이라고 표시된 것도 있다. 언양현의 성지 항목에는 “읍성(邑城) 구증(舊增) 홍치경신(弘治庚申, 1500년, 연산6)”이라고 하였는데, 이 기사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언양현 성곽(城郭) 항목의 ‘신증(新增)’ 기사와 일치한다. 따라서 본 『경상도읍지』의 기사 가운데 보이는 ‘구증(舊增)’ 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신증(新增)을 말하는 것이고, ‘신증’은『해동여지통재 이후 본『경상도읍지』에서 새로 증보한 부분을 나타낸 것으로 추정한다. 『여지도서』단계에서 새롭게 추가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표시 없이 기록하였다. ‘구증(舊增)’, ‘신증(新增)’ 등의 표시가 많이 보이는 항목은 학교, 단묘, 인물, 누정, 제영 등이다.

 

대구부의 관방(關防)과 진보(鎭堡) 항목은 둘 다 “없음(無)”이라고 되어 있다. 관방(關防)은 다른 고을에서는 대부분 관애(關阨)로 표현하였다. 봉수(烽燧) 항목은 이름, 위치, 상준하는 봉수 이름과 거리를 기록하였다.

 

단묘(壇廟) 항목은 “사직단, 문묘, 성황단, 여제단”을 기록하였다. 다른 고을에서는 서원이나 사우(祠宇)를 학교 항목에 기록하기도 하고 단묘 항목에 기록하기도 하는 등 일정하지 않다. 능묘 항목은 대구는 ‘총묘(塚墓)’로 항목 이름을 바꾸어 기록하였는데, ‘능묘’ 보다 ‘총묘’를 항목 이름으로 한 고을이 더 많다. ‘총묘(塚墓)’라는 항목을 둠으로써 지역 인물들의 묘지가 기록될 수 있게 되었다. 불우(佛宇) 항목은 사찰의 이름, 소재처, 건물 등을 기록하였다. 공해(公廨) 항목은 객사를 비롯하여 본부의 아사(衙舍), 감영의 선화당(宣化堂), 진영(鎭營)의 무융당(撫戎堂) 등 관서 건물을 열거하였다.

 

누정(樓亭), 도로(道路), 교량(橋梁), 도서(島嶼), 제언(堤堰) 항목의 기술에서는 별다른 특이점이 보이지 않는다. 장시(場市) 항목은 10개의 장시 이름, 소재처, 개시일을 기록하였다. 목장(牧場) 항목은 분양마에 관한 내용을 기록하였다. 형승(形勝), 고적(古蹟), 토산(土産), 진공(進貢) 항목은 기술 내용에 별다른 특이점이 없다. 봉름(俸廩)은 사객지응미(使客支應米), 아록위(衙祿位), 공수위(公須位), 관수미(官需米) 등의 구성 요소에 따라 액수를 기록하였다.

 

환적(宦蹟) 항목은, 대구부에는 감사겸부사(監司兼府使), 판관(判官), 도사(都事), 영장(營將)의 총 4명의 관원이 있었으므로 이에 대응하여, 영선생(營先生), 읍선생(邑先生), 도사(都事), 영장(營將)을 구분하여 각각 역대 부임자의 이름, 이부임 시기를 기록하였다. 고을에 따라서는 수령 이름 밑에 선정비 유무, 공적(功績), 이배지(移拜地), 파직 사유 등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안동은 부선생안(府先生案) 항목을 두어 역대 수령을 기록하고, 환적 항목에는 공적을 남긴 수령 즉 명환(名宦)를 따로 기록하였다.

 

과거(科擧) 항목은 고려 말부터 최근 인물까지 기록하였다. 등제한 시기, 올라간 관직을 기록하였다. 함창은 등제자의 부(父), 성관(姓貫), 품성, 공적, 사승 관계까지 자세히 기록하였다. 인물(人物) 항목은 고려 때 인물부터 기록하였다. 먼저 고을이 배출한 유명 인사를 기재하고, 이어서 효자, 효부, 열녀, 절의 등을 구별하여 기록하였다. 유명 인사는 성관, 급제 사실, 사승관계, 관직, 행적, 서원 배향 사실 등을 기록하였다. 효자는 신분, 효행, 복호(復戶)나 정려(旌閭) 사실 등을, 효부와 열녀는 누구의 처인지와 열행 사실 등을 기록하였다. 안동은 인물 항목과 별도로 효자, 효부, 열녀, 충신, 의사(義士) 항목을 두었다.

 

제영(題詠)은 ‘달성 10경(景)’을 비롯하여 누정, 서재(書齋), 산천을 노래한 시를 기록하였다. 비판(碑板)은 표충사, 개인의 묘갈(墓碣), 서원(書院)의 비(碑), 축성비(築城碑) 등 각종 비문을 기록하였다. 책판(冊板)은 경전을 비롯하여 동의보감, 오례의, 반계수록, 삼봉집 등 다양한 책판을 기록하는데 책판의 소재처는 밝히지 않았으나 대구부로 보인다. 다른 고을에서는 책판의 소장처가 서원이라고 밝힌 곳도 있다.

 

본『경상도읍지』는 항목 구성으로부터 기술 내용에 이르기까지 지역의 인물, 문화, 역사에 큰 비중을 두고 기록하였다. 학교, 단묘, 총묘, 불우, 누정, 과거, 인물, 제영, 비판, 책판 등 관련 항목이 많을 뿐 아니라 내용도 풍부하여 읍지 분량의 절반 이상이 지역의 인물, 문화, 역사 분야 기술에 할애되었다.

 

자료적 가치

본 『경상도읍지』는 1832년경 편찬된 경상도 도지(道誌)이다. 전국지리지, 도지, 개별 읍지를 막론하고 19세기 전반에 편찬된 읍지는 많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1832년경 편찬된 경상도 71개 고을 읍지의 존재는 학술적인 가치가 매우 크다. 더욱이 대부분의 읍지가 통일된 항목과 기술 형식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통계 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다. 1871년의 『영남읍지』에서 전사하여 보충한 8책의 김산읍지, 의성현지, 영덕읍지, 고성읍지도 아세아문화사에서 영인한 『영지(嶺誌)』(본『경상도읍지』를 저본으로 1846경에 그동안의 변동 사항을 반영하여 편찬한 것으로 추정됨)의 해당 고을 읍지를 통해서 어느 정도 근사하게 복구가 가능하다.

 

18세기 영·정조시기는 지리지뿐만 아니라 여러 통계 자료가 남아 있으며, 19세기 후반 또한 1871년과 1894년의 읍지 상송령에 의해 만들어진 많은 읍지가 남아 있다. 그러나 19세기 전반기는 남아 있는 지리지나 통계자료가 극히 빈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본『경상도읍지』는 18세기로부터 19세기 후반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국가의 지방 통치가 현장에서 어떻게 실현되었으며, 지역사회는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드문 자료이다. 18세기 후반 통계자료나 지리지가 풍부하게 남아있지만 비교 대상이 되는 19세기 전반 자료가 없어서 적절하게 해석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본『경상도읍지』를 통해 18세기 후반의 통계자료나 지리지의 의미가 재규정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본 지리지는 지역의 인물, 문화, 역사 등 지역 주민들이 기록하여 전승하고 싶었던 사항을 풍부히 담고 있어 당대 지역민과 지역 사회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세아문화사에서 영인한 『영지(嶺誌)』의 존재로 미루어 보아 본 『경상도읍지』는 19세기 경상도 지역의 지리지 전통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경상도는 본 책의 존재로 말미암아, 1760년경의 『여지도서』, 1832년경의 본 『경상도읍지』, 1871년경의 『영남읍지』, 1895년의 『영남읍지』로 이어지는 지리지의 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참고문헌

『조선시대 읍지의 성격과 지리적 인식에 관한 연구』(양보경,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박사논문, 1987), 『국역 여지도서』(디자인 흐름, 2009)

집필자 : 김선경

 

내용 : 1832년경 편찬된 경상도 도지(道誌)이다. 필사본이며 20책으로 되어 있다. 각 고을 읍지마다 맨 앞에 채색지도를 실었다.

 

경상도는 현재의 경상남북도를 포괄하는 지역이다. 조선시대는 낙동강 이동을 경상 좌도, 낙동강 이서를 경상 우도로 구분하였다. 좌도와 우도에 각각 감사를 두던 때도 있었다. 1519년과 임진왜란 중인 1592〜1593년, 1595년에는 좌도와 우도에 각각 감사를 두었다가 1596년에 도를 다시 하나로 합하여 감영을 대구부에 두었다. 이후 변동을 보이다가 1661년(현종2) 다시 대구로 감영을 옮겨 감사가 유영(留營)하였다. 경상도는 1895년 5월 지방제도를 23부제로 개혁할 때 대구부, 동래부, 안동부, 진주부로 분할되었다가, 1896년 8월 13도제로 개혁할 때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로 나뉘었다.

 

조선후기 경상도가 관할하는 고을은 유수부(留守府) 1, 대도호부(大都護府) 2, 목(牧) 3, 도호부(都護府) 13, 군(郡) 13, 현(縣) 39의 71개 고을이었다. 본 『경상도읍지』가 준거로 하고 있는 신묘년(1831) 통계에 따르면 경상도는 원호(元戶) 348633, 704885, 81271(전국: 원호 156560, 3303419, 3307459 - 『일성록』 순조31년, 12월 30일 기사 -)로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사는 도였다.

 

본 『경상도읍지』에는 경상도 71개 고을 읍지가 모두 수록되었다. 편찬시기는 호구, 전부(田賦), 환적(宦蹟) 항목의 기사로 미루어보아 1832(순조32)년경이다. 다만 8책에 수록된 김산읍지, 의성현지, 영덕읍지, 고성읍지는 1871년에 편찬된 『영남읍지』에서 해당 지역 읍지를 전사하고 지도를 새로 그려 넣어 제책한 것이다. 편찬 주체는 수록된 각 읍지의 내용과 형식이 통일되어 있어 적어도 경상도 감영차원에서 편찬의 기획부터 마지막 제책까지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책의 구성은 1책: 대구부, 2책: 경주부, 3책: 안동부, 4책: 진주목·성주목, 5책: 청송부·동래부, 6책: 창원부·상주목, 7책: 함양군·영천군, 8책: 김산군·의성현·영덕현·고성, 9책: 선산부·인동부·칠곡부·하동부, 10책: 울산부·김해부·영해부·밀양부, 11책: 거제부·거창부·청도군·초계군, 12: 경산현·남해현·순흥현·개령현, 13책: 예안현·영일현·장기현·영산현, 14책: 예천군·영천군·흥해군·풍기군, 15책: 양산군·함안군·곤양군·합천군, 16책: 자인현·영양현·칠원현·문경현·안의현, 17책: 진해현·진보현·함창현·지례현·고령현, 18책: 현풍현·산청현·단성현·군위현·의흥현·신녕현, 19책: 창녕현·사천현·기장현·삼가현·비안현·웅천현, 20책: 의령현·하양현·용궁현·봉화현·청하현·언양현의 읍지 순으로 수록되었다.

 

각 읍지의 항목 구성은 [지도(地圖)],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관직(官職), 성씨(姓氏), 산천(山川), 풍속(風俗), 방리(坊里), 호구(戶口), 전부(田賦), 군액(軍額), 성지(城池), 임수(林藪), 창고(倉庫), 군기(軍器), 학교(學校), 관방(關防), 진보(鎭堡), 봉수(烽燧), 단묘(壇廟), 능묘(陵墓), 불우(佛宇), 공해(公廨), 누정(樓亭), 도로(道路), 교량(橋梁), 도서(島嶼), 제언(堤堰), 장시(場市), 역원(驛院), 목장(牧場), 형승(形勝), 고적(古蹟), 토산(土産), 진공(進貢), 봉름(俸廩), 환적(宦蹟), 과거(科擧), 인물(人物), 제영(題詠), 비판(碑板), 책판(冊板)으로 되어 있다.

 

모든 읍지가 맨 앞에 채색지도를 싣는 등 항목이 통일되어 있고 기술 방식도 대체로 일정하다. 본 『경상도읍지』를 1760년경 편찬된 『여지도서』 항목과 비교해 보면, 임수(林藪), 군기, 장시, 환적, 과거, 비판, 책판 항목이 새로 생겼다. 새로이 등장한 군기, 장시, 환적, 과거, 책판 등의 항목은 18세기 말(정조 말년) 편찬 작업이 이루어졌던 『해동여지통재』 계열 읍지의 장시, 요역, 군기, 선생안, 과환(科宦), 책판 항목의 성과를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 본『경상도읍지』는 항목 구성으로부터 기술 내용에 이르기까지 지역의 인물, 문화, 역사에 큰 비중을 두고 기록하였다. 이들 분야 관련 항목이 많을 뿐 아니라 기술 내용도 풍부하여 읍지 분량의 절반 이상이 이 분야 내용에 할애되었다.

전국지리지, 도지, 개별 읍지를 막론하고 19세기 전반에 편찬된 읍지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1832년경에 편찬되었으며 통일된 항목과 기술 방식을 적용한 경상도 71개 고을 읍지의 존재는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관련자료 : 『영남읍지(嶺南읍誌)』〈奎 12173〉, 『영남읍지(嶺南읍誌)』〈奎 12174〉

집필자 : 김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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